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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불초자 열혈남아}

빨간부엉이 2006. 3. 19. 22:38
{뜨거운 피를 지닌 한 남자의 일생과 너무 차가워진 우리 피를 돌아보며}


뜨거운 피를 지닌 한 남자의 일생에 대한 영화를 본다. 도입부의 어둠속으로부터 밝은 빛으로의 주인공의 나아감은 영화 종반의 행복한 결말을 의미하지만 영화가 끝날 때 까지 나 종내 알 수가 없었다. 단지 더 이상의 비극이 없기만을 바랬다. 소오(여명 분)의 반항아적 기질이 아버지에 대한 불만으로부터 시작된 것임에 그의 자폐적 증상에 대한 합리화를 감독은 영화 속에서 꾀하고 있다. 가진 것을 빼앗기는 것에 대한 불만으로부터 해소되지 않는 부자의 갈등이 인연과 기다림이라는 주제와 함께 영화를 끝까지 이끌어가며 얼마 남지 않은 홍콩의 반환이 홍콩영화 전반에 가로 놓여져 있음이 느껴짐은 여러모로 좋은 시대의 좋은 영화를 빼앗긴다는 점에서 날 서글프게 만든다. 어떤 정책처럼 홍콩의 영화들은 비극이라는 정형을 유지하고 있고 그것은 자신들의 운명에 대한 비극적 암시처럼 보여진다.
아버지와 소오의 관계는 언제나 요원하다. -빵 사건 이후부터- 아무런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질문들을 관습과 세상은 소오 (버려진 의식의 소유자들)에게 던지고 아웃사이더의 모습이 그렇듯 체계화된 길은 언제나 그들의 몫과는 거리가 있다. 그 사이의 거리감을 좁히는 것이 인생이고 사유라고 생각되지만 -물론 어느 것이 옳다고는 할 수 없다- 몇 %의 다른 행보자들이 제길을 걷게 되는 걸까.
소오는 운명처럼 동동(오청련 분)을 만나고 이런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홍콩영화 특히 최근 왕자웨이의 감각적 영화에 많이 사용되어지는 보이스 오버-일반적인 나레이션과는 달리 자기 (극중인물 또는 감독의 생각)의 생각을 직접 말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상상적 여백과 함께 문학적 느낌을 강하게 준다.-기법이 나오고 난 그런 느낌이 좋아서 홍콩영화를 많이 사랑하게 된다. ‘세상에는 상대방과 자신까지 속일 수 있는게 있다. 그러나 속일 수 없는게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때의 눈빛이 그러하다.’ 속이지 않는 속일 수 없는 눈빛으로 동동앞에 다가 서는 소오-그러나 요즘의 젊은 사랑 감각은 그러함마저도 배제한채 인스턴트적으로 자신의 감정에 이기적으로 순응하고 -에게 동동은 묘한 감정을 느끼고 소오가 제시하는 미지의 다음으로 뛰어간다. (함께) 홍콩의 영화들은 언제 끝이 날지 모르는 자유 창작 의지를 최후까지 버리지 않는 마지막 홍콩 영화 감독들에 대한 오마쥬처럼 생각된다. 엘리베이터에서 웃는 모습은 누군가를 닮았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자아내며 아위라는 중국형 인물을 보여준다. 아위는 언제나 동동을 갈구하지만 모든 것이 분명해지고 결국 아위도 동동도 종내는 혼자다. 소오는 첫 만남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감옥에서 보냈으며 홍콩도 가보지 못한 곳이 많다고 말을 한다. 감독의 개인적인 독백처럼 들려지며, 홍콩에서 모든 것을 보낸 그들에게 어떤식으로든 감싸 안아야 할 부분이며 보내야할 사랑의 총체처럼 말이다. 오뎃사의 계단은 아니지만 영화의 전반의 흐름을 주도하는 사람들간의 인연이라는 것을 개척이라는 의지로 보여주는 계단씬이 나온다. 인연에 대해서 묻는 소오와 대답치 않고 생각하며 ‘왼발이 먼저 닿으면 인연이 있고, 아니면 없는 거야’라고 계단을 내려가는 동동. 그러나 오른발이 먼저 닿게 되자 두발로 뛰어 내리며 인연이 있다는 대답을 한다. 유치하다고 생각한다면 한이 없지만 따뜻한 감정을 이끌어 내는 것은 결국 관객의 몫이므로 난 피천득의 인연도 떠올려보고 내 기억 속의 인연도 떠올리며 내 인연에 대한 개척 정신의 부족을 탓해보기도 한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가장 잊혀지지 않는 장면은 동동과 친구의 대화에서 나온다. 한권의 재밌는 책, 다음 장을 궁금하게 만드는 책, 좋은 책이라면 간직할 거라는 말. 우린 사람들에게 어떤 책으로 비쳐질까 궁금해진다. 자신의 가치를 무용한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을 이면지 모음함 속의 이면지라고 생각하기를 권해보고 싶어진다. 다 쓰여진 듯 하지만 이제는 버려야 할 생이라 생각할 때 인생의 그 이면에 새로운 시작의 힘이 있음을 생각해 보기를 그리고 자신의 책을 항상 무언가를 지닐 수 있는 여유의 공간으로 만들기를 권해보고 싶기도 하다. 사랑의 힘, 눈을 몇 천번이고 떳다 감으면 그가 내 앞에 나타날 것처럼 그런 기다림. 우린 얼마나 기다릴 수 있는 것일까? 사람들은 잠시의 기다림도 참지 못해 전화를 만들고 이제는 휴대폰이라는 것까지 일상적으로 쓰이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나 기다림을 준비하는 이들의 모습은 아름답다.
기다리며 만들어지는 인연을 위해서 조금 작위적이지만 소오는 살인누명을 쓰고 연행되며 동동은 실망을 느끼께 된다. 그저 세상이 모두 믿어주지 않아도 사랑하는 단 한 사람만 믿어주기를 바라며 탈출과 만남 기다림이 반복되고 현대의 발달된 통신망을 사랑의 수단으로 이용함을 상징하듯 몇백번의 전화 호출 메시지로 이제 동동과 소오는 이동 전화국의 교환수들에게 유명인물이 되어버린다. 믿음을 배신당하고 믿음을 배신하는 속에서 동동은 아위와 결혼 약속을 하고 소오는 과거의 기억에 집착한채 부두에서 동동을 만나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그를 찾아온 것은 경찰이며 소오는 인연의 끝이라 생각하게 된다. 아버지는 동동의 말처럼 다시 한 번의 기회를 위해 투쟁을 하고 결국 누명을 벗은 소오는 영화속 갈등의 일부를 해소하게 되고 가족을 위해 -사실 굴레에 얽메였다는 생각도 들지만-살아간다. 그렇게 흐른 시간이 이년이며 그 뒤 소오와 동동은 재회를 하지만 감옥에서 읽어보지 않은 편지처럼 오해의 골이 깊어가게 되고 익숙치 못한 세상에 대한 회상속에 끝없는 인연을 갈구하며 이동통신에 의해 예전의 그 부두에서 재회를 한다.
사람들은 언제나처럼 아주 아무렇지도 않게 만나고 헤어지고 일상이란 늘 무미건조함으로 인해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닌지. 뒤늦게 바라본 ‘불초자 열혈남아’의 화면속에서 날 헤어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은 너무나 유명해져 이제는 식상해 버린 왕자웨이의 스텝프린팅기법-배경화면의 역동화로 감각적 영상을 표출하는 기법. 주인공의 심리상태와 행동변화의 긴박감을 강조함- 등의 현람함이 없는 사유와 관념 평온의 일상등이 보여짐이 무척이나 -옛것에 대한 소중함처럼-반갑다. 소오와 아버지와의 관계는 지금에 와서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부권 신장이라는 측면에서 -사실 가부장제의 부활이라는 것은 그다지 반갑게 여겨지지는 않는다. 보수와 변화와 이중적 자아속에서 방황하는 나에게도 일인 군림이라는 것은 비록 편향된 시각이지만 그리고 페미니스트가 아니더라도 부담감으로 받아들여진다.- 자녀와 함께 보기에도 부담이 없다고 생각된다. 폭력미학을 추구하는 선혈이 낭자한 화면도 배제됨이 영화의 깔끔함을 돋보이게 하며 최근 개봉한 첨밀밀로 이어지는 여명과 장만옥의 또다른 인연과 기다림의 사랑에 대해서 너무나 궁금하게 만드는 것은 내가 그리고 우리가 사랑에 목말라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은 아닐는지. 좌파 계열의 한 잡지에서 생땍쥐베리의 ‘어린왕자’를 비판한다. 아마도 여우와 왕자의 길들임에 대한 담론이 이유가 된듯하다. 주종관계는 지금도 존재하고 있고 아마도 어떤 식으로든 영원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난 길들여지고 싶지만 기다림과 인연에 대해서는 순응치 않고 싶다. 개척이라는 이름으로 운명을 거스르는 그런 뜨거운 피를 지닌 한 사람이 되고 싶다.

Text by "생각산실 빨간얼굴 -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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