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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uter & Input Device

cherry 1800 黑雨

빨간부엉이 2008. 1. 2. 09:25



cherry 1800 黑雨

## 시간

흘러가버린 것을 돌려 놓고 싶은 마음.
기억의 시간을 돌려 놓고 싶은 마음이란 것은 후회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지금과 미래는 끊임없이 생성되는 과거의 중첩인 것을,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후회한들 지난 기억을 원점으로 돌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을...

그래.. 시간은 끊임없이 흘러간다. 그 영겁의 순리 안에서 하나의 '나'는 참으로 하찮은 미물인 것을.
무엇 남겨둘 것이 있어서 생각하고, 모으고, 버리기를 반복하는가.

태어났기에, 이름을 얻었기에 내 발자취를 남겨두고 싶은 것이라고 변명해야 하는걸까?
시간은 말이 없는데 마음안에 내리는 검은비는 참으로 요란한 소리를 내는구나...


## 마음.. 추억.. 그리고, 일기처럼..

며칠간 내린 눈이 쌓여서 세상은 눈나라가 되었다. 어제와 다를 것 없는 그냥 그런 날이지만 세상의 규칙은 해가 바뀌었다고 내게 통보한다.
그 바뀐 해의 첫날에 나는 또 시간안에 변명을 남겨두려 한다. 그것이 얼마나 헛되고 부질없는 짓인지 잘 알지만 살아있기에, 살아있음을 얘기하고 싶은 것.. 그것 뿐이다.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눈 내린 풍경을 바라 보노라면 태초의 풍경이 이러하지 않았을까, 추한 것들을 잠시 나마 덮어버리는 찰나의 순수.. 그러함이 떠오른다.
잠시지만 세상이 그렇게 순백의 순수함을 지닐 때 그 눈 밭에 던져진 이 하나의 키보드는 사람을 닮아있는 듯 하다.
끊임없이 하얀 순수의 세상을 추구하지만 산다는 것이, 숨을 쉰다는 것이 주는 버거움으로 결코 하얘질 수 없는 베이지의 절망.
그 안에 온통 검은색으로 치장된 마음이 담겨있다.
손해보지 않기 위해 속내를 차단하는 검정, 타락해버린 영혼의 검정, 티끌 하나에도 바로 표가 나는 순수함의 검정..
검은색 마음이란 건 정의할 수 없는 이상같은 것은 아닐까.. 문득 그런 바보같은 상념이 비 되어 마음안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나는 키보드라는 것에 대해 언제부터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지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니 6~7년 전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 있다. 웹 프로그래밍 과정을 마치고 같이 공부했던 형들과 창업을 했던 시절.
그 시절은 돌이켜 생각해보면 마치 소꿉놀이 같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없는데 면접 볼 기회도 갖지 못하는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 도망간 끝에 도달한 어린시절의 소꿉놀이 장난. 뭐 아무려면 어떻겠는가... 그때는 그 시간이, 그때의 사람들이 소중했었으니까...
입력기기에 관심이 많았던 창식형. 생각이 난다.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나..
모두가 그저 얻어 걸리는 키보드나 마우스를 쓰던 그 시절에 볼 마우스지만 10만원대의 무선 마우스를 사다가 써보고 좋아하고, 무선이 너무 좋다고 좋아하던 사람. 그 형이 쓰던 모 유명기업의 키보드는 타이핑 할 때의 기분이란게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이라는 걸 내게 일깨워 줬었다.
아마 지금이라면 그냥 줘도 안 가진다고 할 그런 키보드지만 당시 내게 남긴 형의 한마디는 키보드에 푹 빠져 살게된 내 모습을 만들게 해버렸었다.
'찰칵거리며 무거운 키보드가 있다'
기억안에 남아있는 그 한마디는 수십대의 키보드를 만져보고 떠나 보내고 망가뜨리기도 하는 지금의 나를 만들어 버렸다.

새해 첫 날부터 쓸데 없는 옛날 얘기를 하고 있네...
쌓인 눈 밭에 키보드를 툭 던져놓고 한장의 사진을 찍었다. 벗어나고 싶지만 아마 올 한해도 여전히 키보드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음을 마음이 이미 알고 있나보다..
이 키보드는 멤브레인으로 들어오는 키보드와 공구된 기판등을 이용하여 어떻게 기계식 1800 키보드를 만드는지에 대한 설명글을 위해 만들어졌던 키보드로, 공구됐던 압력 낮은 스프링과 종이 테이프 튜닝과 신품의 구형흑축이 적용되었던 녀석으로 기억한다.
당시에는 아무 생각없이 만드는 과정이 어떤지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글을 남겨두려고 만든 것이지만 지금은 가장 소중한 키보드 중의 하나가 되버렸다.
글쎄... 사람들은 허황되지만 이런 질문들을 자주 던지게 되는데 "당신이 가진 키보드들 중에 하나의 키보드만 가질 수 있다면 어떤 것을 가지겠어요?" 라는 식의 질문들.
바보 같지만 저 질문에는 답하기 참 힘들다. 다만 질문을 좀 바꿔서 "당신이 가진 키보드들 중에 키감이 제일 좋은 것을 하나만 가질 수 있다면 어떤 걸 가지겠어요?" 라고 질문 한다면 그때는 주저없이 이 키보드를 선택할 것이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이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얇은 레이저 키캡에 스테빌라이저 비 호환키캡의 키보드임에도 불구하고 키감 만큼은 그 어떤 키보드도 따라 올 수 없는 최상의 느낌을 선사한다.
군더더기 없는 순정의 깔끔함. 본 적도 없지만 날이 잘 벼려진 사무라이의 검에 비유해 본다. 칼집에서 나올 때 고요와 어둠 속에서 한 줌 섬광을 동반하는 그 느낌으로, 이 키보드는 타이핑시 가식없는 순수가 어떤 것인지 깨닫게 해준다.
사용기라는 것들은 생각이 전달되어 타인의 의식을 미리 오염시키는 것일 수 있겠으나.. 생각을 남기는 것 또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 거칠 것 없이..



수많은 변수와 마음안의 굴곡, 세상과의 타협등으로 살아가야하는 비선형Non-Linear의 세계 안에서 눌림 만큼의 압력으로 다시 피드백 되는 선형Linear의 세계는 가식 없는 순수함을 담고 있다.
영원한 순수함이 없듯이 이 키보드의 선형적 가치는 언젠가 변질되겠지만 최소한 이 키보드가 주었던 한 시절의 기억만큼은 앞으로도 명징하게 기억안에 남아있을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순백의 거짓된 세상과 그 안에 던져진 조금은 타락한 베이지 색상같은 인간 군상안에 속을 알 수 없는 마음이라.. 나는 이 키보드에 자신 마음의 생채기를 돌아보고, 느낄 때 사람이 흘릴 고통의 검은 눈물 만큼은 역설되게 고귀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검은색 리니어 스위치를 채용하여 'cherry 1800 黑雨' 라는 이름을 붙여본다.
그리고, 여기 한줄의 글을 덧붙여 본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무엇을 거칠 것인가. 단지 바람만이 그 방향을 바꿀 수 있을까..'

훌륭한 키보드를 만들 기회 주신 naga님께 이 글을 바치며...
2008년 1월 1일 산속 눈밭에서 외로움에 고립되어 빨간부엉이 헛되이 또 글을 남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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