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Music

고진현 - [헤매다, 섬]

빨간부엉이 2023. 4. 23. 10:53

고진현 - [헤매다, 섬] / 2023 / 자체제작

List

1. 강화읍 궁골길
2. 섭순
3. 688살 나무에게
4. 텅


전반적으로 느린 호흡으로 노래를 하고, 자기 얘기를 건네는 음악인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아무런 사전 지식도, 정보도, 노래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는 뮤지션의 EP 앨범을 들어본 다는 건 신선한 인상을 준다. 몇 달 전의 펀딩 사이트에서 이것저것 음반들에 펀딩 참여를 했다가 지금의 내 현실을 인식하고 다 취소. 그럼에도 심사숙고해서 한 장의 음반을 남겼으니 그것이 가수 고진현의 EP <헤매다, 섬>이다.

하드커버로 만들어진 책자에 자신이 찍은 사진들을 꼴라쥬 하고 직접 쓴 글씨일까 싶은 재미나고 못생겨서 정감 있는 폰트를 사용하여 뭔가 짤막한 이야기를 건네는 책... 그 맨 앞에 한 장의  CD에 13분 정도의 네 곡 음악을 담았다. 

어린 여성으로 봐서였을까.. 맑고 밝은 어떤 심상의 이미지를 생각했었나 보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진득하고 묵직했다. 거기에 시골의 어느 시간을 이야기하고, 추억의 사람을 이야기하고, 오래된 나무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오래전에 한 두 장의 음반을 냈었다고 하는데 들어보질 못해서 짐작하지 못한 바.. 어쩌면 이 EP의 느낌들은 레트로 열풍에 편승한 그런 음악이 아닐까 걱정을 했는데, 문득 이 음반을 이야기하다 궁금해져서 폰을 켜고 유툽에서 검색을 해보니 일회성이 아니라 그런 삶과 시간을 살아오고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구나 알게 됐고, 안심했다. 머릿속으로만 상상하는 음악이 아니라 일상이, 살아온 시간이 묻어나는 음악을 만들고 들려주는 사람에 대한 믿음 같은 것이 생겼다고 할까.

자극적이지 않은 소리들과 함께하는 노래들, 음악가는 따뜻한 인사말과 쉼이 필요한 마음들을 담았다고 표현한다. 우리는 늘 지침을 얘기하고 쉬어야 함을 강조한다. 확실히 예전에 그런 개념들은 부족했다. 그냥 살아가기 바빴는데.. 지금은 모든 것이 바쁨x바쁨의 시대가 되어 그저 숨만 쉬어도 지쳐있고, 눈을 떠도 지쳐있고, 눈을 감아도 지친 듯한 기분으로 잠이 드는 시간을 살아간다. 부차적으로 쉼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부조리함. 그 모순의 시간들을 몇 곡의 음악이 타파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언제나 깨트려져야 하는 건 스스로의 마음이다. 단단하고 굳어져버린 마음의 결을 조금은 풀어진 느슨함으로 만들 수 있는 건 결국 자신의 결단. 그 결단의 단초를 제공할 수 있는 건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 알지 못하는 작가의 에세이 한 줄, 그저 어느 날 우연히 들은 한 줄기 음악의 선율.. 그 모든 것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 <헤매다, 섬>이 오늘의 나와 당신에게 그 마중물이 되어줄지 누가 알겠는가. 들어보고 생각해 보고... 아니 생각까지 하지 않아도 좋겠다. 그냥 흘려보내서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영혼에 조금의 수분이 흡수되는 것. 그것으로도 좋지 않겠는가. 그것으로도 한 장의 음반은 제 역할을 해낸다. 오늘은 이 음반과 함께 물기 머금은 마음으로 세상을 촉촉하게 바라보고 싶어 진다. 당신도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 누군가도, 자신이 사랑하는 음반 한 장과 함께 건조한 사막의 시절을 건널 수 있기를 바라본다.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TAG
more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