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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9시 반에 접수한 색시 병원 진료가 4시간을 기다려서 겨우 몇 분 진료받고 나옴.
금산사를 가보고 싶다고해서 (예전에 몇 번 갔었지만) 갔습니다. 
먹구름이 끼더니 비가 쏟아지고 대포 소리 같은 천둥도 치고 그랬네요.
사람이 별로 없었지만 마스크는 열심히 끼고 비 오는 절의 그 정취를 감상했습니다. 
종교는 없지만 그래도 한국 사람이라 그런지 절 가보는 건 좋아하는 거 같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전시회를 하는게 있는 거 같아서 들어갔습니다. 


제주 4.3에 대해 알리고자 작가님들의 작품을 전시한 기획 전시가 열리고 있더군요. 50대 초중반쯤으로 보이는 조금 마른 아저씨가 저희 두 사람을 위해서 작품마다 열과 성을 다해서 설명을 해주시더군요. 본인이 이 전시회를 몇 년 전에 기획해서 작가님들에게 작품을 의뢰하고, 그렇게 전시회를 열게 됐다더군요. 제주에서는 벼농사가 안되기에 보리를 심는다고 하는데 제주의 보릿대를 이용한 독특한 느낌의 이수진 작가님의 작품들과, 중첩 이미지를 사용한 작품들이 돋보이는 김계호 사진작가님의 작품, 그리고 제주의 아픔을 형상화한 윤상길 작가님의 도자 작품들이 전시가 되어있었습니다. 
특이한 점이라면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불교계가 입었던 피해를 주제로 전시회가 기획되고 작품들이 만들어졌다는 겁니다. 4.3 당시에 평지에서 몇 미터 위의 땅.. 그 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폭도로 지정이 되었고 대부분 산속에 있던 절과 스님들도 또한 모두 폭도가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많은 스님들이 잡혀서 돌을 매달아 수장이 되거나, 죽창에 찔려서.. 총을 맞아서 돌아가셨다고 하네요. 산속으로 숨어든 주민의 행방을 토벌대에게 모른다고 했다가 총살당한 스님, 직접 총을 들고 주민들을 위해 싸웠던 스님. 타버린 절과 총탄에 깨어진 많은 비석들.. 그 시절의 고난함과 회복의 기원들이 모두 어우러진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회를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전시회장을 찍을 수 있는 것을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았던터라 전시회장을 다녀와서 가져온 것들로만 사진을 남겨봅니다. 


몇 개의 팸플릿과 4.3에 대해 알리고자 만들어진 소책자, 그리고 전시회의 모든 작품이 수록된 도록 (현장에는 기획자님과 보릿대 작품의 이수진 작가님이 나와계셨는데, 특별히 색시가 사인을 부탁해서 이수진 작가님이 도록에 글을 남겨주셨네요. "아는 것이 힘이다. 제주 4.3의 진실이 있는 그대로 많은 분들께 알려지기를 소망하며.." 라구요.)과 보릿대 넣어서 동백꽃을 형상화한 열쇠고리와 가방 등에 꽂아 다닐 수 있는 동백꽃 브로치를 가져왔습니다. 


20년도 더 전에 제대하고서 4.3관련 책자를 5권인가 6권인가로 된 책을 사놓고서 아직도 읽지 못하고 책꽂이에 꽂아만 뒀는데 시간 내서 꼭 봐야겠다고 반성하게 됐습니다. 이범석 작가님의 4.3을 다룬 대하소설 <화산도>도 대출받아서 읽으려다가 그냥 반납했었는데.. 이 또한 꼭 도서관 다시 열면 대출해서 읽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소설 <여명의 눈동자>에도 4.3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니 읽어보시길)


일제시대, 여순반란, 제주 4.3, 6.25전쟁. 그 시절에 태어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만 생각해왔는데.. 우리는 후대의 사람이기에 알고, 기억해줘야 할 의무는 가진 게 아닌가. 왜곡되고 감춰지고 아직도 뭐가 진실인지 모든 게 불명확한 근현대사에 대해서 한 번쯤은 의식을 환기해야겠구나 하는 그런 마음속 작은 불씨 하나 켜지게 만든 시간이었습니다. 

 

덧붙임 : 이 전시회는 9월 16일까지 김제 금산사에서, 9월 18일에서 9월 29일까지 봉선사 육화당에서, 10월 8일부터 10월 21일까지 월정사 성보박물관에서 열린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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