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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도 전주 우진문화공간에서 진행되는 판소리 다섯 마당 완창 무대 중 <춘향가> 무대를 관람했습니다.

작년부터 완창무대를 보기 시작했는데, 작년에는 <심청가>, <수궁가>, <춘향가> 무대를 봤었지요. 올 해는 첫 무대인 <흥보가> 무대를 일정상 놓쳤으니 내년에나 기대를 해봐야겠습니다. 

작년에 <적벽가> 무대를 보지 못해 아쉬웠는데.. 올 해도 어쩐지 날짜가 못 볼 것 같기도 하고 그러네요. 다른 판소리들은 그래도 음반으로도 들어보고 일상에서 많이 접하고 살아왔다고 생각하는데 <적벽가>는 들어본 적도 없고 생소하다 보니 기대가 큰 것 같습니다.

이번 <춘향가> 무대를 꾸며주신 조희정 소리꾼은 작년까지 전주예술고등학교에서 애들을 가르치고 있었나 봅니다. 스스로도 학교에 오래 있어서 감을 많이 잃으신 것 같다는 느낌으로 시작 전에 말씀을 해주셨는데, 확실히 긴장한 탓인지 첫 번째 휴식 시간 전까지의 무대에서는 소리도 무대도 연기도 굳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이후로는 소리에 대한 자신감이 좀 붙으신 건지 몰라도 확연하게 무대가 입체적으로 살아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별히 놀랐던 것은 조희정 님의 판소리가 지금까지 들어오던 소리와 꽤나 차별적으로 들렸다는 것이었습니다. 플랫 하다고 해야 할까요. 수평적인 소리의 결에 묻어 나오는 담백함의 소리들은 뭐라 말하기 힘든 묘한 느낌을 주었는데요. 그 잔잔한 소리의 파고 위에서 상승과 하강을 표현하는 소리와 이야기의 어우러짐은 스토리텔러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 것인지 새삼 실감하게 했습니다. 어느 정도 살아오다 보니 감동할 일이 크게 없는 편인데도 이야기에 버무려져 나오는 소리의 새로운 결은 시간이 갈수록 감동과 눈물을 짓게 만들더군요. 

공연은 3번의 휴식 시간 45분을 제외하고 거의 7시간을 달려서야 끝이 났습니다. 2시에 시작한 공연이 밤 10시가 다 되어서야 공연장을 나올 수 있었으니까요. 작년에 박애리 님의 <춘향가> 완창 무대는 쉬는 시간을 포함해도 6시간 정도였던 것 같은데 왜 이렇게 길어야 했을까.. 그 답은 ‘동초제’에 있었던 것 같네요. 제가 지금까지 알아왔고 들어왔던 <춘향가>와 사뭇 다른 이야기.. 아니 이야기 자체야 다르지 않지요. 표현이 전혀 다르더군요. 한자어 표현이 많은 기존의 익숙한 <춘향가>와 달리 ‘동초제’는 많은 부분들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이야기의 형태를 띠고 있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표현들이 좀 더 생활적이고 자연스럽고 전기수의 옛날이야기 듣듯이 푹 빠져들게 하는 자연스러운 이야기의 힘을 가지게 되더군요. 예를 들면 이몽룡이 춘향이를 처음 만난 광한루에서 방자를 시켜 춘향이를 오라고 했을 때 춘향이가 건네라고 한 유명한 말 “안수해 접수화 해수혈 雁隨海 蝶隨花 蟹隨穴” 같은 표현들은 <춘향가>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부분인데 이런 부분들이 싹 사라지고 그냥 일상의 대화처럼 창이 이어지지요. 

어떻게 보면 너무 통속적이고 세속적인 표현들이 여과 없이 전달된다고 생각될 수도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요. 그렇지만 아마 판소리를 접하고 살았던 어르신대에서는 ‘동초제’의 이런 형식 파괴와 서민적이고 일상적인 표현들이 훨씬 재밌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이렇게 이야기가 많고 부연 설명도 많고 하다 보니 완창의 시간은 꽤나 길어질 수밖에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특히 춘향과 이도령의 이별씬은 너무 길지 않은가? 할 정도로 상당히 긴 시간을 할애해서 이야기가 펼쳐지더군요)

고수님들은 작년에도 뵀던 3형제 고수님 중 두 분을 또 뵀네요. 작년에 <심청가> 할 때 전반부를 조용복 님이 하시고, 후반부를 조용안 님이 하셨는데.. 그때는 조용안 님의 북소리가 너무 강하고 시끄럽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근데 이번 완창무대에서 후반부에 조용안님의 그 강렬한 북 연주의 몰아치는 소리는 조희정 님의 소리를 표현하는 연기의 힘과 맞물리면서 굉장한 시너지를 발휘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소리꾼은 어떤 고수와 함께 하는가가 중요하고, 역시 고수는 또 어떤 소리꾼과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인가.. 이번 공연에서 여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책자에 적힌 동초제에 대한 설명을 옮겨봅니다. 

“동초제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춘향가 예능 보유자였던 김연수 (1907~1974) 명창이 1930년대 초 여러 판소리 명창들의 소리 중 좋은 점만 골라 창시하였다. 자신의 호를 따서 ‘동초제’라고 하였으며 가사와 문학성을 중시하여 사설이 정확하고 너름새가 정교하며, 부침새가 다양하다. 또한 가사 전달이 확실하고 맺고 끊음이 분명한 특징이 있다. 동초제 춘향가의 계보는 김연수-오정숙-조소녀-조희정으로 이어진다.”

 

완창 무대를 하면서 조희정 님은 꽤나 많은 부분의 내용을 건너뛰기도 하고 잊어버리기도 하셨는데요..ㅎ 조카분들이 그럴 때마다 프롬프트를 보면서 알려줘서 위기를 모면하는 순간들 조차 하나의 공연 퍼포먼스처럼 재밌었습니다. 그 길고 긴 시간을 달려 최종 목적지에 도달한 소리꾼의 노력이 눈물겨워 살면서 처음으로 맨 앞자리에 앉아있다가 용기를 내어 기립박수를 쳤습니다. 충분히 이날의 공연은 그런 찬사를 받을 만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공연 전에 사진을 보면서 이상하게 낯이 익다 싶었는데.. 약력을 보니 14년도에 마당창극에서 인상적으로 뵀던 분이더라고요. <수궁가>를 각색한 창극에서 토끼역을 맡으셨는데.. 당시 공연 모습을 찍은 사진이 남아있는 글을 링크하니 궁금하신 분은 누르고 보세요. 글 중간 지나서 토끼 분장하고 나오시는 분이 10여 년 전의 조희정 소리꾼님이시네요. 

아나 옜다~ 배갈라라!!! (tistory.com)

 

아나 옜다~ 배갈라라!!!

전주 한옥마을에서 해마다 야간 공연으로 열리는 마당창극 (올해로 세번째네요) 을 보고 왔습니다. 이번엔 수궁가를 창극으로 해석한 '아나 옜다 배갈라라' 라는 제목으로 유수의 창극인, 국악

redface2.tistory.com

이번 무대를 보면서 이야기에 푹 빠져서 자연스러운 추임새를 넣고, 눈물짓고, 스스로 자기가 귀명창이 된 것 같다고 하는 색시의 귀여운 모습을 보는 건 일상의 즐거움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다만 내년에는 이렇게 긴 무대를 다시 볼 자신은 없다고 해서 좀 안타까웠네요. 그래도 내년에도 같이 보면서 휴식 시간에 나눠주는 떡도 먹고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조희정 님 약력 

. 전북대학교 예술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 우석대학교 교육대학원 음악교육과 졸업

. 2014 전주세계소리축제 젊은 판소리 다섯 바탕 ‘춘향가’

. 2014 전주마당창극 ‘아나 옛다 배갈라라’ 토끼역

. 2006 국립창극단 정기공연 ‘십오 세나 십육 세 처녀’ 춘향역

. 2002 국립극장 완창 판소리 특별기획공연 차세대명창 공연

. 1998 동초제 판소리 ‘심청가’ 완창

. 1998 제16회 전주대사습놀이 학생전국대회 판소리부문 장원

. 2013 제39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명창부 장원 (대통령상)

. 2013~2022 전주예술고등학교 교사 역임

.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2호 판소리 춘향가 전승교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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