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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 Poem & Etc

며칠 전 밤의 일기랄까...

빨간부엉이 2021. 10. 15. 08:44

아무튼, 감사할 일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책을 읽고 있던 밤이었다. 전날 비가 오고 늦더위가 부러 귀찮은 기승을 부리던 날이 급격히 식어버려 쌀쌀해지기까지 한 바람부는 날 밤. 늘 여기저기 다 열어두던 문과 창을 닫았다. 가을은 오지도 않고 사라졌다. 요조의 「아무튼, 떡볶이」  를 읽고 있었는데, 컴퓨터의 JRiver 프로그램에서 돌려놓은 파일은 영훈님이 들어보라고 보내신 작년의 가을블루스를 테마로 한 모음곡 이었다. 마크 노플러의 '블루버드' 라는 곡의 블루스 기타 연주가 전주로 흘러 나오는데 너무 재밌게 읽고 있던 책의 문장들이 눈 앞에서 사라지고 소리가 뇌리를 잠식한다. 그리고 눈물이 맺힌다. 어쩌면 살면서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을 노래를 들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그런 인연이 생겨남에 감사하고 아직은 음악으로 눈물 흘릴 미력하고 미천한 감성이 남아있음에 감사한다. 
신해철은 버리고 깍이고 자존심 하나가 남았다고 고백했는데, 나의 어느 날 밤 고백은 잊어서는 안될 감사함들에 마음으로만 보답하는 나 혼자만 아는 그런 의미가 아닌가 그런 시덮잖은 생각을 해본다. 
아직 죽을 날이 멀었다면 파랑새가 어디에 있는가라는 존재론적 의미 추구조차 잊자. 그리고 말라버린 눈물샘에 마중물 한방울 얹어줄 그런 소리를 찾는게 어떨까. 깊어가는 밤이란건 그러한 유치함도 용서해 주지 않겠는가 말이다. 
가을 블루스의 파일 리스트에서 지금까지 들어본 것 중에 가장 멜랑꼴리하고 느린 '카니발의 아침'이 흘러나온다. 그것이 어떠한 형태의 어떠한 질감의 것이든 말이지, 마음이란 걸 먹었다면 매우 느리게 소화하라는 계시처럼 들렸다. 오늘 밤의 생각들, 오늘 밤의 마음들, 오늘 밤의 유치함들이 쫀쫀하고 서글프고 달콤한 블루스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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