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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청연} - 윤종찬

빨간부엉이 2006. 3. 19. 22:48
영화 <청연靑燕> - 추락하고 잊혀져버린 한 사람에 대한 기억





<청연>靑燕: Cheung Yeon, 2005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지난 몇 년간의 노력과 기다림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직접 목격하는 일은 참으로 암담하고 가슴아프기 그지없는 일임에 틀림없다.
일제강점기의 망령이 반세기를 훌쩍 지난 지금에도 우리의 의식을 이리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것이 슬프기 그지없다.

영화 <청연>은 1930년대 조선 최초의 여류비행사인 박경원의 짧은 생을 아이의 시선에서 죽음의 순간까지 일대기 순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여기서 박경원이 최초의 비행사인가 아닌가 하는 그런논란 따위는 잠시 접어두고 싶다.
최초인가 아닌가 하는 그런 논의따위가 중요한 그런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상반기 최고의 영화가 될 수 있었던 자리와 그만큼의 완성도를 가진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친일' 이라는 두려운 수의를 여론과 대중은 <청연>에 입혀주었고, 그렇게 푸른제비는 짧은 기억만을 남긴 채 필름창고안에 묻혀버렸다.
<청연>은 98년에 쓰여지던 주제인 '싸움터에서 생각하기'의 한꼭지를 차지해도 좋을만큼 무언가를 이야기하기 좋은 주제였으나 지금은 민감한 부분과 그 부분을 건드려볼 수 있는 의식의 깊음 따위가 남아있지 않기에 그저 간단한 영화 <청연>의 느낌이라도 기술해보고자 한다.

조작과 은폐... 어느 것이 진실인가? 영화가 남긴 것은 그 안에 담긴 내용과 감독의 메세지가 아니라 '친일파의 미화'라는 마녀사냥식의 타이틀만을 남기고 말았는데 영화 도입부의 아이의 시선에서 보여지는 일본군에 대한 시각 -닌자로 생각하며 그것을 즐거워하는- 은 그런 논란을 불러오기에 충분하다고 보여졌다.
그렇지만 감독이 얘기하고자 했던 것은 박경원이 뼛속부터 일본을 동경하는 그런 의식의 소유자가 아니라 당시의 상황과 어린아이의 서구문물에 대한 감성과 동경을 우회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았는데, 끊임없이 부모로부터 구박과 구타를 당하면서도 배움의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했던 한 아이와 날고자 하는 것에 대한 동경의 마음이 식민지 시대와 동시대의 욕망하는 의식이라는 점에서 박경원에게 면죄부를 주고서 영화를 시작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그렇게 훌쩍 영화는 아이의 아픔과 희망속에서 일본땅의 한 비행학교로 전이가 되는데 성인이 된 박경원의 짧은 생을 어느정도 감추고 어느정도 드러내면서 보여주었다고 생각하는데 상업영화라는 틀 안에서 감독이 선택할 수 있었던 이야기의 구조와 전개라는 측면에서 이해가 가지 않음은 아니지만 좀 더 사실과 날카로운 실체를 직접적으로 보여주었다면 좋았을거라고 생각해본다.
그렇지만 영화 <청연>에서 감독 윤종찬이 얘기하고자 했던 바는 친일파인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라,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던 어느 사람의 한 일면이 아니라, 욕망하는 주체로서의 자아를 그려보고자 했다고 보여진다. 여기서 친일이라는 민감한 문제와 우리 의식의 뿌리깊은 트라우마를 걷어내고 영화를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이 영화가 가진 잔잔한 재미와 순간순간의 감동이 마음 한켠에서 조금이나마 생겨남을 경험해볼 수 있을 거 같다.
그런면에서 들여다보기 시작한다고 해도 <청연>이 노골적인 감동이라는 감정선에 많은 부분 기대고 있는 것이 아니기에 '재미'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그다지 재미없을 수도 있지만 직접 보지 않고서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는 것 만큼 위험한 것이 없으니 한번쯤은 다양한 감상루트를 통해서 봐 두는 것도 좋지 않을까...

<소름>으로 놀라운 데뷔신고를 치뤄낸 윤종찬 감독이 선택한 차기작 소식이 들려오던 몇 년 전으로부터 제작중단 위기의 기사들과 제작사 변경등.. 기다림속에서 난 이 영화가 눈앞에서 보여질 수 있는 것인가 끊임없이 걱정을 했었다. 단편 시절부터 윤종찬 감독의 작품을 좋아했고, 데뷔작인 <소름>은 기억 안에 있는 가장 중요한 한국영화 세 편 중 하나였기 때문인데 뚜껑이 열리자마자 영화는 보여짐 없이 난도질당하기 시작했고 그건 마치 내 기다림에 대한 비웃음처럼 느껴졌었다.
모두가 <왕의남자>를 보는 한켠에서 서너명뿐인 극장의 자리에서 그 서너명의 대중이 되어서 영화를 보는 심정이라니..
그러나, 그런 비참한 기분을 상쇄시키고도 남는 그 무언가가 화면에서 보여졌다는 것을 얘기해보고 싶었다. 블럭버스터 영화 <청연>.. 몰랐지만 나중에서야 무척이나 많은 비용이 들어간 영화이며 그로 인해 제작에 난항을 겪었음을 알게 되었는데 블럭버스터라고 불리워질 만큼의 무언가가 화면을 채우고 있지 않음에 놀라웠는데, 그 놀라움은 영화가 드라마를 따라가는 작은소품류의 그런 영화가 아니라 마치 드라마를 따라가는 작은소품류의 영화처럼 보여지기 원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것에서 오는 놀라움이었다.
그것은 영화를 보는 내내 블럭버스터급이거나 그로 인한 인위적인 것을 화면에서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물흐르듯 자연스러움.. 그것은 영화 <청연>이 단 한번이라도 주목받아야 하고 기억에 남아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아닌가 생각을 해보는데, 비슷한 시기에 본 삼국프로젝트인 <무극>에서의 비참하기 그지없는 CG시퀀스들이 <청연>에서 전혀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움으로 시각안에서 흘러감을 경험해보았기 때문이다. 많은 비행장면과 'Mob scene(군중장면)'에서의 제작후기를 보면 '아! 이런 부분들이 CG였구나' 하는 그런 놀라움을 가지게 되는데 <청연>이 가진 가장 큰 미덕으로 내가 꼽는 부분은 바로 이런 부분이 아닌가 싶다. 조작된 화면임에도 조작되지 않은 자연스러움으로...

하지만 <청연>은 많은 부분에서 약점을 또한 지니고 있음을 간과하지 않을 수 없다. 중요하고 민감한 사안들을 -예를 들면 비행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순회연설등의 뒷 모습- 슬쩍 비켜가는 모습이나, 실제하지 않았던 대부분의 것들을 화면안에 끌고 들어와 대중의 감정선에 일렬종대로 늘어놓고 본질의 시선을 피해가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들. 그런 자잘한 느낌들이 축적되어 영화가 끝나고 나면 약간의 허무함이 남을 수 밖에 없게 되는데, 민감한 사안들을 자잘한 사랑이야기나 비행학교 동생과의 감정문제등으로 덮어버린 듯한 인상은 이 영화의 약점으로 남아있는 듯 하다.

영화는 끝이나고 저조한 관객동원 실적이라는 현실만이 남아있다. 박경원이 처음 보는 비행기는 추락하는 비행기였고, 박경원은 일생의 꿈을 실현시키고자 했지만 일본땅조차 벗어나지 못한채 추락하여 생을 마감한다. 그 수미쌍관식 시작과 결말은 영화의 외적현실에서도 고스란히 펼쳐지게 되었고, 윤종찬 감독의 입지는 그만큼 좁아졌을터이다.
벌써 다음영화를 기다리는 것은 무리가 아닐 수 없지만 실패한 감독이라는 오명하에서 잊혀지지 않기를, 다시금 새로운 영화를 들고나와 내 의식을 놀래켜주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아름답지만 슬픈 느낌의 푸른제비가 아니라, 소름돋는 느낌의 황폐한 아파트에서의 두려움이 아니라, 단편에서 보여지던 성찰과 시선을 세 번 째 장편에서는 보여줄 때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2006년 3월 13일 Text by Minerva's Ow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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