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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그대 있는 곳에 (글 : 김응한)

빨간부엉이 2006. 3. 19. 22:26

음반명 : 그대 있는 곳에
작곡자 : 신중현
제작사 : ?
장르 : 발라드 & 사이키델릭
작성일 : 2001-11-04 오전 12:27:33
음반번호 : 5


응한님의 홈피에 최근 올라온 리뷰중의 하나를 옮겨왔습니다. 저도 들으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던 음반 Side B의 연주에 대해서 아주 감칠맛나게 표현한 응한님의 리뷰를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소개합니다. 희귀음반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쉽게 들어보지도 접하지도 못하는 음반이며 음반 자켓은 저도 이번에 처음 보는 거랍니다. ^^;
응한님의 홈페이지에 아트락 그룹인 고블린의 최근 음반소개등 새로운 음반리뷰가 올라가 있으니 한번 찾아가서 읽어들 보셨으면 좋겠네요.
수록곡중에 두 곡 정도 나중에 음반 가져다가 파일변환해서 들려드릴 것을 약속드리며 일단은 글로 기대를 한껏 부풀려 보시길 바랍니다. ^^

영국에 와서 제가 처음으로 소개하게 되는 한국락 명반입니다. 저의 개인적 음악 취향을 아시는 분들이라면 이미 제가 이 앨범을 얼마나 침이 마르도록 극찬하는 지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이 앨범은 1974년 초반에 발표된 속칭 신중현 사단의 여자 가수 지연 씨의 앨범이며, 지연 씨의 유일한 독집 앨범이자 The Men의 마지막 레코딩으로 추정되는 음반이기도 합니다. (한국 음반을 소개하며 '추정'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정말 화가 나는군요.)
이 앨범은 엄연히 '지연'이라는 여자 가수의 이름으로 발표된 음반이기는 하지만 지연 씨와 The Men의 스플릿 앨범이라고 말하는 편이 나을 듯합니다. 앞면에서는 지연 씨께서 노래를 부르고 있으며 뒷면에서는 그녀의 보컬이 전혀 없이 신중현 씨께서 노래를 부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음악적으로도 앞면과 뒷면의 음악은 완전히 다른 스타일로 분리되어 있지요. 앞면의 곡들은 당시의 팝 음악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곡들이지만 뒷면의 곡들은 완벽한 싸이키델릭 락을 담고 있습니다.

앞면의 곡들은 오케스트라 연주가 도입되는 '그대 있는 곳에'나 '처음 보는 순간에' 등의 곡이 있기는 하지만 결코 실험적인 성향의 음악은 아니며 대부분 사랑에 관한 가사를 담고 있는 평범한 팝 음악들 뿐입니다.
앞면에서 눈여겨 볼 만한 곡은 역시 명곡 '미련'입니다. 김추자 씨가 파워풀한 목소리로 부른 '미련'도 아니며, 다소 경쾌한 편곡에 맞추어 임아영 씨나 장현 씨가 부른 가벼운 분위기의 '미련'도 아닙니다. 가사가 담고 있는 처절한 시련의 슬픔이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버전입니다. 이 곡은 전체적으로 실연의 깊은 슬픔에 빠진 나직하고 우울한 목소리로 느리게 곡이 진행되기 때문에 매우 가라앉는 분위기이지만, 떠난 사랑이 돌아오기를 희망하는 가사에 이르러서는 감정이 한없이 고조됩니다. 다른 어떤 이들이 부른 '미련'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슬픔을 전달하는 최고의 편곡과 목소리입니다.

뒷면에 수록된 단 2곡이 바로 이 앨범의 가치를 말하는 곡들입니다.
'그리운 그 님아'는 1964년 발표된 우리나라 최초의 락 밴드로 기록되는 ADD4의 첫 정규 앨범에 수록된 다소 촌스러운 원곡을 완전히 새롭게 싸이키델릭 하드락으로 편곡하여 연주한 곡입니다. 이 곡은 지미 핸드릭스를 연상시키는 귀에 착착 달라붙는 쫀득쫀득하며 박력있는 기타 리프로 시작하며, 보컬 파트가 시작되면서는 놀라움을 금치 못할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평소 다소 아마추어적이며 미숙한 듯 노래를 불러오던 신중현 씨의 보컬이 이 곡에서 만큼은 아메리칸 하드락을 연상시킬 정도로 호쾌하고 힘이 넘칩니다. 당시의 키브라더즈 등의 싸이키델릭 하드락 밴드들이 들려주었던 호쾌한 보컬과는 또 다른 자유분방함이 한없이 표출되는 목소리입니다. 곡의 후반부를 장식하는 신명나는 기타와 키보드의 합주 또한 매우 멋집니다.

뒷면의 두번째 곡 '안개 속의 여인'은 [장현 & The Men]에 수록된 가벼운 느낌의 곡과는 차원이 다른 싸이키델릭의 극치를 선보이는 이 앨범의 백미이자 이론의 여지가 없는 한국락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명곡입니다. 이 곡은 '아름다운 강산'의 오리지날 버전처럼 11분에 달하는 대곡입니다. 이 곡은 크게 기타 솔로가 등장하는 초반부와 보컬이 등장하는 중반부, 키보드 솔로가 등장하는 후반부로 나눌 수 있는 곡입니다. 초반부에서는 리듬 파트인 드럼과 베이스는 아무런 변화없이 계속 같은 연주만을 반복하며 사람의 정신을 멍하게 빼놓기 시작합니다. 이 위에 끊길 듯 말듯 아슬아슬 긴장감을 극도로 유발하는 신중현 씨의 신들린 기타 에들립이 사정없이 몰아칩니다. 이러한 기타 연주는 김정미 씨의 목소리와 일맥상통하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싸이키델릭 그 자체입니다. 보컬이 시작되는 중반부에 접어들기 전 같은 연주만을 반복하던 드럼 연주는 키보드와 병행하여 곡의 분위기를 매우 극적으로 상승시킵니다. 곡의 정점을 치닫는 듯 보이던 노래는 여성 보컬처럼 들릴 만큼 가녀린 신중현 씨의 흐느적 거리는 창법이 등장하면서 다시 환각의 세계로 빠져들게 만듭니다. 짙은 안개 속(안개가 아닌 꿈속이나 마약의 환각 속일 지도 모르지요)에서 스쳐간 아름다운 한 여인의 모습을 잊지 못하고 아쉬워하는 애달픈 가사에 너무나도 완벽하게 일치하는 훌륭한 창법입니다. 보컬 파트는 마치 넋두리를 하듯 나직히 읊조려댄 후 이내 끝나버리고 아무도 남지 않은 안개 속에 홀로 남겨진 한 남자의 방황이 현란한 키보드 연주로 표현됩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키보드 연주는 하모니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은 진정한 솔로로써의 키보드 연주입니다. 소음에도 가까운 뭉개져 부서지는 키보드 사운드는 싸이키델릭 연주의 표본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곡의 막판에 이르러서는 기타, 키보드, 드럼 연주가 번갈아가며 애들립을 하며 곡이 끝나기 직전까지 긴장감을 늦출 수 없게 만듭니다.

엽전들의 음반은 간결한 악기 편성으로 한국적인 여백의 미와 소박함을 표현한 싸이키델릭이었다면, 이 음반에 수록된 곡들은 화려한 싸이키델릭의 정점에 올라있는 곡들일 것입니다. 이 앨범을 듣고 있노라면 꼭 한국적인 것만이 가치있는 일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완벽한 완성도와 완벽한 연주를 들려준다면 그것도 최고인 것입니다.

Text by 2001년 11월 2일 영국에서 김응한

List

SIDE A

01. 그대 있는 곳에
02. 나만이 걸었네
03. 소 같은 사나이
04. 미련
05. 처음 보는 순간에

SIDE B

01. 그리운 그 님아
02. 안개 속의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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