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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나쁜 영화} - 장선우 감독

빨간부엉이 2006. 3. 19. 22:34

{“엿 먹어라”라고 하는 아이들로부터 ‘엿먹는’영화}


 

 

글쎄, 여러 가지 이유에서 늦게 이룬 잠을 이른 시간에 쫒아내고 극장을 찾았다. 여러 가지 이유는 이 영화가 왜? 상영불가가 됐으며 왜? 평가극상과 평가 절하의 양극단에 서 있어야 하는지 내가 보아야 하겠기에 그 하나도 안 바쁜, 언제나 안 바쁜 일요일 조조할인 -겨우 300원밖에 안 깎아주는데- 으로 영화 를 보았다.

영화제목은 97영화판의 중반기 뜨거운 감자 ‘나쁜영화’였고 영화 가 끝난 뒤의 느낌은 ‘나쁘다’였다. 어떤 의미에서의 나쁘다인지 이제부터 얘기하고자 한다. 비록 변죽을 울리는 얘기지만 시내의 ‘나쁜영화’가 상영되 는 극장은 작은 관객석과 스크린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내가 본 썩 괜찮은 영화 들의 상영관이었고 더욱이 괜찮은 한국영화가 자주 상영된다는 점에서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좋은 이미지의 영화관 이었다. 지금은 어떠냐구? 주니치 드래 곤즈에서 구원투수로 활약하고 있는 선동렬의 방어율에 비유하자면 선동렬의 방어율이 세이브포인트 연속 기록 행진에서 첫 패를 기록했을 때 0.60인가에 서 0.99로 됐는데 일요일 오후 1시 그 극장의 방어율이 0.99가 됐다면 이해 가 되실는지.


변죽은 그만 울리고 영화속으로 들어가보자. 적어도 시작은 음! 그렇구나 였다. 얼마간의 -솔직히 말하면 많이- 색다름과 쇼킹함이 시작을 붙잡고 있다. 화면 가득 펼쳐지는 자막의 종적 진행은 영화가 초반의 의도에서 많이 일탈할 것임을 예견하고 있었다. 내가 기대했던 것은 현상들에 대한 의미있는 그리고 심도 깊은 고찰이었지만 (공시적) 영화는 탑을 쌓아가듯 너무 많은 주제를 쌓 아가고 있었고 (통시적) 처음에 제시한 자막처럼 무정부주의적 발언들 -아무렇 게나 또는 아무것도 아닌- 속에서 영화의 내러티브는 사상누각(砂上樓閣) 이 되고 그리고 관중들의 깊은 한숨속에 쓰러져 버린다.

비행 청소년들을 붙잡아 또는 꼬드겨 만들어낸 영화가 얼마나 진지할까도 의심이 되었지만 이건 도대체 어디에 시선을 맞추어야 하는지 당황이었다. 듬성 듬성 관중석을 메운 남자 관객들 -거의 대부분이- 의 낄낄거림은 내 스스로의 부끄러움과 함께 시간의 궤종소리가 되어 ‘뎅그렁 뎅그렁’ 심장의 박동에 부 담을 주었다. 말초신경을 자극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는지 그들의 실태에 대해 고발하기 위해 만들어졌는지 의심스러운 초, 중반기의 필름은 ‘나쁘다’라는 선입관적 느낌에 또 하나의 나쁨을 더하고 있었고, 이게 뭐야? PD수첩, 추적 60분, 카메라 출동 이런 것들과 도대체 뭐가 달라 하는 생각속에 빠져들게 했다. 동어반복적인 일련의 방송프로와는 달리 단지 더욱 더한(?) 현장감과 경험 해보지 못한 세계가 주는 당혹스러움으로 인한 현실과의 괴리감 그런 것이었던 가 싶기도 한데.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장면에 대해서 얘기해 보고자 한다. 성공적인 도로통제와 다수의 조금 빠르게 오토바이를 타고픈 욕망을 지닌 레이서가 되지 못한 (될 수 없는) 짜장면 배달로부터 익혀진 오토바이 솜씨의 젊은 얼라들을 대동 하고 찍어낸 폭주장면과 “오빠 태워줘”를 외치는 10대 소녀들의 열광이 주는 정신 산란함이 폭주족과 ‘뿅카’에 열광하는 소녀들의 단지 그냥 좋다는 무소속적 아웃사이더의 일변을 보여주고 있다. 비추어지는 많은 문제들은 얘기 하자면 끝이 없다. 집단 패싸움, 본드흡입, 가출, 자살, 부모의 폭력, 흡연, 앵벌이, 생일빵과 탈선의 리얼리즘. 그 속에서 정말 웃기는 얘기 하나는 ‘표절’이었다. 표절이 자막으로 떴을 때 요즘 표절문제와 그 심각성이 이 생각없 이 사는 것처럼 보이는 애들과 무슨 상관이 있나 싶었는데 정작 얘기가 진행 될 때는 너무 웃겨서 이 영화 보며 처음으로 웃었다. 사실 어느 것 하나 웃길 수 없는 얘기임에도 웃는 내가 조금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 지하철 타 면 전단 돌리고 껌이나 초콜렛 파는 애들 있는데 그 애들 모여서 하는 얘기는 자기들 전단의 베끼기 여부에 대한 논란이었다. 어느 정도 현실을 비꼬고 꼬집 는 내용도 있어서 재밌었고 괜찮게 보았지만 역시나 그 웃음이 씁쓸하다는 것 에 우울했다.


자괴심처럼 이 영화 속 어느 것 하나 경험해 보지 못한 나에게 이해 하고자 하는 마음이나 주제가 주는 미화의 과정을 통한 동화작용도 선행치 못한 경험 의 부재로 인해 날 괴롭게 하는 요소가 되었고 아이들 뿐만이 아닌 거리의 부랑아 -다자란 어른들- 들이 화면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이제 이 영화는 아이들의 일탈에 대한 나쁨만이 아니라 포용하지 못하는 모든 것들을 아우르려고 하는 노력을 보이고자 하는 장난끼가 배제된 영화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영화가 쫑으로 치닫기 시작할 무렵에 문제의 장면이 나왔다. 물론 알고봐서 알지 자채적 가위질을 통해 잘린 부분이 관중들을 어리둥절 하게 하지 않았는지 걱정이 되었다. 문제의 장면은 속칭 ‘돌림빵’장면이었는 데 거의 완전하게 잘려 나갔고 영화가 표방한 아이들의 실경험의 화면화는 여기서 철저하게 배신을 당한다. 그 씬을 찍은 여자 아이는 실제로 그런 경험이 없고 또한 아이들조차도 해보지도 않은 이런 파행적 (나쁜) 장면을 찍어야만 하는지 의문을 강하게 지녔다고 하는데 이 장면의 삽입은 상영이 됐든 되지 않았든 두가지 실패를 ‘나쁜영화’에 안겨주는데 그 첫째는 상영이 됐다면 가식적 흥미 요소의 삽입을 통한 흥행호조를 노린 정말 나쁜 기획의도로써의 실패가 됐을 것이며, 둘째는 상영이 전면적으로 될 수 없는 상황에 봉착하게하여 자체적 가위질을 하게끔 만든 것이 그 두 번째 실수라 하겠다.


얘기를 돌려 전작 ‘꽃잎’으로부터 이어지는 애니메이션의 끼워넣기에 대해 생각해 본다. 초반부 아이들이 모여자는 버스 안에서의 상상의 애니메이션 삽입은 전작 ‘꽃잎’에서와 같은 거친 삽화의 셀 애니메이션이며 표현 하기는 조금 이상하지만 -영화를 보면 내 마음 이해할꺼다- 이 영화의 비유나 은유 또는 암시의 간접화법으로써의 유일한 작가주의적 양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녀본다. 그리고 아이들이 회사금고를 터는 장면의 이차원적 애니메이션에서 3D 로 넘어가며 상상력의 비유나 암시가 현실이 됨을 이중적으로 암시하는 것 또한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영화속에서 다양하게 시도하는 애니메이션의 세계는 어쩌면 장선우 감독의 차기작이 ALL 애니메이션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상상마저도 가능하게 한다.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때 적어도 영화란 내 개인적인 견해 안에서 동경의 세계이며, 실험의 세계이며, 은유의 세계라 정의할 때 ‘나 쁜영화’는 아주 나쁜 영화 만은 아닌 것도 같다. 단지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극 영화도 아닌 세미 하드코어적 요소와 블랙코미디적 요소의 배열은 순행이 아닌 역행으로 이 영화에 미진한점을 주게하는 요소가 되고 있는 것이다.

잠시 내용에서 빠져나와 영화의 기술적인 문제로 넘어가보자. 몇 만자의 필름 이 버려졌느니 어쩌느니 하는 말이 아주 무색하게 편집은 정말 거칠다. 아마 도 의도적 나쁨을 이끌어내기 위함 이었으리라. 35mm보다 더 많이 16mm가 사용 되고 -무슨 독립영화찍나?- 8mm비디오는 더 많다.(순전히 내 개인적인 느낌이다) 그로인한 핸드핼드 촬영은 사람들을 어지럽게 만들고 혼탁함이란 이미지의 표출보다는 진실의 왜곡이라는 측면에서 나쁘다. 아니 나쁜것처럼 생각된다. 당연히 조명은 탁하고 광원으로부터의 번짐도 많고 색채는 모호해져 버린다. 일부러인지 상당 부분의 필름이 배경이 까맣게 상영되고 있었고 시선을 집중시키려는 의도였는지 배급된 필름상의 문제 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녹음 부분을 보면 이 역시 이 영화가 평범하지 않기에 빚어진 문제인지 모르지만 대화는 거의 알아듣기 힘들다. 이 부분만큼은 정말로 한국영화의 고질적인 병폐다. 듣자 하니 후반작업은 외국에 나가서 해온 걸로 알고 있는데 외국도 기술이 별로 인가? 그럼 뭐하러 비싼 돈주고 외국 나가? 안 그래? 자막처리된 내용으로 파악 되는 영화 진행이 날 정말 답답하게 한다. 같은 나라 말을 알아먹기 힘든 영화 상영이 화가 나는 만큼 기술적인 차원에서 이 영화는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정말 ‘나쁜영화’다.


이 영화를 본 이유는 평가에 대한 내 입장이 필요해서였지만 정말로 보고 난 뒤의 느낌은 혼돈이었고 모르겠다 였다. 정말로 해야 할 말들이 차용해야 할 양식은 이런게 아니라는 생각의 두터움 뿐이었다. 악서가 없는 것처럼 이 영화에서는 분명 취해야 할 점이 있고 버려야 할 점이 있다. 회피의 말처럼 들릴는지 모르지만 중도적 입장에서 모르겠다라는 말을 던지게 만든다. 정말 나쁜가? 아닌가? N.EX.T의 노래 가사처럼 할말은 길어진 그림자 사이에 두어야 함이 아닐는지.

시사회장에서의 아이들의 건들거림과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 는 유동성에 대해서는 대개 자유분방이라는 단어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정말로 진지해야 할 시점에서 조차도 일상처럼 움직이는 그 모습이 현실 감각과 동떨 어진 애들의 모습을 담은 이야기로 인해 답답하고 정말로 그런 모습이 보편이 아닌 특수이기만을 바랄 뿐이다. 영화는 여러 가지 면에서 나빴고 정말 의도대로 나쁨을 유도했다면 이 영화는 성공했지만, 나쁘다 라는 개념의 공통분모를 찾아내지 못하게끔 한 것으로 이 영화는 최후의 역전승을 거두지는 못한 것 같 다. 하지만 역시 느낌은 각자의 몫이다. 직접 보고 나쁘다 라는 개념에 대한 나같은 중도적 모호함 보다는 극단적 판단을 가져보는 것도 좋으리라. 이번 주말 사흘간은 인간심리의 공포세계를 다룬 영화 12편이 날 기다리고 있다. 다 보고서 나도 ‘사이코’나 되어 볼까나?

Text : "생각산실 빨간얼굴" 97년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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