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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uter & Input Device

Diary with 356 Mini

빨간부엉이 2011. 1. 11. 06:34



# 아주 오래전에 저는 비평가가 되는 소망을 지녔던 적이 있습니다.
무언가에 대해 느낌을 얘기하는 것 -비평이란게 그런게 아닐지언정- 그것이 좋았던 시절이 있었죠.
<라따뚜이>라는 애니메이션에서 이고라는 음식 비평가는 누군가 애써 만든 음식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얘기했던 지난 과오를 뉘우치고 음식의 맛을 사랑하는 한 인간으로 돌아섭니다.
비평이 제 2의 창작이건 제 1의 창작에 대한 잔인한 칼질이건간에 중요한 것은 느낌을 갖는다는 것이라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 저는 깨달았던 거 같습니다.
느낌이란 것을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자신만이 갖는 느낌을 지닌다는 것.
자신의 안에 느낌을 가졌었다는 기억을 잃지 않는것. 비평보다 위에 있는 것은 관찰한 대상에 대한 마음이다.. 라고 생각한 듯 합니다.




# '나로 태어나서, 내가 나여서 좋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게 마음안에서 끄집어낸 자신에 대한 진실된 비평이라면 최고의 겸허요, 최선의 비망이 되지 않을까 싶군요.
나는 나였슴을 늘 창피하게 여겼던 듯 합니다. 생활 무능력자.. 사회 부적응자.. 내가 나에게 내리는 정의.. 저는 아직도 그런 자격지심에서 헤어나오진 못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내가 나여서 좋았었노라고 누군가에게 웃으며 말할 수 있다면 제 마음의 비평은 저에게 있어선 제 1의 창작물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 라는 영화에서 여주인공이 마지막에 하는 말입니다. 나로 태어나서 내가 나여서 좋았다고 하는 말은..
그 말을 듣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새벽 추운 방에서 이어폰을 꼽고 컴퓨터로 보던 그 영화에서 비평은 참 하릴없는 지식인들의 유희는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고의 음식비평가가 음식 본연의 맛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돌아서듯, 영화는 영화 그 자체의 감동에 대한 기억만이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닐까...




# 웃긴 인용이 되겠지만 키보드는 키보드요 글은 글인듯 합니다. 사용기는 키보드가 아니며, 더불어 사진은 키보드가 아닙니다.
모든 것은 각자가 갖는 뇌릿속 환상에 기인하는 듯 합니다. 키보드 동호회에서 키보드는 장 르누아르가 쫓던 위대한 환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환상을 좇는 대신 감각을 쫓기를 희망한다. 스스로의 감각에서 기인한 대상에 대한 마음을 가지고, 그리고..잃지 않기를 바란다.
마음 안에서 지금 이곳의 환상이 깨지는 그 어느날이라도 자기가 충실했던 걸음에 대한 희미한 기억은 놓지 않기를...
내가 나였슴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도록.
아! 모두가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새벽입니다.



# 하드 디스크 공간이 별로 없어서 찍어서 대충 변환하고 웹상에 올리고 지우지 않았던 사진들을 삭제하기 위해 폴더들을 보다가 356mini가 막 세상에 등장했을 때 테크노마트의 회원분에게 놀러가서 그분의 356mini를 찍었던 사진을 발견했습니다. 급하게 찍고, 실내에서 좋은 사진을 건지기 힘든 카메라 -모두 변명이죠- 인지라 지워버릴까 하다가 몇 장 사진게시판에 올려볼까 하고 골라보다가 살짝 이야기를 곁들여 리뷰 게시판에 올려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356mini를 써 볼 기회가 없어서 리뷰를 남길 수는 없을 듯 하고, 몇 가지 인용구를 끌어온 에세이식의 글을 올려볼까 하는 생각을 mini가 나왔을 때 했었는데 아무래도 키보드를 실 사용 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머릿속 이미지만을 활자로 환원시킨다는 게 너무 어리석은 일 같아서 관둔적이 있었습니다.
다만 한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족처럼 덧붙여보자면 보는 눈보다 마음의 기억을 가지기를 희망한다는 말을 적고 싶어졌습니다.


너무나 유명한 수필 「방망이 깍던 노인」에서 정말 중요한 포인트를 저는 방망이 깍던 노인도 아니고, 차시간 놓쳐가며 투덜투덜 방망이를 깍아다 아내에게 바친 화자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남편이 화를 내며 깍아온 그 방망이를 알아보는 손의 감각과 기억을 지닌 아내라고 보았습니다.
세상의 유수와 같던 장인들이 기계화와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사라지는 것은 단순한 시스템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대량의 틈바구니에서 이질적으로 돋아나는 장인들의 '그 무엇' 을 알아봐주고 기억해줄 사람들의 기억과 감각이 사라지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동호회에서 만들어지는 356mini같은 노력의 산물들이 화려한 사진의 눈속임과 타인의 언어에 의한 추상의 개념과, 찬사와 띄워올림의 댓글들 속에서 실체없이 부유할 때 그것을 지상의 책상위로 끌어내려 현존하게 하고, 가치를 후대에 전할 수 있는 것은 손이 기억하는 진실의 감각.. 그것뿐이 아닐지..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좋은 방망이를 알아봐줄 수 있는 아내같은 사람이 남아있지 않는 세상이 된다면 장인은 소멸하고, 방망이는 썩어 자연으로 돌아가겠죠.
저나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인이 될 순 없습니다. 하여 살아가는 의무를 잊지 않는다면, 동호회에 소속되어있고 주체를 사랑한다면, 노력껏 써보고 기억할 수 있는 감각을 기르기를 희망해봅니다.
횡설수설하는 새벽.. 죄송합니다.
읽어보면 보낼 수 없는 편지처럼 생각되기에 다시 읽어보지 않고 그냥 올려야겠습니다..^^


사진 : Nikon D1x with 50mm 1.8D (세로사진은 원본, 가로사진은 위아래 크롭)
장소 : 강변 테크노마트 7층 애플전자
도움: 노발리스님
사진일자 : 2010년 9월 26일 오후 7시경
글 : 2011년 1월 11일 오전 5시경

항상 고마운 노발리스님, mini를 위해 너무 예쁜 파우치를 만들어주신 비벗님, 예쁜 키캡들을 힘들게 제작하여 나눠주시는 찌니님, 죽어라(?) 키보드 만들어 사람들 가계를 파탄내시는 응삼님, 그리고 mini작동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움직이셨을 모든 분들께, 비록 저의 키보드는 아니지만 이런 키보드가 세상에서 존재할 수 있게 해주심에 대해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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