티스토리 뷰

Book

「빈자의 미학」

빨간부엉이 2017. 2. 26. 10:57


「빈자의 미학


지은이 : 승효상

펴낸곳 : 느린걸음

분량 : 약 100여쪽

2016년 12월 30일 개정판5쇄본 읽음


내가 건축가로 이름을 알고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라는 건 그 이름이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지를 반증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96년에 처음 쓰여진 이 글은 그러니까 무척 오래된 글이고, 그로 인해 현재를 얼마나 유용하게 끌어들이고 있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보자면 현재는 이 글 속에 얼마나 이질감없이 스며들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말일 수도 있겠다. 

흘러가는대로 살든, 삶을 자신의 흐름으로 바꾸어가며 살든 집은.. 아니 건축은 우리 삶의 너무나도 유용한 가치가 되버렸다. 재산의 목적이 되고 신분적 상징의 지표가 되버렸다. 

속물적이지만 그게 지금이다. 

건축가이자 유명한 저술가이자 인문학 강사이자 다양한 활동 영역을 가지고 있는 승효상의 첫 번째 저술인 「빈자의 미학」은 건축에 대한 한 개인의 선언문이자 철학서이며 사유의 텍스트가 되었다. 그 언어는 그의 삶을 스스로 구속하였으며 구속된 삶의 올곧고 일관된 행보와 실천적 삶은 개인의 선언문을 시대의 지표로 바꾸어 놓았다.

많은 이들이 시대를 뛰어넘어 찾고, 회자되는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흑백의 사진과 짤막한 승효상의 사유와 영문 텍스트가 공존하는 특이하며 얄팍한 이 책은 그리하여 스스로 하나의 미학이 되었다. 개인의 산물이지만 시대의 정신이 되었고 다음 세대의 숭고한 가치가 되었다. 

글의 한 꼭지를 옮겨본다.

" 우리가 지난 몇십 년간 교육 받아온 '기능적' 이라는 어휘는, 그 기능적 건축의 실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을 피폐화시켰는가. 보다 편리함을 쫓아온 삶의 모습이 과연 실질적으로 보다 편안한 것인가. 살갗을 접촉하기보다는 기계를 접촉하기를 원하고, 직접 보기 보다는 스크린을 두고 보기를 원하고, 직접 듣기보다는 구멍을 통해 듣기를 원하는 그러한 '편안한' 모습에서 삶은 왜 자꾸 왜소해지고 자폐적이 되어가는가. 

우리는 이제 '기능적' 이라는 말을 다시 검증해야한다. 더구나 주거에서 기능적이라는 단어는 우리 삶의 본질마저 위협할 수 있다. 적당히 불편하고 적절히 떨어져 있어 걸을 수밖에 없게 된 그런 집이 더욱 건강한 집이며, 소위 기능적 건축보다는 반反기능적 건축이 우리로 하여금 결국은 더욱 기능적이게 할 것이다 "

대중에게 읽힐 책이 아니었으나 그런 책이 되었고, 소멸과 기억속에서 살아남은 가치로 인하여 필요로 하는 독자에게 불리워져 세상에 다시 나온 이 텍스트는 불멸의 언어가 아니다. 생각은 늘 변하는 것이고 시간은 꼿꼿한 생각을 옆으로도 뒤로도 휘게 만드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에 한 건축가의 글은 다음 시대에도 유효한 가치성을 가지게 될 거라고 장담할 순 없다. 지금이 잘못 되어있고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의지와 기대가 있기에 선언은 아직 유효하고 의미가 있다. 그 의미있슴이 어쩌면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으나 다음 시대에 꼿꼿함이 바로 유지된다면 이제 이 텍스트는 잊혀져도 좋을 것이다.

부디 그러길 바래본다.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크리틱스 레코드」 - Vol2. 우리 시대의 중견 비평가  (2) 2017.03.12
「공포의 세기」  (0) 2017.02.27
「아무도 아닌」  (0) 2017.02.19
「익숙한 새벽 세시」  (4) 2017.01.19
「복수는 나의 것」  (0) 2017.01.07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TAG
more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