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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강해진 - [잔혹동화]

빨간부엉이 2023. 12. 26. 17:45

 

자켓 이미지는 청소년 보호 위반이라는 검열에 걸려서 자진 삭제함..ㄷㄷ

강해진 - 잔혹동화 / 2023 / Mirrorball 

List

1. 52Hz whale
2. Pray
3. Knock
4. Moscow
5. From the Ashes|
6. Dark Fairy Tale
7. Wrong Distance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프로그래시브 밴드 [슈퍼스트링]에서 바이올린을 담당했던 강해진이 밴드에서 나와 솔로로 내놓은 음반 <잔혹동화>는 바이올린 주자인 한 개인이 보여줄 수 있는 서사의 힘을 보여주는 수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언뜻 바이올린 한대로 들려줄 수 있는 음악이란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면 걱정이 되기도 하는데, 강해진의 솔로 음반에서의 사운드는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 보인다. 격정적이지 않으며 과도하게 포장되지 않은 소리는 담백한 소설들이 가지는 수사의 결을 음으로 치환하여 음악 안에 지닌다. 그 미덕의 힘을 빌려서 강해진은 아름답고 순수해야 할 동화에 잔혹이라는 부제를 붙여 부조리한 시간에 대해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고혹적인 느림의 소리들은 마음을 움직이고, 격정적인 상태로 몰아간다. 때론 경건하게 때론 가학적으로... 강해진의 바이올린은 청자의 감정을 휘젓는다. 물들이거나 스며드는게 아니라 말 그대로 느리고 잔잔한 듯한 소리의 결들은 마음을 흔든다.

세상에 존재하는지 조차 규명되지 않은 가장 외로운 존재라는 '52Hz 고래'에서의 느리고 차가우며 외로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현의 보잉은 그 자체로 음반 <잔혹동화>의 주제를 대변한다. 언뜻언뜻 세상에 나 혼자 고립무원의 존재처럼 여겨질 때 드는 그 공허함의 빈자리를 하나의 호흡 같은 길고 긴 사운드들은 채워가고 할퀴기도 한다. 내가 나여서 좋았노라고 말할 수 있는 어느 시간대를 맞이한다면 그때 이 음반의 바이올린 소리를 배경으로 삼고 싶어 진다. 

솔로로 나선 세상에서 그녀의 이 음반은 적어도 내겐 유의미한 성공으로 다가온다. 물론 대중적이지 않음을 안다. 과거 밴드의 시간에서 들려주던 소리들이 대중성을 함의했던 것이 아님을 생각한다면 강해진의 시간이 이런 식으로 내게 도착하는 것은 확실히 당연하지 않은가. 그 당연함을 오래 오래 곱씹어 쓸쓸한 겨울을 이겨내려 한다. 우리 모두의 추위와 외로움이 깊은 내면으로 침잠하여 잠들 수 있기를.


덧 : 밴드 [수퍼스트링]은 [아키텍처]라는 밴드로 바뀌었고, 올해 1집 CD를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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