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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망하다'는 글의 뜻을 아십니까?
황당하고 어이없고.. 뭐 대충 그런 뜻인 줄 알았습니다.
위대한 네X버에 물어봅니다. 
1. 마음이 몹시 급하여 당황하고 허둥지둥하는 면이 있다.
2. 사냥이나 주색의 즐거움에 빠지다.
라는 두 개의 의미가 있군요.
제가 미루어 짐작한 의미와 상당히 멀리 있습니다.

연말에 음반 두 장을 선물 받았습니다. 하나는 22년 봄에 음원으로 나왔던 신지훈 양의 1집 음반과, 4 반세기 전 나왔던 귀곡메탈의 레이니썬 보컬이었던 정차식 님의 솔로 1집 음반입니다.
그러니까 '황망하다는 글의 뜻을 아십니까?라는 질문은 두 음반을 엮어서 얘기해보는 말장난입니다. 
음반 <황망한 사내>와 지훈 양의 싱글 '시가 될 이야기'의 첫 노랫말 '속절없다는 글의 뜻을 아십니까?'를 변용한 셈이지요. 
두 장의 음반을 받아 들고 제가 들었던 기분은 의미는 잘 못 알고 있던 황망한 느낌이었습니다. 주는 것 없이 받기만 하는 죄송함, 민망함, 속절없는 미안함 같은 것들.

신년이 밝아오고, 청소를 하고 차를 마시고 두 음반을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구매를 했다면 밀리고 밀린 허접하고 잡음 자글한 중고 음반들을 다 들을 때까지 몇 년이고 그저 미개봉 상태로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보내주신 이에게 지금의 제가 보답할 수 있는 길은 들어보는 것뿐이기에, 들어봅니다. 

시는 점점 죽어가는 말이 되어가는 시대. 대중가요에서 시적인 노랫말은 이문세 님의 파트너 이영훈 님이 세상을 떠난 이후로 좀처럼 만나기 힘들게 되어버렸습니다. 의미를 알 수 없고 좀처럼 알아듣기 힘든 노랫말의 홍수가 세상을 뒤엎기 시작했고 한번 홍수로 뒤덮인 세상은 좀처럼 마른 언덕을 보여주지 않고 있습니다. 방주는 어딘가에 정착을 해야 하는데 땅을 찾아 보내는 새들은 늘 돌아만 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새가 돌아오지 않는 그런 시간을 마주했습니다. 땅을 드러낸 소리, 감수성 짙은 20대를 갖맞이한 소녀의 내면 이야기. 신지훈의 음반은 그런 소리를, 그런 시의 말을, 그런 내밀한 언어들을 음률로 치환하여 길고 긴 홍수 위에 하나의 마른 뭍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 뭍 위에 정차식의 목소리는 상징으로의 시어를 그 땅에 심고 있습니다. 갈라지는 듯, 탁한 듯, 사랑을 읊조리지만 그것이 사랑이 아님을 생각하는 이야기. 
잊혀가기에 낯설디 낯선 시어들은 상호 보완하며 뿌리를 내리고 마음 안에서 의식의 잎을 피웁니다. 꽃은 언제 필까요? 지훈 양의 싱글 '목련꽃 필 무렵'의 하얀 목련이 피는 날이 오면 맞이할 수 있을까요?
물음은 언제나 답이 없고, 소리는 언제나 공허합니다. 음악은 언제나 갈증을 불러일으키고 부어도 부어도 메마른 땅으로 현현합니다. 갈라짐의 틈새에 늘 새로운 물을 부을 수 없다면 지금은 잠시 쉬어갈 시간. 이 두 장의 음반은 오늘 입김 나는 방 안의 추위와 함께 쉬어감을 선물합니다. 

시는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게 하고, 살아갈 날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 두 장의 시는 내일의 나에게, 미래의 당신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생각해 봅니다. 
시절은 언제나 우수에 차있고, 음악은 한 줌 햇살 같습니다. 젖어버린 마음 창에 자그마한 햇살이 마중했으면 좋겠습니다.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로젠바흐 님에게 속도 없이 감사함을 담아" 
23년 1월 1일 한낮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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