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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의 눈동자」

빨간부엉이 2017. 7. 16. 11:09

 

 

 「여명의 눈동자」

 

지은이 : 김성종

펴낸곳 : 남도

분 량 : 10권 각 300여쪽

1988년 10월 25일 중판본 읽음

 

 

 

긴 고통 속에서 누구나 삶을 영위한다. 명제와 같은 이 삶의 숙명이란건 언제나 통한의 슬픔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반짝이듯 찾아오는 찰나의 기쁨과 순간의 즐거움 같은 것들을 위해 기나긴 삶을 터벅터벅 걸어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태어났기에 생을 영위해 나가야 하는건 해결해야할 긴 숙제를 풀어내는 것과도 같을 것이다.
숙제를 해나가는 방법에는 누구나 각자의 방법이 있겠지만, 작가 김성종씨는 그의 역작이라고 불릴 이 작품 「여명의 눈동자」를 통해 역사의 잊혀져가는 한 조각을 사람들의 의식 안에 밀어넣는 것으로 해결해 나간게 아닐까 그런 기분이 든다.


MBC에서 드라마화 되었었기에 지금은 누구나 알고 있는 작품이 되었지만, 이 작품의 결말이 지어진때가 1981년임을 생각해보면 담고 있는 내용이 얼마나 중요한 것들인지 알게 된다. 지금도 명확치 않은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다루었다는 점, 아직도 30대 후반.. 40대 이상의 성인들에게 뿌리깊게 박혀있을 소위 '빨갱이' 문제.


저자가 이 소설 「여명의 눈동자」를 쓸 당시 국내에서 위안부 문제를 기록한 어떤 자료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고 한다. 왜 그랬어야만 했을까... 누군가는 기록으로 남기고 각인되고 잊지 않아야 할 역사로 남겨져야 할 것들을 그렇게 철저히 지워버리고 망각하게끔 해야만 했을까..
아마도 답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 같다. 그래야만 했었던 독재와 군사 정권의 시대를 거쳐온 우리들이 아니었던가.


작품의 문학적 완성도같은 걸 떠나서 그런 시대를 통과하며 (작품이 쓰여진 시대-75년에서 81년-가 유신정권과 4공화국의 짧은 쇠락과, 80년 광주와 전두환의 신군부의 5공화국을 거쳐왔슴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이런 글을 장기간 신문지면에 연재한 작가의 뚝심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의 기록이 이렇게 가슴 아프게 진행되어야만 하는 것과 그것이 실재한 근간의 우리 과거라는 것이 더욱 가슴 아프다. 비록 작가의 글 쓰임이 7,80년대 국내 통속소설과 여성의 육체를 소비하는 것을 글 쓰기의 양분으로 삼았던 추리소설 작가의 계보안에서 자유롭지 못함이 여실히 보여지는 불필요한 묘사들이 너무 많음이 눈살 찌푸려지는 부분이긴 하지만 말이다.

 

10권의 책은 숙제를 하듯 힘겹게, 그리고 그런 가슴 아픈 시절을 보내왔을 우리 부모 세대에 대한 미안함으로 읽었던 것 같다. 그 힘겨움의 시절을 보낸 반석위에서 이 나라는 여전히 앞길이 위태위태해 보인다는 것이 크나큰 미안함이다. 행동하지 않는 젊음, 포기해야할 것이 너무 많은 시대. 광풍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면 나는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작가가 글을 마치고 남긴 후기의 언어가 가슴을 친다. 전문중에서 일부를 옮겨본다.


"그런데 처음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일본군의 제물로 바쳐진 여자정신대 출신 종군위안부에 대한 자료가 전무하다는 사실이었다. 막연히 조선 처녀 7,8만 명이, 그것도 열입곱, 열여덟의 꽃같은 숫처녀들이 전쟁터에 끌려가 일분군들의 섹스 배설물을 받아내는 공동변소로 전락하여 처참하게 짓이겨졌다는 것 정도 외에는 구체적으로 정리된 자료가 하나도 없었다.
일어를 아는 사람들은 많기도 한데 어째서 그 비참한 기록은 없을까?
더욱 놀라운 것은 국내에 여성단체가 그렇게도 많은데 종군위안부들의 원혼을 달래줄 비하나 아직 세워지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더더욱 놀라운 것은 당시 일본군에 끌려가는 위안부들 앞에서 장도를 축하해 주고 박수까지 쳐준 인물들이 지금도 이 사회에서 버젓이 행세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자대학 앞을 지날 때마다 나는 번번이 이런 생각을 했다. 지각있는 총장이라면 캠퍼스에 자기 동상을 세울 게 아니라 이역에서 비참하게 죽어간 종군위안부들의 넋을 달래주는 비를 세워 학생들에게 그 생생한 아픔을 전해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학생들이 모금해서 세울 수 있다면 더욱 뜻이 깊으련만. 종군위안부-그는 바로 우리 어머니상이 아닌가"

 

작가가 바랬던 비는 아니지만 소녀상이 세워졌다. 전쟁이 끝나고 30년도 되지않아 쓰여진 소설에 있던 한 작가의 바램은 그 뒤로도 30여년의 세월을 더 보내고서야 겨우.. 말 그대로 겨우 이루어진 셈이다. 수많은 논란과 이해관계를 가진 국가간의 첨예한 문제들을 안고서 오늘도 소녀상은 말없이 세상을 응시하고 있다. 우리도 두 눈을 뜨고 세상을 응시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긴 밤을 보내고 맞이할 여명의 새벽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하는게 아닐까. 그 뒤에 어떤 아침이, 어떤 하루가 우릴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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