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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빨간부엉이 2016. 12. 2. 23:22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지은이: 박연선
펴낸곳 : 놀 (다산북스)
분량 : 396쪽
초판 4쇄 (2016년 8월 22일) 본 읽음



첫 눈.. 그 해의 처음 눈을 보던 날.
몇 년간 발이 되어주던 차를 폐차하고 오랜만에 버스를 타고 시골집을 가던 날. 차로 1시간 40분이면 가던 집을 6시간 넘게 걸려서 도착했다.
고원지대인 고향 동네로 접어들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좀 더 시간이 지나고 함박눈으로 바뀐 첫 눈은 공간을 하얗게 물들인다. 삽시간에..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읽어보지 못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첫 문장만큼은 나도 알고 있고, 그렇게 온통 눈으로 덮인 세상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다시금 나오지 못할 만큼 많은 눈으로 한없이 뒤덮이길 바라면서.


그렇게 눈이 내린 날에 그런 날에...나는 삼복 더위속에 펼쳐지는 이야기를 버스에서, 대합실에서 읽고 있었다.
너무나 좋아하는 드라마 <얼렁뚱땅 흥신소>의 작가이자 <연애시대>의 작가, 그리고 최근에 기꺼운 마음으로 첫 회부터 끝까지를 지켜봤던 <청춘시대>의 작가.. 그 모두를 아우르는 그 분의 첫 소설 작품이 세상에 나온 것을 알았을 때 너무 기대되고, 흥분되고 그랬었더랬다. 그만큼 나란 사람의 감정과 상당 부분 코드가 맞는 글을 써온 작가의 소설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주인공의 생각과 행동의 행간에 넘쳐나는 위트와 재치 넘치는 대사와 묘사들은 참으로 찰지고 웃음과 쓴웃음을 배어나오게 하는 압착의 묘미로 가득하더라만.. 좀 더 많은 시간을 주인공과 할머니의 생활 속에 있고 싶은 마음 간절하였겄만 한순간에 휘리릭 책은 마지막 장을 향해있었다.
재미 있고, 개성 넘칠 것만 같은 박연선 작가의 글에는 어쩌면 냉철하고 잔혹한 부분이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 내면의 어두운 부분을 너무 무겁지 않게 표면에 살짝 보여주면서 수면 아래에 감춰진 이면에 대해 생각케 하는 낯설음.. 그러함에 나는 이 작가의 드라마에 글에 끌리나보다. 라고 생각하게 된다.


보물찾기 드라마 라는 함축적인 언어로 정의된 <얼렁뚱땅 흥신소>에서도 그러하였고, 가장 최근작인 <청춘시대>에서도 청춘의 그늘과 젊음의 사색안에 내재된 고통과 공포, 절망과 두려움을 밝음의 외피와 어여쁜 미장센의 껍질 안에서 스멀스멀 드러내 보여주었던.. 그래서 꽤 오랜시간을 나로 하여금 행복하게 했던 작가의 정의 내리기 힘든 이야기가 하나의 소설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책을 읽고 줄거리를 나열하는 일은 언제나 의미없고, 어려서부터 그런 식의 독후감은 쓰질 않았다. 이야기를 알고자 한다면 검색 몇 번이나 책 파는 사이트에서 책 줄거리를 훓어봐도 그만이다. 독후감은 말 그대로 책 읽은 후의 내 감상이다.
내가 재미있었고, 내가 즐거웠고, 내가 짜증났고, 내가 재미없었으면 그만이다. 타인에게 스토리를 열심히 읊어대면서 강요할 필욘 없다.


어쩐지 시니컬해지는 이런 밤.
나도 어딘가로 사라진 누군가를 찾아나서고 싶어진다.
그런데... 춥다. 게으르고 몸은 무거워진다. 탐정이 되기엔 이제 내 배가 너무 나온걸까..


겨울, 어디엔가로 내 배가 가출을 해줬으면 좋겠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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