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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정태춘, 박은옥 - [92년 장마, 종로에서]

빨간부엉이 2016. 11. 6. 16:36

 

 정태춘, 박은옥 - [92년 장마, 종로에서]

1993 / 삶의문화, 1996 / 한국음반

 

List

1. 양단 몇 마름
2. 저 들에 불을 놓아
3. 비둘기의 꿈
4. 이 어두운 터널을 박차고
5. 사람들
6. L.A 스케치
7. 나 살던 고향
8. 92년 장마, 종로에서
9. 비둘기의 꿈 (경음악)



 

당시에 생각하기에 이 앨범을 상당히 별로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왜 그랬었을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리석기 그지없는 어린 감상이 아니었던가 싶다.


한 시절 미친듯이 정태춘의 음악만 듣고 살았던 시절이 있다. 의미도 모르는 가사의 운율에 매료되고 단조풍의 감성을 자극하는 멜로디도 너무나 좋았었기에 그랬었을 것이다.

별로라고 생각했던 이 앨범도 예전에 음반 정리할 때 사라지고 다시 구하려고 애쓰지만 쉽게 손에 들어오지 않는 앨범 중에 하나가 되버렸다.


싫어했던 이유라면 어쩌면 전통음악에 기반에 둔 '양단 몇 마름' 이나 '나 살던 고향은' 같은 곡에서의 어린 감성에 느꼈던 촌스러움이나 퇴폐적인 그 어떤 정서의 얕은 끈이 작용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긴 하지만, 긴 세월을 돌아 다시 곱씹게 되는 이 앨범의 정서는 상당히 충격적이다.

아끼고 아끼지만 정작 사용치 못하는 것들에 목매고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의 모습과 하등 다를게 없는 '양단 몇 마름' 의 정서나, 극한의 서정성과 미학적 묘사가 돋보이는 가사의 이면에 감춰진 '저 들에 불을 놓아' 에서 보여지는 선동의 불안하고 피끓는 감정선의 정서 감지, 민주화라는 이름하에 불리워지던 그 모든 것들이 일상으로 감춰지는.. 또는 감춰져야만 하던 시절에 대한 '사람들' 의 사설조의 나열들, 무엇보다 충격적이고 가슴 아픈건 '92년 장마, 종로에서' 의 이야기들이 4반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항시 유효한 가슴 아픈 텍스트라는 것이다.

깃발 든 군중을 기다리지 말아야 할 거리에 촛불이 대신 들어서고, 겨울을 목전에 둔 지금 사람들은 다시금 깃발의 8, 90년대를 치환한 작은 불빛에 기대에 거리로 나서고 있다.
어린 아이들을 정치와 권력의 헤게모니 쟁탈전에서 희생시켜 수장시킨 것도 모자라 세계에서 가장 부끄러운 나라의 국민으로 만드는 사람들에게 깃발 든 군중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모이고 있다.


결과가 어찌 되든 이 모든 파국을 감당해야 하는 건 결국 우리들 모두라는 것이다. 들에 불을 놓아 짙은 연기로 이 어지러운 시절을 감춰버리고 깊이 젖어버린 들판에 마른 기운을 쐬게 해주고 싶다.

그리하여, 
93년의 이 음반의 정서가, 이 음반의 이야기가 이제는 박제화되어 감정과 정서 그 이상의 현실로 다시금 호명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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