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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 Poem & Etc

싸움터에서 생각하기 3-2

빨간부엉이 2006. 3. 19. 22:20

싸움터에서 생각하기 3-2




싸움터에서 생각하기 Ⅲ-2 또는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에 대하여 3부.

※ 위의 이미지는 일본 영화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3명의 감독 미조구치 겐지, 오즈 야스지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와 포스터에서 조합한 것입니다.

시작하며

사놓고서 써먹지도 못하는 엽서들이 서랍 속에 들어있습니다. 그 안에 적혀져야할 이야기들을 전 그걸 받아들고서 그 사람이 비웃을까봐, 못했던 많은 이야기들로 환원시켜 그 안에 또한 가둬둔 것 같아요. 뭐가 그렇게 부끄러웠을까요. 생각에 자유를 주는 것이 어쩌면 그 생각에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전 제 생각들에게 세상 속의 비웃음을 당하는 자유를 허락지 않으리라 던, 그래서 그저 제 안에서만이라도 자유롭게 해주자 뭐 그런 생각들을 한적이 있었죠. 어쩌면 그러함들은 나의 개인적 입장을 부드럽게 바꿔주는 핑계거리 밖에는 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생각(들)

같은 주제 -지금 여기 우리- 로 몇 가지의 아이템을 설정하고서 금방이라도 써버릴 수 있는 것처럼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제 생각들에 자신이 없어지기 시작했죠. 그래서 하루를 보내고 이틀을 보내고 또 몇날을 흘러 보냈습니다. 여기 그 세 번째 이야기가 있죠. 그 또한 지금 우리 속에 당면해 있는 문제고 단지 서랍안에 가두어 둔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풀려질 문제가 또한 아니기에 몇 가지 이야기들을 우리 같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몇 년 전부터의 쟁점은 개방이다, 아니다. 또는 해야된다, 해선 안된다 의 양분화된 거둘 것 없는 의식의 산물들처럼 공허한 시간대를 통과하는 우리의 모습을 그 안에 투영시키게끔 만드는 그래서 때론 부질없는 짓처럼 보였고 때론 당장 가시화될 수 있는 현실인양 우리를 들뜨게도 하고 가라앉게도 하는 약이자 병이었습니다. 그런 논의들이 이제 우리 앞에 구체화되어 나타났건만 논쟁들은 점점 첨예(尖銳)화 되어가고 있고 사람들의 의식은 옳은가, 아닌가의 도덕적 문제에만 집착하는 듯이 보여지고 있습니다. 그런 문제의식 속에는 식민지 시대를 살아낸 웃세대의 피해의식이 녹아있고 지금 여기를 이끌어가는 기성세대의 시장적 논리가 함축되어 있으며 기성세대가 늘 걱정해 마지않는 차세대 기성세대 -누구나 언젠가는 아줌마, 아저씨가 되므로- 의 다분히 폐쇄되어 있던 일본문화의 개방에 대한 열렬한 찬성이 표면에 드러나서 지금 우리의 곁에 다가서 있습니다.
어쩌면 이라는 말을 쓸 필요도 없이 지금 우리의 곁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해마다 우리의 곁에서 살아 숨쉬는 결코 우리가 피해갈 수 없는 화두처럼 우리를 붙잡고 늘어지는 이야기 였던 것도 또한 변함없는 사실이지요. 문제는 많은 매체들 안에서 거의 대부분의 저명인사들께서 하시는 말씀들이 거의 천편일률적으로 동어반복적인 얘기들을 언급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일본문화에 대한 현실을 얘기하고 일본문화의 개방에 대한 논지를 전개하고 그리고 자신만의 색깔로 자신의 입장에서 결론을 내리고 하는 대부분의 대중의 의식을 짊어지고 있는 분들의 말씀이 저마다 찬성의 입장에서 같은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 나에겐 상당히 의아함으로 받아들여졌었죠. 그렇다고 해서 내가 문화의 개방에 대한 반대의 노선에서 생각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단지 늦은 이야기를 늦게 이야기하고 있고 그나마 너무 늦게라도 얘기하고 지나치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인거죠.
작년 대선이 있기 전에 대통령 후보들은 갖가지 질의서들을 받아들고 고민들을 했겠죠. 저도 몇가지 다른 형태의 그에 대한 답안을 가지고 있는데 지금 여기서 여러 단체들이 여러 가지 주제의 질문들을 퍼부었고 그에 대한 대답들이 지금에 와서 어떤 영향들을 끼치고 있는지 지금 생각하고 있는 일본문화의 개방이라는 차원에서 키노의 질의서에 대한 대선 후보들의 그때의 답을 잠깐 보고 넘어갈까 해요.
질문은 같은 질문 12개를 모든 후보에게 보냈었고 그 질문중 하나가 일본문화의 수입개방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이회창 후보 - 일본영화 수입에 대해서는 그간 큰 논란을 불러일으켜 왔습니다. 일본의 영화를 수입하여 국민의 문화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견해와 이에 반대하는 대부분의 국민들의 감정은 일본영화의 수입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표시하였습니다. 일본영화의 도입 문제는 우리의 문화 수준과 국민의식의 향상이 전제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권영길 후보 - 일본과의 과거역사는 우리가 잊어서는 안되며, 용서할 수도 없다. 그러나 그 때문에 일본의 영화, 일본의 문화만 수입을 금지하는 것은 우리 문화의 발전을 위해 옳지 않을 수도 있다. 일본영화를 개방하면 음란하고 폭력적인 일본문화가 쏟아져 들어올 것이라는 주장이 강한데 오히려 음란물과 폭력물은 이미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 등지에서 숱하게 들어오고 있다. 오히려 일본문화 수입금지 조치로 좋은 것은 금지되고 나쁜 것들만 음성적으로 유통되는 것이 사실이다. 소비자(관객)들 스스로 저질 문화를 배격하는 사회적 풍토가 조성되어야 하며 국내에서 제작된 것까지 포함하여 저질 문화를 적절한 방법으로 관리해야 한다.
이인제 후보 - 우리 사회에는 이미 많은 종류의 일본문화가 음성적으로 들어와 있습니다. 다원화되고, 분화된 사회문화의 특성상 언제까지 개방을 미룰 수는 없겠지만, 당장의 개방은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김대중 후보 - 각국의 문화 정체성의 보호를 위해서 현재 문화부분은 UR협상대상에서 조차 제외된 상태입니다. 그러나 국제화, 개방화 시대에 외국문화 유입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분별한 유입에 대한 대응방법으로서는 한국문화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법이 최선입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하며, 불법으로 유통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엄격히 통제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네 명의 후보들의 생각을 옮겨보았는데요. 이회창 후보는 답에서도 보듯이 시국관이 엄청나게 결여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게 만들었죠. 국민의 의식수준을 미개사회의 공동부락 주민정도로 여기는 것 같아서 상당히 기분이 별로였죠. 이인제 후보는 아마도 이회창 후보와 비슷한 생각을 한 것 같아요. 그러면서 민감한 사안에 대한 질문에서 표도 획득하고 빠져나갈 구멍도 찾는 방안으로 구렁이 담 넘는 듯한 답안을 내놓았죠. 권영길 후보는 합리적이고 현상적인 얘기를 했지만 적절한 방법이라는 말에 대한 논란의 여지를 남겨놓았죠. 그리고 김대중 후보는 본 질의에 대한 답을 대안(代案)적인 차원에서 얘기를 하였고 엄격한 통제라는 부분에 대해서 현 상황을 예견하는 대답을 보게 만들었지만 그게 어떻게 변해가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반전될 수 있는 대답을 내어놓았죠. 그런면에서 김대중 후보는 가장 지능적인 대답을 내놓은 것이 아닌가 그때 그런 생각을 잠깐 했었어요.
지금 당면한 문제는 이대이의 대통령 후보들의 대답 속에서 양분화되는 것처럼 국민들의 의식 또한 그렇다는 것이고 그리고 보다 중요한 점은 이제 우리의 곁에 곧 기다리는 이에게는 기다림의 단비로 막고 싶었던 이에게는 홍수로 일본문화가 다가온다는 사실입니다. 국민감정의 충격에 대한 대비로 세차례에 걸쳐서 개방을 한다고 했지만 적어도 2000년안에 가깝고도 먼 나라의 문화가 전면 개방이 될 것이고 그 신호탄 격으로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상영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간지 오래입니다.

음악, 영화 그리고 ‘아니메’

제가 생각하는 일본문화의 개방에 대한 생각들은 몇가지로 압축이 되는데요. 음악과 영화, 저패니메이션 그리고 그것들을 둘러싼 총체적이고 누적된 우리의 문제점들의 돌출입니다. 지금부터는 짧게 짧게 또는 길게 길게 그 생각들을 얘기해볼까 합니다.
어떤 평론가가 얘기했듯이 대중음악은 일본문화의 시발점이자 귀결점일수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패니메이션을 단지 개방에 대한 논쟁의 화두처럼 여기는데 어떻게 보면 차단된 듯이 또는 오픈된 듯이 죽도 밥도 아닌 상태의 일본대중음악을 우리가 접해왔기 때문인 웃을 수 없는 현실태의 단면이기도 합니다. 혹자에게는 그렇지 않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단 일본말에 대한 거부감을 베이스로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의 의식이 복수혈전을 언젠가는 해야만 한다는 식의 단선적인 논리로 지배당해온 교육적 현상 때문이기도 하지만 차단에서 오는 생소함 때문인 것도 부정할 수 없는 현상의 단면이기도 합니다. 그 차단이 불러왔던 폐단은 도둑질의 형태로 그동안 끊임없이 우리 대중음악의 자리에서 그림자처럼 숨어있는 표절로 수없이 나타나 있었습니다. -‘룰라’의 표절파동 기억하시죠?- 소수의 가진자만이 들을 수 있는 음악이기에 국민을 기만하는 도둑질을 하고서도 인기라는 거품에서 목욕을 하는 스타들을 산출해 냈던 것이죠. 우리의 기억 속에도 일본가요의 표절로 인한 문제들이 수도 없이 많았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그들이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은 진정 우리들의 잘못인 것 같아요. 가수들이 표절곡을 직접 만들지는 않았다고 해도 작곡자들이 계속 활동하고, 직접 만든 것처럼 불러대던 가수들도 여전하게 활동을 하고 하는 것들이 영웅을 기다리는 대중의 의식 속에서 살아 숨쉬는 약자에 대한 관대효과의 이름이기도 하겠죠. 지금 그 근절책을 얘기하자는 것은 아니구요 일본문화 속의 음악에 대한 얘기를 하고자 하는 겁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로부터 자국 안의 모든 것을 바꾸어나가기 시작했죠. 그 증거는 전쟁을 통해 나타났고, 전쟁이 아니더라도 세계의 문화를 자기들 것으로 만들고 또한 그 안에서 자생된 문화와 기술로 세계를 자기들 것으로 바꿀 수 있다는 환상을 품기도 했었죠. 그건 지형적으로 폐쇄된 사회 속에서 나타날 수 있는 특질로 치부해 버리면 그만이지만 그런 의식들이 바탕이 되어서 지금의 일본문화가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세계 안에서 자국의 복색(服色)을 버린 두 개의 나라는 일본과 한국이지만 한국의 문화가 세계 안에서 차지하는 자리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일본 문화는 어떨까요? 그들은 자신들만의 것인 많은 기술을 지니고 있고 ‘헐리웃 영화’, ‘러시아 영화’, ‘유럽 영화’ 처럼 독립된 고유명사로써 ‘일본영화’ 라는 세계가 인정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디즈니가 〈인어공주〉로 만화영화의 부활을 선포했을 때 이미 저패니메이션은 세계 속의 한가운데서 그만의 독특한 영상으로 세계를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대동아 공영권을 실현하듯이 말이죠. 음악은 어떨까요? 세계를 그들 안에 들여오듯이 일본은 자신들만의 음악을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얼마전 X-JAPAN의 리더가 죽자 일본에서는 많은 여학생들이 자살을 하고 우리의 신문과 방송에서도 그 기사를 다루었었죠. 차단된 일본의 음악에 대한 결과는 우리에겐 일본음악은 엑스 제팬과 아무로로 대변되는 가십처럼 가벼운 음악들로 여기는 결과를 낳았었죠. 하지만 일본사람들은 철저하게 세계의 음악적 장르 안에서 자신들을 개편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자신들만의 음악은 점점 소멸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지만 그들이 만들어 놓은 것을 표절하는 우리를 볼 때 과연 우리가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자격이나 있는 것인가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것이죠. 어쨌거나 일본인들은 재즈를 소화해 내었고 아트락 음악의 붐을 일으켜서 음악에 대한 국민의 정서와 귀를 일찍 틔이게 만들었죠. ‘매니아’라는 소수의 발화에서 시작된 자신들만의 노력으로 말이죠. 단순하게 그 두 개의 장르를 우리의 현실에서 찾아 볼 때 아직도 거의 불모지에 가까운 우리의 음악을 보면 일견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우린 세계 안에 우리의 이름을 알린 가수가 거의 없죠. 누구도 부인 할 수 없는 현실이고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가 빌보드 챠트에 올랐다는 헤프닝을 모두들 기억할 겁니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노래를 알리고 싶어한다는 거죠. 문제는 기반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세계 음반시장에 대한 접근도 사실 힘든게 현실이지만 지금 일본문화를 놓고 볼 때 일본인들이 세계의 음악을 철저하게 자기들 것으로 소화하여 지금은 세계 안에 자신들의 이름을 알리는 가수나 그룹들이 적지 않다는 거죠. 그리고 철저한 상업적 시스템 속에서 대중음악의 근간을 조성하고 키워 나가는 것이죠. 우리에게도 익숙한 텟츠야 고무로 사단의 예는 그러함의 좋은 예가 될 수도 있겠죠.
우리의 음악은 유행과 유행의 허물벗기 식의 베끼기 였습니다. 디스코가 유행일 때 디스코만, 얼터너티브 락이 유행이었을 때 또 얼터너티브 락만 지금은 주류의 댄스와 양념처럼 소수의 성인들을 위한 트로트와 가요처럼 변질되어버린 락아닌 락만이 우리음악이 주소입니다. 집찾기가 굉장히 쉽겠죠? 반대로 그 이외의 음악 장르의 집을 찾고자 하면 우리 나라에서는 ‘서울서 김서방 찾기’처럼 어려운 일이 되버리죠. 일본의 대중음악이 이제 폭넓게 들어온다면 그리고 어색한 일본어가 적응이 된다면 팝 음반처럼 어느 정도의 음반판매고를 올릴 수 있다고 봅니다. 그에 대한 해결책은 크로스오버의 잡종교배가 아니라 숨겨져 있는 우리의 음악적 감수성을 일깨우는 것이라고 봅니다. 타악기 연주자인 김대환씨가 일본과 여타의 세계 재즈 문화권에서 최고의 고수(?)로 대접받는 것과 우리 나라에서는 찬밥 신세인 것과는 우리가 이제 맞닥뜨릴 문제점들 속에서 해답을 찾는 좋은 참고서 같은 경우의 한 예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우리에게는 외면받는데 왜 세계는 알아주는가의 의문점에서 출발하여 크로스오버가 해결점인 것처럼 보는 다수의 시각에서 벗어나 예전부터 있어왔고 지금도 있으며 내일도 있을 우리의 소리를 다시금 일깨우는 것만이 일본문화의 침공이라는 핵폭탄의 최고 방호시설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일본문화의 개방에 대한 문제들이 이제 불거져 나올대로 나와서 개방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제 생각의 한편에서는 새로운 부흥기를 맞이하고 있는 일본영화의 약진도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이 아닌가 싶군요.
우리 영화가 표절시비다, 정체성의 모호함이다 하는 속에서 헤매고 있을 때 일본은 그들은 문화 보호와 장인 우대정신을 통해서 자국의 영화를 세계 속의 독립된 객체로 인식시켰고 나까소네의 신(新) 미디어 정책으로 8,9십년대 난항을 겪는 듯 했지만 지금 새롭게 부활한 듯이 보여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영화의 갑작스런 관심고조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미조구찌 겐지와 일명 다다미 쇼트로 쁠랑 세깡스의 미학을 영화 교과서처럼 만들어낸 일본 영화의 아버지 오즈 야스지로가 있으며 그들과 함께 했고 서방에서 가장 인정했던 일본영화의 천왕 구로자와 아끼라 감독이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일본영화는 이들의 연출과 기술의 탄탄한 기반아래 5십년대 6십년대 일본영화의 르네상스기를 맞이했었습니다. 그렇지만 7십년대의 기수들이 스튜디오 시스템의 붕괴 속에서 9십년대에 난항을 겪으면서 이제 일본영화는 죽었다고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관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신인감독들이 새로움의 미학을 조심스럽게 또는 열정적으로 시도하기 시작했고 또 한편에서는 전통의 계승을 통한 인간본질의 탐구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일본영화가 소멸할 수 없는 이유는 시기마다 소유하고 그리고 그 시기의 감수성을 계승하는 다음 세대가 늘 있어왔기에 불가능한 얘기이며 지금 새로운 듯이 부활한 일본영화 앞에서 고개숙인 우리의 자화상을 보는 당연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마무라 쇼헤이가〈뱀장어〉로 깐느의 황금종려를 수상할 때 우린 퀴어를 탄압하고 있었고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로 50여개의 일본 내 영화상을 수상한 최양일 감독에게 들떠 있었습니다. 타자(他者)화된 감수성에 말이죠. 27살의 소녀감독이 깐느의 황금카메라를 수상하고 기타노 다케시가 〈하나비〉를 통해 작가주의의 완성을 달성하고 있을 때 우리에겐 멜로의 부활이라는 눈물샘 자극의 성공처럼 보여지는 사약 한 사발을 원샷하는 영화 〈편지〉가 유행의 조류에 휩쓸리는 여전한 장르시스템의 행보를 밟아나가고 있었고 얼마전에야 그 영화를 본 저는 세기말에 맞닥뜨리는 우리영화의 지금을 보는 답답함에 눈물을 아낄 수가 없었습니다. 순정만화적 미장센도 우리 것이 아니었으며 박신양의 죽음도 최진실의 눈물도 전혀 슬프지가 않았습니다. 극중 철저하게 부모세대로부터 분리된 주인공의 지금은 부활하는 멜로장르의 선언처럼 여겨질 수도 있었지만 사자(死者)로부터온 편지의 소재는 분명 이와이 슈운지의 〈러브 레터〉의 감각을 차용한 것이고 그나마 주인공들의 부모세대와의 단절은 감독이 우리 정서의 계승이 아님을 고백하는 그리고 연내 방화의 최다관객동원이라는 현상을 통해 우리 관객을 기만하는 햄릿의 한국화된 독백 ‘베끼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의 연극무대를 설치하는 우롱의 현실을 얘기하며 유언장을 읽듯이 영화의 누구 것인지 모르는 내러티브를 종결시켰습니다. 박신양의 편지는 죽음을 통해 면죄부를 획득하고자 하는 대국민 호소문 이었으며 엔딩장면의 나무는 이제 우리는 여기 스피노자의 사과나무를 심었으니 다음은 너희들이 맡아라 라고 하는 자술서처럼 보여지는 것은 일본영화의 예정된 부활의 폭죽이 터지는 속에서 맞닥뜨리는 암울함이었고 그건 정말로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없는 우리의 슬픔이었습니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도레미파 소녀의 피가 끓는다〉가 해협을 건너와 ‘궁상각치우 소년의 피가 끓는다’로 변주되는 분노의 눈물, 그 다른 이름이기도 했습니다.

일본문화속의 영화가 이런 비극적 교감을 우리와 연계하고 있을 때 일본의 만화문화는 또 어떠했던가요? 퇴폐, 자극, 제국주의의 선동이라는 이름으로 우린 철저하게 일본의 만화 산업을 외면하고 있었지만 저패니메이션이라고 세계가 붙여준 그들만의 이름 ‘아니메’는 이제 완전히 세계를 점령하고 있는 듯 보여집니다. 특히 프랑스에서의 약진은 볼만한 현상이 아닐 수가 없었죠. 우리에겐 왜색의 전염을 사수하는 첨병처럼 이하응의 쇄국정책을 현대에도 실현시키고 있는 듯이 국민을 보호하고 있다는 그들만의 긍지를 내세우고 있었지만 뒷편으로는 TV의 만화를 통해 수도 없이 우리를 일본문화의 홍수 속에 항상 내동댕이 쳐놓았었죠. 뭐가 있었을까요? 기억 속에 있는 몇 개의 작품들을 떠올려 볼까요.〈마징가 Z〉,〈철완 아톰〉,〈캔디 캔디〉,〈베르사유의 장미〉,〈보물섬〉,〈엄마찾아 삼천리〉,〈빨간머리 앤〉,〈초시공요새 마크로스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은하철도 999〉,〈천년여왕〉,〈명탐정 홈즈〉최근의〈세일러 문〉,〈이상한 바다의 나디아〉등등 순간적으로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제목들만 열거했는데 우리들의 머릿속에는 뇌리에 남아있는 이런 작품들 외에도 얼마나 많은 ‘아니메’들이 왜색을 제거한 듯이 우리의 이름을 달고 우리 곁에 남아 있습니까? 우리의 방송정책은 일본문화를 차단하고 있다고 공식적으로는 얘기하면서 TV브라운관을 통해 여기 우리의 의식을 이미 일본문화에 물들여 놓은 장본인의 역할을 담당한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창과 방패의 역사적 모순을 우리 시대에 재현하고 있는 것이죠.
일본만화영화의 아버지 테즈카 오사무는 자국내에서 비난의 대상이 되었지만 기초를 다진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아니메’안에는 일본 극영화와 마찬가지로 열악한 환경 속의 노력이 숨어 있기에 지금의 결과를 낳았다는 것 또한 지금 세계 안에 불고 있는 ‘아니메’ 바람의 당연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만화현실을 볼까요? 97년 8월 7일의 시민여론조사결과 발표에서 만화의 법적 규제는 안된다 라는 여론이 80%를 넘는 결과를 보였지만 우리의 의식근간에 숨어있는 만화에 대한 개념은 언제나 공부와 성장에 방해가 되는 주적개념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만화는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다의(多義)적이고 함축적인 성격 때문에 쉽게 대중을 선동할 수 있는 매체가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항상 정치적 탄압의 최일선에 있어왔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만화대본소를 퇴폐적 장소로 만든 것도 우리이고 그나마의 창작의지도 법적통제장치로 제한해 온 것은 일본이 만화산업을 적극육성하고 성장시켜온 것과 무척이나 비교되며 대조적인 현상입니다. 지금 미야자끼 하야오는 스튜디오 지브리를 통해 세계적 셀 애니메이션의 작가주의로 추앙받고 있으며 그가 공식적으로 마지막 작품이라고 발표한 〈모노노케 공주〉-최초에는 〈도깨비 공주〉로 최근에는 〈원령 공주〉로 알려진 작품- 는 디즈니의 브에나 비스타 배급망을 타고 세계침공을 공식화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이 작품이 세계시장에 배포되는데 있어서의 중요한 의의는 미야자끼 하야오의 국제화의 의식을 담고있는 전작들이 아니라 진정한 자기들만의 문화를 담고 있는, 우리의 의식대로 표현하자면 ‘왜색덩어리’인 일본색 가득한 영화라는 것입니다. 일본이 자국문화를 키워 이제 그들만의 감수성을 세계적 감수성으로 발전시키고 있는데 우리의 만화탄압의 현장은 작가주의의 말소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심히 염려가 됨을 부인치 못하겠습니다. 안노 히데야끼는 가이낙스의 이름으로 세기말 지구화 의식을 인간과 교감하는 ‘에바’의 메카니즘을 통해 다가올 사이버시대의 혼돈을 예견하고 있는데 우린 태초의 인간의 모습을 담았다고 해서 작가를 법의 심판에 세우고 국민의 의식 앞에 발가벗겨 던지는 만행을 여전한 모습으로 일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파생된 작은 성공들을 포장하여 우린 이렇게 해내고 있다고 국민들을 감동시키려고 합니다. 김수정씨의 〈아기공룡 둘리〉가 디즈니로 진출하게 되고 성공을 거두고 있는 현실을 우린 지금 정말로 냉철하게 바라봐야 합니다. 우린 만화적이고 문화적인 인프라(간접자본)가 정말로 부족합니다. 〈아기공룡 둘리〉가 80년대에는 불량만화로 탄압받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정말 적으며 개인적 노력으로 거두는 작은 성공을 국가적 성공으로 치환시키는 문화정책의 고질적 답습또한 이 시점에서 정말로 경계해야 하는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그것을 ‘거품’이라고 부릅니다. 인프라를 쌓아가도 시원찮을 마당에 그런 성공들을 마치 우리의 전부인양 이쁘게 포장하여 내놓는 상술과 대국민의식조장의 술수에 휘말려 우리의 지금은 이렇게 훌륭하고 높구나 라고 생각하며 그 뒤에 감추어진 추악한 진실을 외면한채 현실에 안주하게 만드는 이런 ‘거품’들이 늘어갈 때 진정 우리의 문화적 기반은 약해질 것이고 일본의 신(新) 대륙침공에 백기를 드는 날이 멀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해야할 일들은 ‘거품’에 가려진 이면의 실상을 늘 염두에 두는 일이며 박찬호가 성공할 때는 야구에, 박세리가 성공할 때는 골프에 매달리는 언제나 끌려 다니는 유행의 총알받이가 되는 것을 부단한 몸짓으로 외면해야만이 전 지구적 자본주의(Global Capitalism)앞에서 무너지지 않는 유일한 대안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문제(들)

음악, 영화, ‘아니메’의 일본문화 개방에 대한 몇가지 생각들을 개진(改進)해봤는데요. 지금 여기에서 예전의 일을 들추어내어 국민의 의식이 그렇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진정 시대착오적 발상일 수도 있습니다. 우린 일본의 역사가 엄청나게 잘못됐다고 늘상 욕을 하지만 썩어가는 내부의 역사를 돌아보는 시선을 늘 차단하고 있음을 소수의 양식있는 역사학자들이 늘 지적해 마지 않아왔습니다. 적어도 일본은 자신들의 교과서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해서 그걸 법정 싸움으로 비화시켜 승리를 일궈냈던 역사학자도 있으며 전쟁의 주범으로 잘못을 저지른 자신들의 역사를 반성하는 노래만을 부르는 가수도 있습니다. 잘못했으니까 당연하다는 발상이전에 우리가 우리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일을 얼마나 자주 해왔었나를 돌아봐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금 일본문화의 개방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한번 해봅니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씨는 일본영화의 개방을 시장성의 차원에서 생각하는, 제가 지금까지 읽어온 일본문화개방의 찬반에 얽힌 견해들 속에서 유일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닌가 싶어요. 대부분의 글들이 우리가 문화적 식민지가 될 것을 우려하거나 음성적으로 아주 넓고 깊게 확장되어 있는 일본문화가 이제 개방이 된다고 해서 얼마나 사람들의 관심이 오래 갈 것이냐의 낙관론까지 다양한 시선이 얽혀있지만 경제적 측면에서는 아무도 의견을 개진하지 않았기에 관심있게 읽었었는데요. 제가 생각하는 일본문화개방의 경제적 논리는 이렇습니다. 일본은 기술을 철저하게 소형화시키고 밀도있게 집약시키는데 놀라운 기술을 지니고 있죠. 그렇기에 세계유수의 기술들을 자기들만의 ‘축소지향’으로 새롭게 환골탈태(換骨奪胎)시켰고 그런 약삭빠름을 세계는 ‘경제적 동물’이라고 비난했지만 부러움을 감추지는 못했습니다. 그 기술의 한 면을 살펴보면 일본은 CD의 차세대 매체인 DCC(디지털 컴팩트 카세트)의 시장적 측면을 미리 내다보고서 MD(미니 디스크)의 개발에 착수를 했고 지금 그런 일본의 시장지배논리는 일견 맞아들어가고 있습니다. DCC는 소프트웨어의 개발미진과 지나친 기기의 고가화로 인해 사양길에 접어들고 있고 반면에 MD는 DCC와 CD가 갖추고 있지 못한 무한반복의 재생과 녹음기능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진 콤팩트한 스타일로 인해 CD의 바톤을 이어받을 추세에 와있습니다. 비록 몇 십년전부터 개발해온 꿈의 TV라 불려지던 HDTV가 아날로그방식이었던 이유로 인해 국제적으로 이제 정해져버린 방송의 디지털 규격화로 물거품이 되어버렸지만 적어도 기술적 노하우는 누가 가져갈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 기술이 바탕이 된 뛰어난 음질의 각종 영상기기와 녹음매체들이 들어올 때 우리가 소비할 물품들이 단지 국산품이라는 이유만으로 선택될까요? 사람들은 점점 좋은 소리와 훌륭한 기기들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마치 입맞이 발전하는 것처럼요. 일본문화의 개방에 뒤따르는 제가 생각하는 가장 큰 현안은 바로 문화적 소프트 웨어 -VIDEO TAPE, LD, MD등등- 들이 물밀 듯이 들어올 때 그 소프트웨어를 돌릴 수 있는 하드웨어가 과연 우리 것일까 하는 두려움인 것입니다.
의식의 근간에서의 또 하나의 두려움은 우리에겐 일본문화의 하드 고어와 하드 코어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가장 큰 일본문화개방의 문제점일 수도 있고 해악으로 자리잡을 수도 있는 면입니다. 어쩌면 기술적이고 자본적인 문제가 큰 문제가 아니라 의식을 그릇됨으로 끌어간다면 쉽사리 고쳐질 수 있는 게 아니기에 개방 반대론자들이 그렇게 열을 올리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하드 고어와 하드 코어가 뭔지 모르신다면 간단하게 설명하면 하드 고어는 호러영화에서의 끔찍한 장면들이 극에 달할 때, 더 이상 잔인해질 수 없을 때 붙이는 용어입니다. 그리고 하드 코어는 포르노물에서 섹스행위가 변태적이고 상상력을 넘어설 때 붙이는 용어죠. 그리고 하드 고어와 하드 코어의 결합적인 요소들도 또한 넘쳐남이 일본문화 개방저해요소의 중점 사안이 되는 이유이기도 하죠. 특히 일본은 이런 것들을 대부분 극영화가 아니라 ‘아니메’로 제작하고 있는 실정이고 이런 모습은 가깝게 우리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조은숙이 일본 만화 포르노의 더빙작업을 하는 모습에서 찾아볼 수가 있고 그런 요소들이 만화라는 매체의 특성을 빌어 아직 어린아이들에게 범람할까 두려워한 나머지 개방은 지속적으로 연기되어왔던 거죠.
이런 시점에서 나운규의 〈아리랑〉의 프린트가 없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얼마전 일본의 한 소장가가 〈아리랑〉을 가지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보기 위해 그 소장가의 아들에게 접근했던 것을 기억할 겁니다. 그 소장가의 아들은 제가 이유를 잊어버렸는데 무슨 이유인가를 달고서 아직은 보여줄 수가 없다고 그랬고 우린 그게 정말로 〈아리랑〉의 프린트인가도 알지 못한 채 그저 하염없이 기다릴 뿐인 그런 암담함을 보여준 적이 있었습니다. 유현목 감독의〈오발탄〉도 모든 기록물이 사라져서 외국에서 프린트를 떠오는 현실 속에서 우리가 지켜내지 못한 것들의 복원도 불가능한데 이제 거기에 공식적으로는 차단되었던 일본문화까지 해결해야할 숙제로 던져지고 있습니다. 위에서 잠깐 언급한 대로 일본은 단순히 베끼는 차원에서 자기들만의 것으로 새롭게 만드는 재주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로봇월드컵’조차도 이제 일본의 진일보해지는 기술력과 볼거리에 밀려서 몇 년안에 마치 일본의 독자적 개발품으로 바뀌어버릴 지경에 이르러 있습니다. 지금은 복원도 문제가 아니고 새로움도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지금 여기 우리속의 파생되는 현안들을 지켜내고 키워나가는 것이 이 모든 문제들의 해결책에 대한 시발점이고 귀결점이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마치며

너무 일본문화만을 치켜세운 듯이 여겨지죠? 포스트모더니즘세대에 이르러서의 지금에 모더니즘세대가 이루어 놓았어야 할 가시적 현대화가 너무 부족한 탓이 아닌가 싶어요. 우리에게도 전통이란 분명히 있지만 1876년의 조약체결이후로 무언가 단절된 것처럼 생각이 되거든요. 그건 바로 주체적 변화가 아니라 남이 만들어 주는 변화였기 때문이고 우린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지금까지도 몸부림을 치고 있는거죠. 하지만 우리의 몸부림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생각을 끊임없이 고쳐나가고 고쳐진 생각과 고쳐지기 전의 생각들을 지금 여기서 함께 공존시켜 나가야 하는 이유가 되는게 아닐까 싶어요.
문화산업을 육성해야 하는 이유로 어떤 이들은 〈쥬라기 공원〉의 예를 들곤 합니다. 한편의 영화가 가질 수 있는 효과들이 비교되는 어떤 것들 -예를 들면 어떤 분야의 1년 예산등- 보다 상위를 점한다면서 우리도 그러함으로 나아가야 한다고들 말합니다. 전 그게 정말로 우리가 걸어야 할 노선인가 묻고 싶습니다. 당장의 경제적 결과만이 그들에게는 달콤한 과실처럼 보이기에 그런 말을 서슴없이 내어놓지만 〈쥬라기 공원〉등의 예는 먼 나라의 동화 같은 얘기일 뿐입니다. 너무 비관적이다구요?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우린 저예산의 영화한편 만들기에도 중첩된 문제들에 둘러싸여 표현하고자 하는 양식을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하는데 그만한 돈을 들일만큼의 모험이 기반도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질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먼 미래를 보기 이전에 지금 여기를 봐야 하는 거죠. 이제 일본문화의 개방의 목전에서 위기를 기회로 삼아 점점 소멸되어가는 ‘작은고추’의 매운맛을 되살려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모든 것을 열어놓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문제점들을 해결해 나가고 우리의 문화 인프라를 키워 나가는 길만이 단지 일본 문화의 개방이라는 차원뿐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서 우리 앞에 닥쳐오는 많은 문제점들의 해결에 대한 첩경(捷徑)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Text : Minerva's Owl (98-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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