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Music

서정민 - [Unspoken 5; 말하지 않는]

빨간부엉이 2022. 11. 13. 19:30

서정민 - [Unspoken 5; 말하지 않는] / 2022 / 사운드 프레스


List

1. Unspoken 5 ; 말하지 않는
2. 3


털실로 짠 스웨터가 하나 있다고 가정해보자. 
가요나 팝 음악들은 이미 다 쩔어서 내가 입기만 하면 되는 그런 음악일지도 모르겠다. 
연주 음악들은 대바늘, 코바늘이 준비되어있고 알록달록 예쁜 털실들이 구비되어 있는 상황에서 내가 실을 배치하고 형태를 만들어서 스웨터를 쩔어 기호에 맞게 입어야 하는 그런 음악?
실험음악이나 즉흥음악은 어떨까?
대기에 부유하는 실오라기들을 모으고 또 모아 손에 쥐어질 만큼 모이면 그걸 꼬아 실을 만들고 그 지난한 과정을 반복하고 반복하여 하나의 스웨터를 쩌는 일. 그런 것으로 비유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만큼 각본 없는 이야기들은 낯설고 이해하기 힘들다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멜로디 라인도 없고 기승전결의 승강으로 감정을 다스리는 서사 구조도 없다. 즉흥은 말 그대로 즉흥 아니겠는가. 

25현 가야금 연주자 서정민의 올해 신보 중 하나인 <언스포큰 5> 음반은 ‘GhettoAlive’의 특별 기획 시리즈에서 선보인 실험적 즉흥 공연을 기록한 음반이라고 CD 안에 적혀있다. 실험성과 즉흥성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이 음반이 담고 있을 소리의 성향은 짐작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난해한 아방가르드 재즈를 연상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미리 짐작하지는 말자.

음반을 재생하고, 작은 소리로 때론 큰 소리로 감상을 하고 또 감상을 해본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딴짓을 하며 불을 끄고 집중하거나 또는 뭔가를 먹어가면서 듣고 또 들어본다. 즉흥을 받아들이는 내 마음이란 건 정립해야 할 생각이 필요하겠기에 즉흥이 일상이 되는 그 순간까지 나는 이 음반을 여러 차례 플레이했다. 즉흥을 받아들이는 청취의 순간마저 즉흥이라면 플레이는 시공으로 흩어지고 감상은 찰나의 생각으로 시간 안으로 사라져 버릴 터이니 나는 새겨지고 직조되어 내가 걸칠 누더기일지언정 물화된 감각이 필요했음이리라.

전통의 서사는 없다. 귀를 집중하고 가야금의 소리를 길어내고, 전자음악의 배음을 솎아내어야 했다. 그 안에서 무엇을 발견하고자 함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저 느낄 수 있는 하나의 흐름을 건지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음반은 서정민의 가야금과 유태선의 전자음악, 박수정의 무용만이 크레딧에 올라와있는데, 즉흥을 기록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반문할 이도 있겠으나 기록이란 언제나 유의미하지 않겠는가 싶기도 하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어찌 이 기록을 귀로 들으며 상상의 날개를 펼쳐서 연주가 진행되는 공간을 상상하고 누군가의 손짓에서 뻗어 나오는 소리를 생각하고, 누군가의 기기 조작으로 나오는 기계적인 소리들이 어디까지 이 연주의 시간 안에서 영향을 주는지 생각하고, 보이지 않지만 누군가 이 낯선 사운드 위에서 몸을 움직여 하나의 세상을 창조하고 있는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없지 않겠는가 말이다. 

서정성이라는 틀에 갇힌 국악기의 변용된 창작 음악의 틀에서 서정민의 행보는 확실히 진취적이다. 지역 지역을 돌며 소리를 채집하고 그것을 본인의 것으로 체화하고 의식 안에서 나아감의 사운드를 펼쳐내는 일. 옛것을 능히 자신의 것으로 이미 녹여내었기에 가능할 진보한 사운드의 펼침. 
전위적이라는 것들이 주는 실체 없음이 주는 두려움과 막막함, 추상에서 느껴지는 공포감.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또 누군가는 이 음반에서 그런 감정을 느낄 수도 있을 일이다. 정해지지 않은 즉흥의 흘러감을 내 것으로 만들어 감상하는 일은 모두에게 열려있는 텍스트이겠기에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느꼈고, 아니면 느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지 스스로에게 반문해야 할 시간이 왔다. 언어는 느낌을 전달하려 애쓰지만 대부분의 텍스트화 되는 생각들이란 건, 의도라는 건 산으로 가기 마련이다. 내 생각의 배는 도대체 어느 동네 어느 산의 정상에서 표류하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다시금 이 배를 물가로 내려오게 하려면 뭔가 나도 정의를 해야만 할 것 같다. 날 선 사운드와 비껴서는 감정의 언어들이 충돌하는 46분의 시간. 거기에 나풀거리는 분홍빛 아지랑이는 없지만 생각의 생각이 빚어내는 공감각의 미학이 존재하는 시간. 내 생각의 배는 그렇게 허공을 맴돌고 있다. 

서정민의 가야금 소리는 이제 어디에서 존재하게 될 것인가. 그것이 늘 궁금하다.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TAG
more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