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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강의 노트」

저자 : 필립 퍼키스
역자 : 박태희
출판사 : 안목
분량 : 151쪽
2011년 2월 8일 1판 1쇄본 읽음


얄팍하고 가벼운 느낌의 -정말 노트같은- 이 책은 「The Saddness of Men」이라는 사진집으로 유명한 사진작가 필립 퍼키스의 사진에 대한 개인적 철학등을 간단 명료하게 기술한 책이다. 사진가들이 추천하는 사진집중에서 개인적으로 맘에 드는 사진집을 몇 권 맘 속에 골라두었고, 언젠가 구입할거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중에 한 작가가 필립 퍼키스였던터라 이미 내겐 익숙한 이름이었다. 「사진강의 노트」뿐만이 아니라, 「필립 퍼키스와의 대화」같은 책들도 필독서로 추천되고 있는 책이었기에 언젠가 꼭 구입해 읽어보리라 다짐했었다.

책은 문득 시골집에 주말을 이용해 다녀오는 토요일 수원의 외삼촌집으로 도착했다. 블로그 이웃인 서늬님이 보내주신 이 책을 일요일 다시 올라와 첫 장을 펼쳐 읽는 순간 당혹감이 밀려왔다. 당혹감의 정체는 책의 몇 줄 되지 않는 내용들을 쉽게 읽어내버리지 못한다는데 있었다.
서늬님이 이 책을 보내주시면서 남겨주신 메모에 '초보자들을 위한 책인 것 같아서 주춤' 했다는 메모가 있었는데 그건 사실 책을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을 서늬님의 심각한 오류였던 셈이다.
물론 번역된 책의 내용이 심각하게 난해한 용어들로 점철되어있거나, 잘난체하는 어려운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책을 쉽게 읽을 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또한 그러함으로 이루어진 책이었다면 수많은 사진가들이 추천하는 책의 목록에 올라설 수도 없었을 것이다.
필립 퍼키스의 이야기들은 단순하다. 명료하며 깔끔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그럼에도 문장의 진도를 쉬 뺄 수 없었던 것은 단순하게 이 책이 사진을 찍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사진기술을 전수하거나 하는 그런 책이 아니라 사진에 관한 한 대가의 깨달음과 체험에서 오는 내면의 진득한 철학적 사색의 세계를 구술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 줄의 문장, 한 챕터의 서술 안에서 그려지는 상상과 창조의 영역에 대한 생각들은 오롯이 프레임 밖 세상에 대해 생각하고 질문하기 시작하는 사진 초보들의 딜레마와도 맞닿아있다. 그렇기에 마음 안에서, 생각 안에서 작가의 단순한 이야기들은 뻗어 나가고 뻗어 나가는 가시나무처럼 여겨진다. 나의 생각과 사고가 갇혀 있다는 느낌에 빠진다. 가시를 뚫고 정지시켜 프레임안에 세상을 가두는 오류에 대한 생각으로 두려움에 빠지게 한다.
필립 퍼키스는 우리에게 "너무 성급하게 메타포나 상징으로 건너뛰지 말며, 문화적 의미를 담으려 하지 마라" 라고 얘기한다. 있는 그대로를 먼저 담을 줄 알아야 그 이후의 진전을 생각해 볼 수 있다는 말일 듯 하다.
카메라를 드는 이유는 예술로 진화된 -그것이 진실이든 그것을 바라보며 느낀 혼자만의 상상이든- 사진들을 응시하며 느꼈던 예술과 감성의 희열을 나도 담아보겠다는 가열찬 의지에서 비롯될 것이다. 그렇기에 쉬 빠지는 오류가 시작부터 사진안에 너무 많은 의미를 담고자 애쓰는 대부분의 시작하는 이들의 오류에 대한 경계의 언어를 얘기하는 대가의 서술이 가슴 찡하게 와닿았다.

사실 이 얇은 책이 품고 있는 확장성의 세계는 실로 무한해보이고 무궁해 보여서 나 같은 개념없는 사람이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는 기분이다. 음반을 두어장 듣고 TV 프로그램을 몇 개 다운받아다 본 것 외에는 모든 시간을 이 책을 읽는데 일주일 이상 할애했음에도 지금의 나는 이 책의 개념에 사로잡혀있다. 이 책의 단순함이 주는 미로같은 한 컷에 대한 무게감에 짓눌려있다. 가볍게 생각하면 한 없고, 무겁게 생각하면 한 없다. 사진을 가볍게 즐겨도 좋을 것이며, 무겁게 내가 찍는 한 컷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며 기록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조작이 아닌, 아날로그 시대의 기록 -이 부분도 다시금 생각케 하는 것은 사진은 한번도 진실이었던 적이 없다는 말에 대해 읽어보는게 좋겠다- 이 더 좋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오류로 이 책을 읽지 않았으면 한다. 필립 퍼키스는 수단이라고 표현한다. 디지털이 무조건 나쁘고 아날로그가 무조건 좋다는 이분법적 논리에 빠진 진창싸움의 희생자가 되지 말라고 말한다.
옳다. 대부분 옳다. 그렇지만 무조건 옳다라고 생각하기보다 왜 옳은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이 책을 읽은 가치가 있을 것이다.

문득 전에 어느 책에선가 봤던 롤랑 바르트의 말이 생각났다.
'사진가의 투시력은 보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촬영장소인 그곳에 있다는 사실에 있다' 라는 말에서 백 권의 책을 보고 백 권의 사진집을 보는 것과, 백 번의 사색을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오늘 카메라를 들고 거리에 서있어야 한다는 것이다라는 생각.
거기에서부터 프레임안에 보이는 그대로의 것을 담든, 의미를 담으려 하든.. 순환의 고리가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로서 그곳으로부터 그 작은 빛의 끊음으로부터 모든 이야기는 시작되는 것이겠기에 말이다.


이웃사촌이 먼 친척보다 좋다더니.. 블로그 이웃분에게 선물을 받는 행운이 있을줄이야..

서늬님에게 감사함을 전하며. 책도 모르고 사진도 모르는 빨간부엉이가 5월 2일 아침에 씀.


덧붙임 : 두 달 전에 새로 시작한 일이 고통스러웠다. 육체적으로 힘들었고, 정신적으로 압박이 너무 심했다. 끊임없이 먹이 사슬처럼 구조화된 시스템의 맨 하위구조에 속하게 된 터라 상위 구조의 모든 이들에게 받는 것들이 주는 언어적, 정신적 모멸감으로부터 자존심은 상처 입을대로 입었다. 이번주를 끝으로 도망치기로 결심했다. 언제나처럼..
또냐고 나를 아는 이들이 손가락질 하겠지만 이대로는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모든 것은 합리화고 변명이다.
그런 마음의 와중에 도착한 세 개의 선물은 눈물나게 고마운 위로였다.
외눈박이님의 헤드폰이 응한님이 보내주신 음반을 더욱 멋지게 들을 수 있도록 해주었으며, 영혼을 좀 더 고차원적인 곳에 위치하고 살아야함을 새삼 일깨워준 서늬님의 책 선물은 살아있슴이 진정 좋은 것임을 일깨워 줬던 것 같다.
보잘 것 없는 저를 위해 귀한 선물을 보내주신 분들께 진심을 담아... "고맙습니다" 라고 얘기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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