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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이별하는 골짜기」

빨간부엉이 2010. 12. 21. 07:23



「이별하는 골짜기」


작가: 임철우
출판사 : 문학과 지성사
분량 : 315쪽
2010년 8월 20일 초판본 읽음



겨울이 오면 눈과 추위를 얘기하고, 가을이 오면 단풍과 낙엽을 얘기하고, 봄이 오면 꽃과 바람을 이야기하고, 여름이 오면 더위와 장마를 이야기하는 것.
그것이 살아가면서 반복되는 이야기 거리의 주제이며 살아간다는 순환의 고리 위에 서있는 세상 모든 이의 깨닫기 힘든 단순한 원리...
80년 광주의 오월을 담았던 장편소설 「봄날」로 잘 알려진 작가 임철우의 신작 소설 「이별하는 골짜기」를 읽으면서 드는 생각들은 그런 것들이 아니었나싶다.
시간의 단순함 위에서 무뎌져가는 인식의 틀에 다시 한번 각을 잡아주기.

강원도 사람들에게 열차는 무슨 의미일까 라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 특히나 이 소설처럼 주 무대가 사라진 간이역이거나 할때는 더욱더..
탄광촌의 이미지는 남부의 산골지방에 살던 나에게 말 그대로 박제화된 이미지일뿐이다. 더군다나 기차를 타 본 일은 살면서 손에 꼽을 만큼 적은 나로서는 더욱 그러할 터이다.
그렇기에 그 터전에서 살아오고 벗어났던 사람들에게 담긴 의미를 나는 종내 깨닫진 못할 것이다.
작가 임철우가 얘기하고 싶었던 건 잊혀져가는 세월과 망각되어가는 시절에 대해 최소한 이해와 깨달음은 구하지 못할지라도 생각을 놓아버리지 말기를 바라는 것은 아닐까라고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별어곡別於谷' 이라는 간이역의 이름은 어찌나 서정성을 자아내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개축하여 억새 박물관이 되어있다는 폐쇄되었던 역의 마지막 모습을 밑바탕 스케치로 깔고서 그 위에 어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이별하는 골짜기에서 갈라서서 그 안에 존재했던 사람들이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를지라도 그 위에 존재하였슴이 의미이고 시간의 역사임을 작가는 증명하고자 한다.

두 명의 남자의 이야기와 두 명의 여자의 이야기가 소설 안에서 펼쳐진다.
시인을 꿈꾸는 역무원이 깨닫는 아름다울 수 만은 없는 시의 세상.
자신의 부주의로 선로에서 사망한 광부의 처와 딸을 구원했으나 구원안에서 지옥을 보고, 그리고 지옥 속에 남긴 티끌같은 인연으로 다시금 구원 받는 늙은 역무원의 세상.
일본군의 정신대로 끌려갔던 한 할머니의 과거 기억을 통해 보여주는 그 시대의 사람들, 그 시대의 적나라함, 그 시대를 잊어가는 이들에게 환기시키는 역사의 슬픈 세상.
탈영병과 만났던 어린 아이때의 기억에 갇혀 고통받던 여인이 역 앞의 빵집에서 만들어내던 달콤한 향기, 그 향기의 서러운 내음이 이어지는 시인을 꿈꾸는 역무원과의 숙명적 만남과 치유의 시간들이 빚어내던 허깨비같은 알 수 없는 세상.
작가는 사계절의 소 제목을 통해 네 명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가장 공을 들이고 가장 긴 페이지를 할당하는 건 겨울의 추위처럼이나 불편하기만 한 위안부 문제에 쏠려있다.
소설인걸 망각할 정도로 세세한 세부묘사와 당시의 정황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속에서 발견되는 지옥같은 시절에 대한 이야기는 나를, 우리를 이야기속에 동참시키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처럼 보여진다. 그 의도안에 빠져서 허우적대며 고통스럽게 활자를 읽어가야 하는 것이 어쩌면 그 시대를 유산처럼, 환부처럼 안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은 아닐까..
현대사의 고통스런 질곡의 시간을 더듬어가는 작가의 역량이 날카롭게 마음을 후비고 지나가는 시간.

우리의 문학이, 현대의 문학이 소중함을 다시금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던 거 같다.
번역으로 절대 만날 수 없는 우리말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이 과하지 않고 행간에 적절하게 녹아있는 조절의 힘.
이별하는 골짜기 위에서 이별해서는 안되는 역사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작가의 생각과 의도를 일개 독자의 위치에서 생각해보고 생각을 정리하는 일.
아.. 무거운 다리를 끌고 언젠가 이 소설의 주무대였던 그곳에 가보고 싶어진다.
순수하게 이 무거운 마음을 약간이나마 내려놓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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