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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무극} - 첸 카이거

빨간부엉이 2006. 3. 19. 22:46
첸 카이거 감독의 영화 <무극> / 그 실망의 뒤에 서서



그렇다. 시대는 과거 우리가 거장이라 부르던 이름들을 마음대로 호명하고.. 또 그렇게 짓밟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무극>의 영어제목인 '약속'.. 그 약속의 끝에서 감독이라는 사회적 직업을 가진 한 사람은 대중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함인지 아니면 사회인으로서의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 위함인지.. 자신에게 주어진 {거장}이라는 타이틀을 긴 그림자로 간직한 채 상업주의 한켠에서 새로운 행보를 내딛었다.
그러나.. 그 약속은 누구를 위한, 또는 누구에게 하는 약속인가?
라는 질문이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첸 카이거' 그는 장 예모 감독과 함께 90년대를 살아간 젊은 지성에게 가장 영향력있는 중국의 거장이었다.
왜 그는 거장이었었는가?
누구에게도 하지 않은 그 약속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들고나온 영화 <무극>으로 인하여 이제 그는 '중국의 거장이었다' 라고 불리워질 그런 감독이 되어버렸다.
사회주의하에서 만들어지는 영화와 국제적 수상.. 그 틈바구니에서 만들고 싶었던 영화들은 분명히 이런 시대착오적인 영화는 분명 아니었을 것인데..
그는 어쩌다가 지키지 못할 약속을 세상에 남기고 말았을까.
사회주의가 소멸되어가는 중국에서 그는 홍콩의 감독들처럼 헐리우드에서 성공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진정 이 영화 <무극>이 삼국을 아우르는 거대 프로젝트로써 자신의 이름이 21세기 현재의 시점에서도 거장이라 불리워지고 싶어했던 것일까?
장 예모가 <영웅>과 <연인>으로 최소한 시각적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함에서 일말의 성공을 거두었다면.. 그에 대한 영향이었던 것일까?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20세기에나 통할 듯한 오리엔탈리즘의 영향이 서구에서 여전히 유효함을 장 예모가 <연인>과 <영웅>에서 극단의 색채미학과 시대에 걸맞는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치장하여 상업적 감독으로 새로운 발을 내딛은 그 자리의 뒤에서서..
첸 카이거는 너무나 멀리 그리고 앞을 향함이 아닌 지난 시절로 회귀한 듯한 모습을 보인다.
<무극>에서의 초기 계곡 전투씬에서 보여지는 황족의 군대의 의상을 보면 장 예모의 영향이 이 영화에 얼마나 길게 드리워져 있는지 단적으로 짐작하게 만든다. 황토와 잿빛의 계곡에서 붉디 붉은 군대의 복색은 지나치게 이질적으로 다가와 시각적인 볼거리에 얼마나 첸 카이거가 집착하고 있는지 쉽사리 보여지게 만든다. 달리 말하면 판타지의 영역이 아니었음에도 <영웅>이 그 화려한 색채를 이질적으로 보여주지 않음에서 일말의 성과를 거두었다면 <무극>에서의 이 배타적으로 동화되지 않는 이질적인 컬러배합은 계곡 전투에서 얼마나 현실적이지 못한지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영화 <무극>의 가장 결정적인 실패요인은 무엇보다 컴퓨터 그래픽의 시대착오적 활용에 있다고 보여진다.
황제가 사는 궁성의... 마치 이제 막 이미지웍스나 마야, 3D-MAX를 배운 학생의 실습작품 같은 유리된 이미지의 배치는 사람들 모두에게 실소를 자아내게 하기 부족하지 않았고 궁성으로의 진입로는 칼같은 벼랑 외길 한 길 뿐인 것 또한 지나치게 어이없는 실소를 짓게 만든다. 입구에 병사 조금만 배치하게 된다면 그 안에서 고립되어 자멸할 그런 공간..
이 우스꽝스런 한편의 영화는 마치 1980년대나 90년대 홍콩이나 한국에서 만들어진 컴퓨터 그래픽이 들어가야만 했던 그런 영화들로 퇴보한 듯한 인상을 준다.
왜 환상과 현실의 구분이 전혀 없는 듯한 현대의 영화에서 이렇게 어이없는 화면을 만들어낼 수 밖에 없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영화의 단선적인 내러티브와 몇 등장하지 않은 인물들의 감정선에서 이 영화가 가진 가치를 찾아내거나 만들어내보고 싶어도 그 내포한 심오한(?) 첸 카이거의 이상을 알아주기에 나의 눈과 마음은 너무 고급의 기술과 복합적인 이야기들에 길들여져 있는건 아닌지 생각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갈망한다.
자신의 꿈을 위해 자신의 미래를 위해.. 영화 <무극>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자신의 갈망의 노예들이다. 그 안에서 '약속'이라는 무거운 현실의 짐을 어떻게 털어버리고 새로운 주체로 나아가고 변신하는가.. 최소한 이 영화에서 거둘 수 있는 수확이라면 그런 갈망의 노예에서 어떻게 새로운 세상과 시대의 사람이 될 것인가 하는 질문을 건져냈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이렇든 저렇든.. 첸 카이거의 다음 영화가 이런 관객과 시대를 기만하는 영화가 아니기를 간절히 희망해본다.
그런면에서 감독은 세상과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약속' 하나를 남긴 셈은 아닐까...

2006년 2월 18일 Text by Minerva's Ow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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