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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구름과 비」

빨간부엉이 2021. 5. 1. 21:56

「바람과 구름과 비」

지은이 : 이병주
펴낸 곳 : 그림같은 세상
분량 : 약 3,200쪽
2020년 5월 15일 초판 1쇄 본 읽음

1992년 타계하신,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이신 나림 이병주 선생의 오래전 작품을 몇 달에 걸쳐서 '겨우' 다 읽었다. 
한자 표현이나 한시등이 너무 작품 속에 많이 나와서 읽는데 굉장히 힘들기도 하거니와 어쨌거나 집중력 없다는 것이 단기간에 작품을 다 읽지 못하고 지지부진 오래 걸쳐 읽게 만들었던 거 같다.

사실 이 작품은 진안 집에 아버지가 사놓은 세로로 된 책들 중에 있었는데, 내가 산속에서 나오기 전에 세로로 된 책들은 안 볼 거라고 다 태워버렸던 적이 있어서.. 수십 년 세월 동안 읽고 싶었으나 못 읽고 있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시도를 해보다가 종장을 덮을 수 있게 된 지 몇십 년이 돼버린 셈이다. 
웃긴 건 산속에서 내려와서 장수에서 살면서 세로로 된 태워버렸던 그 책을 중고 온라인 서점에서 다시 사들였다는 점이다. 가로로 된 판본이 기린원이나 들녘 출판사에서 나온 적이 있지만 절판이고 비싸서 저렴하게 세로로 된 책을 다시금 도전해보려고 샀었는데, 결국 읽은 건 어머니만 읽고 나는 도전도 못해봤다. 

그렇게 그동안 읽고 싶었으나 못 읽었던 작품이 다시금 출간이 되었다. 특히나 이번 판본에서는 한자의 주석을 대부분 달아두었고, 한시의 별도 해설이 다 주석으로 달려있어서 '그나마' 읽기 편한 판본으로 독서를 마친셈이다. 

구한말 대원군 집정 이전의 시기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되는데, 젊은 관상사 최천중은 썩어빠진 세상으로부터 백성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모종의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의 실현을 위해 망해가는 나라에서 새로운 나라를 꿈꾼다. 책은 그 살아가는 속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진짜 인물과 역사 속 실존 인물들이 뒤섞이면서 이야기는 지나가버린 과거 속 현장들을 세밀하게 현대에 전달하고 있다. '그때 그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지나가버린 역사 속 시대의 아픔들을 활자를 통해 우리는 고스란히 감내해야만 하는데, 이병주 소설이 많은 부분에서 그렇듯 역사 속 접하기 힘든 시대상이나 기록들을 신문 기사처럼 책의 말미에 가면 집중한다는 기분이 든다. 이런 기술 방식은 사실 「지리산」 같은 작품에서도 후반부로 가면서 소설이라기보다 기록의 전달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데 이 소설 「바람과 구름과 비」도 그런 형태를 띠고 있다. 

시바 료타로라는 일본 역사 소설 작가의 작품 「료마가 간다」, 「타올라라 검」 같은 작품들을 통해서 어느 정도 일본이 막부 시대에서 개화의 시기를 관통하며 메이지 시대를 맞이했던 그 드라마틱한 역사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됐다는 기분이 든다. 헌데 정작 우리의 구한말 역사에 대해서, 조선이 망해가는 그 시기에 대해서 우리는 거의 알지 못하고 피상적으로 국사 시간에 연표를 외우는 정도에서 우리 역사를 등한시하고 살아오지 않았나 싶다. 그 빚진 감정에 이 책은 한줄기 빛을 선사한다는 기분이다. 대원군 시절로부터 조선이 어떻게 최종적으로 곪아가고 썩어가는지, 나라를 개혁코자 했던 이들과 새로운 나라를 꿈꿨던 이들이 어떤 생각으로 살아갔고 스러져갔을지를 짐작케 해준다. 

책은 통한의 역사로 마무리된다. 동학농민운동이 발현되고 그들의 대부분 목숨이 이 땅에 뿌려져 결국 하나의 얼로 남아 전해지는 그 시점에서 이야기를 덮는다. 힘들게 책을 읽었고 그런 시대를 겪지 않았음이 다행이다라는 안도의 감정과 함께 내가 그 시대를 살았더라면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을까 하는 대입의 마음들. 슬프지만 지나간 시절이다. 그래도 가끔은.. 그리고 누군가는 그 시절들을 기억하고 회상해야 한다. 우리들에게 잊힌 전쟁의 그 시절들이 소상하게 서술된 이 책을 통해 간접 기억이나마 머릿속에 집어넣고 문득 생각날 때 되뇌며 초개와 같이 스러져갔던 조상들의 슬픔을 떠올려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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