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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전쟁} - 스티븐 스필버그

빨간부엉이 2006. 3. 19. 22:49
영화 <우주전쟁> - 911에 대한 스필버그식 답변인가?





<우주 전쟁> (War Of The Worlds, 2005)


아무리 웰스의 19세기 원작소설이 존재하고 리메이크 작품이라고는 하지만 변해버린 시대에 이 작품의 시작과 끝나기까지의 런닝타임은 마치 아무것도 없는 혼돈에 대중을 내팽겨쳐 버린 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렇다.
그것은 마치 어느 마른 날 비행기 두대가 날아와 그네들의 자랑거리인 빌딩을 가미가제식으로 날려버렸을 때로부터 시작했는지도 모를일이다.
그 대지는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 가 되고 그네들의 의식 깊은 곳에는 저마다의 상처와 기억과 고통이 자리잡고 있을 터...
한때는 테러와 관련된 영화가 금기시되고 터부시되던 짧은 시기를 뒤로하고 상업성이라는 이름은 그 고통에 날카로운 매스를 다시금 들이밀기 시작했다.

왜 미국이라는 나라는 자신들의 공간을 늘 테러와 위험과 공포에 노출되어 있는 공간으로 그리길 좋아하는 것일까?
그 문제에 깊이 천착하다보면 해답을 찾기 어려울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표피적으로 보이는 그런 현상은 마치 자신들의 기득권과 세계 인류를 지배하는 국가의 나름대로의 힘겨움을 토로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들을 비판하고 매도할 여지를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하는 감정선에 대한 호소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가끔 해보게 된다.
대규모의 자본과 재난영화에 대한 오랜 시간의 노하우는 그 스펙터클의 규모 측면에서 어느 나라에서도 따라올 수 없는 피해상황을 묘사할 수 있는 수준이고 정부와 미 영화계의 합작품인 영화들이 이런 테러피해국, 또는 재난피해국으로서의 미국을 그리는 데 열중하는 큰 이유이자 음모이론의 한장이 될 수도 있을지 모를 일이다.
더불어 언제나 휘날리는 성조기와 피해의 시작이자 그 끝의 원동력과 노력을 자신들의 땅과 기술과 노력으로 포장하고 마무리 짓는 답습의 현장은 이제 식상할 대로 식상한 주제일 수도 있겠다.

스필버그는 왜 여기서 갑자기 우주전쟁이라는 50년대의 공상과학 영화를 들고 나온 것일까?
스필버그의 영화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내게는 언제나 그의 영화들이 2류 영화로 치부되는 터인데, 그나마 <마이너리티 리포트> 같은 영화는 여러면에서 괜찮았던 수작이라고 생각하지만 -원작 소설이 좋아서였기도 하겠다- <우주전쟁>은 마치 한편의 쇼를 보는 듯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거기에 하나의 합당성을 제시한다면 바로 그것은 '911'은 아닐까...
마른 하늘의 날벼락 같은 날 이후로...라는 명제에서 시작한다면 <우주전쟁>은 아주 그럴싸한 시작을 보여주는 셈이다.
마른 하늘의 날벼락 처럼 어느 날 벼락이 치고 땅에서는 우주 괴물들이 나타나 사람들을 태워버리고 녹여버린다. 심지어는 갈아서 대지와 대기를 핏빛으로 물들이기까지 한다.
미 대중의 의식에 911은 어쩌면 대지와 대기가 핏빛으로 물든 아마겟돈의 한장면처럼 각인되어 있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고 스필버그는 그 각인된 공포를 노골적으로 화면밖으로 끄집어내기를 주저하지 않음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아무런 설명도 없이 불쑥 시작된 습격과 피해와 그리고 어이없는 결말의 반복은 -조금은 다른 식으로 각색했다면 어땠을까- 왜 엄청난 돈과 캐스팅 비용을 쏟아붇고서 이런 영화를 보여주고자 했음일까 하는 의문을 남겨놓게된다.
따라갈 수 없는, 또는 따라가서도 안되는 내러티브상의 난맥은 화려한 볼거리에도, 오마하 해변의 뉴스릴을 연상시키는 전투씬에서도, 톰 크루즈의 멋진 마스크에도, 다코다 패닝의 두렵디 두려운 그 눈에도 상쇄가 되질 않는다.
나에게 있어서 스티븐 스필버그가 작가주의 감독이 될 수도 없고, 탁월한 상업 감독이 될 수도 없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에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언제나 작가주의와 상업성의 양다리를 걸친 감독 스필버그... 그에게서 작품이라 불릴 만한 그런 영화가 나올 수는 없는 것일까?

다코다 패닝- 이 아이를 보는 일은 이제 불편함을 동반한다. <아이 엠 샘>에서 보여지던 그 꼬마의 어른스러운 능청스러움은 이제 헐리웃 감독들의 대표적 아역 아이콘이 되어버렸고, 마치 세상 다 산 노인의 빙의가 되어있는 듯한 이 아이의 영화속 연기들은 그 커다란 두 눈에서 보여지는 공포스러움 만큼이나 내게 두렵게 느껴질때가 있다.
헐리웃에서 현재 최고의 금액을 거둬들인다는 여배우가 아역배우라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이 아이의 조숙함은 너무 일찍 바닥나고 고정화되어 세상에서 버림받을 지 모를 걱정이 앞서게 된다. <테이큰>을 본 지 얼마 안되어서 일까.. 너무 많은 능력을 써버리고 소멸되어가는 <테이큰>의 캐릭터들처럼 패닝은 너무 빨리 소멸되어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애드워드 펄롱, 매컬리 컬퀸, 드류 배리모어등의 아역스타들이 걸었던 성장통과 소모와 폐기의 길 위에서 패닝이 영화속 어른스러움 만큼이나 현명한 길을 선택하길 고대해본다.
불편하고 두려운 아이지만 가끔은 아직 사랑스러운 모습이 남아있기에...

2006년 3월 14일 Text by Minerva's Ow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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