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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정태춘 ‎- [아, 대한민국]

빨간부엉이 2021. 5. 30. 15:56

정태춘 ‎- [아, 대한민국] / 1996 / 한국음반

List

1. 아, 대한민국...
2. 떠나는 자들의 서울
3. 우리들의 죽음
4. 일어나라, 열사여
5. 황토강으로
6. 한여름 밤
7. 인사동
8. 버섯구름의 노래
9. 형제에게
10. 그대, 행복한가
11. 우리들 세상



노래 운동판에 뛰어든, 한국의 토속적 정서나 시적인 감성의 노래를 부르던 가수 정태춘은 1990년에 비합법 음반 <아, 대한민국...>을 테이프로 제작해서 많은 공연장이나 집회 장소에서 판매를 하게 된다. 한국 대중음악 씬에서 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 심의가 없이 음반을 낼 수 없던 상황에서 벌인 이 일은 한국 현대 대중음악 역사에 있어서 기억될 만한 변혁의 시초가 되어주었다. 그 이후 93년에는 내용상 심의에 문제가 될 소지가 없었기에 심의를 거쳐 합법적인 음반을 내도 됐음에도 그는 <92년 장마, 종로에서> 음반을 역시나 비합법 음반으로 발표한다. 많이들 아시겠지만 많은 인터뷰나 집회 등을 통해서 정태춘은 공윤의 사전심의에 문제 제기를 했고, 96년에 이르러서야 공연윤리위원회의 음반 사전심의는 위헌이라는 판결에 이르면서 가수들에게는 표현의 자유를 얻는 한 시대를 열게 했다. 

돌이켜보면 정태춘의 노래는 언제나 괴물과도 같은 비합리적인 단체인 공윤과 벌이는 심의의 싸움이었다. 그의 노래는 멜로디가 좋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서사의 이야기와 그 직설과 때론 은유의 화법이 주는 '내용'에 가장 큰 의미가 있었기에 심의를 거치면서 의도했던 표현을 거세당하는 그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쉬 짐작이 간다.  
정태춘 하면 가장 먼저 대중에게 떠오를 대표적인 곡인 '시인의 마을' 에서 78년도 전면 개작 판정을 받게 되고 음반사에서 임의로 "탈춤의 장단"을 "생명의 장단"으로, "고독의 친구", 방황의 친구"를 "자연의 친구", "생명의 친구" 등으로 가사를 고쳐 심의를 통과했다고 한다. 당시 공윤은 이 곡의 가사를 오리지널 시가 있는 노래로 판단하고 개작 여부를 확인한다고 하여, 원작 시를 찾아보기 위해 심의 보류를 했었다고 하고, 이후 원작시가 찾아지지 않자 이 곡은 대중가요 가사로 부적절하다고 전면 개작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서라벌 레코드에서는 정태춘이 가사 수정을 임의로 위임했던 레코드사 사장이 가사를 일부 수정해서 심의를 통과시켰다고 하는데, 문학에 대한 윤리위원회 심사위원들이 가지는 가치와 대중가요의 가사가 가지는 가치에 대해서 당시 식자들의 위선적 가치관을 보여주는 단면적 사례가 아닐 수 없겠다. 그런 연유로 인하여 원래 가사를 붙여서 불러보면 이질적이지 않은 '시인의 마을' 노래는 바뀐 가사에서 "번민"을 "사색"이라고 바꿔 불러야 했던 부분 등에서 노랫말이 어색하고 이질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이런 사례는 비단 정태춘 뿐만이 아니겠지만 세상의 부조리에 대한 직시를 노랫말로 치환해왔던 정태춘에게 있어서는 심의와의 싸움은 일상적인 일이 되었을 것이기에 창작자로서 그가 받았을 심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겠다. 정태춘의 사회참여라는 의식 변화의 시초로 읽힐 수 있는 88년의 음반 <무진 새 노래>의 마지막 수록곡인 '얘기 2'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곡인데 이 곡은 무척이나 서정적이면서 서사적이고 영웅 신화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노래는 많은 가삿말로 이루어진 데다가 4절까지 있어서 서사시로 불러줄 만도 한데, 공윤에 심의 제출 당시의 3절 이후의 가사는 아래와 같다고 한다. (원 곡을 찾아들어보시면서 가사 비교를 해보시길) 
"서울로 서울로 모이는 군중들/ 부도덕 판치는 어지런 가치관 / 무기력 무관심에 잊혀진 정의감 / 일신의 영달에 눈 어둔 선민들 / 박제된 전통과 새로운 사대와 / 한 많은 내 겨레 반만년 속앓이를" 
4절에서는 "불의와 싸우는 용감한 시민을 / 험난한 역경 속 이어온 문화와 / 꿈 크고 묵묵한 노력의 학도들 / 양심을 지키는 가난한 이웃과 / 공평한 권리와 의무의 사회를 / 온화한 백성과 덕 있는 지도자 / 도덕의 나라와 민족의 재통일을" 
올림픽이 열리던해에 이런 노랫말이 심의를 통과할리가 절대 없음은 누구라도 알 것 같다. 이후 무수한 개작을 거쳐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얘기 2'의 순화된 가사가 세상에 공개된 것이다. 재밌는 것은 그럼에도 포기하지 못했던 부분인지 3절에서 "영웅이 부르는 압제의 노래와"라는 가사는 심의 통과가 안될 것을 염려한 자기 검열을 통해 "영웅이 부르는 노래와"가 되었고 '얘기 2' 노래에서 "압제와" 이 부분은 노랫말 없이 노래가 되는 어색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심의란 건 순기능도  있겠지만 분명 이런 역기능이 많지 않았을까 싶다. 심의의 가장 큰 문제는 언제나 생각하는 것이지만 창작자로 하여금 자기 검열을 하게 만든다는 것이 아닐까 싶은데 그런 자기 검열의 회의적 심리 상태가 좋은 창작물을 망치게 하는 무수한 사례들을 보면서 우리의 지난한 현대사의 질곡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게 만든다. 

흔히 불법음반이라고 불리워지는 90년도의 비합법 음반 <아, 대한민국...>은 비로소 96년에 이르러 테이프 재킷 사진을 앨범 전면에 조그맣게 인쇄한 형태의 CD로 빛을 보게 된다. 가수 박은옥을 만나면서 정태춘의 음반에는 늘 박은옥의 목소리가 함께 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유일하게 이 음반에서는 박은옥의 목소리는 실리지 않았다. 문제가 될 경우 아내를 지키기 위한 배려였을지 아니면 그 어떤 그의 음반보다 강한 이야기들로 포진한 이 음반에 그녀의 서정성이 어울리지 않았다고 생각했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아, 대한민국...>의 노랫말들은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사실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불편함을 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물며 그 시절에야 오죽했겠는가.

<아, 대한민국...> 음반의 노랫말들은 노래를 찾아 들으면서 확인해 보시길 바라며 곡들마다의 짤막한 해설을 옮겨본다. 해설 원문은 90년도에 나온 평론가 이영미의 한울출판사판 「정태춘」에서 발췌했다. 

'아! 대한민국' - 불법음반 <아, 대한민국...>의 타이틀곡이다. 지배집단이 선전하여 대중들에게 일종의 허위의식으로 자리잡고 있는 현실관과 우리 사회의 실상을 극명하게, 대조시키는 방법으로 우리 사회의 기존 질서와 허위의식들이 결국 소수 지배집단을 위한 것임을 총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역설적 대조의 효과적 사용은 이러한 작품들이 흔히 가지기 쉬운 설명적 지루함을 극복하게 해 준다. 90년 중후반기 집회장에서 가장 많이 부른 작품이기도 하다.


'우리들 세상' - 철거민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거친 말투와 구체적 묘사, 앞으로 건설할 새세상이라는 미래지향성 등으로 이 시기 그의 변화를 가장 뚜렷하게 드러내는 작품 중의 하나이다. 거칠지만 해학적 분위기로 때려 부수듯 외치는 부분과 가진 자들에 대한 야유 섞인 묘사, 못 살고 쫓겨나는 빈민-철거민에 대한 슬픔 어린 묘사가 가사뿐 아니라 악곡 속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호탕한 풍물 반주가 인상적이다.


'황토 강으로' - 1989년 7월 거창 농민회에서 주최하는 집회에 갔다 오면서 지은 노래이다. 바위와 가시덤불, 뚝방까지도 무너뜨리고 쓸어버리며 힘차게 흘러가는 누런 강물에 대한 묘사는, 아무도 가로막을 수 없는 민중의 힘찬 진군, 역사의 필연적 흐름에 대한 상징적 이면서도 낙관적인 형상화이다. 간주와 후주 부분은 우르릉 쾅쾅거리는 강물의 흐름을 연상시키는 경북 금릉 농악의 한 부분을 썼다.

'형제에게' - 양심수 석방을 위한 행사를 위해 만들었다. 이 시기의 작품 중 대중적으로 함께 불릴 가능성이 있는 드문 작품으로, 이전 시기 그의 서정적인 작품들과 진보적 음악문화의 흐름이 결합된 듯한 작품이다.


'일어나라 열사여' - 고 이철규 열사의 충격적인 의문사 사건을 보며 추모식 때 부르기 위해 만든 작품이다. 선지자적 어투와 질감이 흥미롭다. 


'우리들의 죽음' -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준 두 아이의 사고사를 소재로 하고 있다. 신문기사의 낭송과 사실적 묘사로 사건 자체가 가지고 있는 충격성과 비극성을 잘 살리고 있다. 이 작품에 대해 공윤은 '어떤 가정의 부주의가 우선된 불행한 사례를 굳이 이념적 사회문제로 결부한 것은 대중가요로서 부적당하다'는 이유로 전면 개작 지시를 내렸다.


'그대, 행복한가' - '아, 대한민국'처럼 역설적 대조의 방법을 주로 쓴 작품이다. 그러나 '아, 대한민국'이 지배집단이 조장하는 허위의식에 그 공격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이 작품은 소시민들의 보수성과 안일함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인사동' - 전통의 박제화에 대한 그의 혐오가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쇠죽통에 개밥그릇처럼 하찮은 것으로 취급받던 옛 것들이 인사동에만 가면 쇠죽통에서 꽃 꽂는 장식품이 되어 '때 빼고 광 내어' 돈 딱지가 붙는 우스운 세상을 풍자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공윤 심의에서는 물론 통과가 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특정 지역을 왜곡, 비하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비합법이니, 불법이니 하는 불온한 정서의 단어들로 점철된 그의 지난 30년의 시간은 분명 녹록치 않았을 것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그 비합법의 결과물을 합법의 방송에서 내보내 준 용기 있는 방송인들도 존재했기에 오늘날의 그가 음악인으로 현재화된 시점에서 우리 곁에 남아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심야 음악프로그램인 <꿈과 음악사이에서>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그를 초대할 때 조건으로 내건 '어떤 말이나 어떤 노래든'이라는 조건을 수락했던 PD의 용기라던가 -그때 83년도 만들었던 '인사동'을 시원하게 불러젖혔다고 한다- 93년도에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에서의 정태춘, 박은옥 특집에서 <92년 장마, 종로에서>의 노래 두 곡을 방영시켜 담당 PD 가 징계처분을 받았다던가 하는 일화들은 꽤나 많을 것 같다. 

지난해 정태춘은 40주년을 맞아 책을 펴내고, 기념 음반을 발매했고, <불후의 명곡>과 <열린 음악회>에 나와서 그의 음악이 그의 사상이 여전히 건재함을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세상은 지금 어떨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김동원 감독의 독립다큐인 <상계동 올림픽>이 다루었던 88년 올림픽을 위한 미화를 위해 강제로 철거민이 되어야 했던 낙후된 도시민의 삶은 어디서 어떻게 얼마만큼 좋아졌는가 하는 질문들, 2009년 용산 참사를 통해 보여주었던 기득권과 권력층이, 없이 사는 서민들에게 던진 우리 시대 일반 대중의 현 위치를 묻게 했던 서글픔들, 세월호 사태를 통해 일어났던 촛불의 현주소는 어디인가?라는 대답 없는 질문들은 여전히 귓전에 맴돈다. 부의 극단적 양극화와 비정규직이라는 암울한 근무형태의 기형적 변이, 최저시급이 상승했다고는 해도 물가 상승에 전혀 따라가지 못하여 여전히 도시빈민으로 사는 대다수 서민들, 사회 전반에 깔린 근로 기준법 따위는 무시 당한채 살아가야만 하는 소규모 업장들의 노동자들 문제...
정태춘이 <아, 대한민국...> 에서 노래하던 '저들의 민주주의'는 아직도 우리에겐 '그들만의 민주주의'는 아닌 것인가 씁쓸한 물음표를 남기게 한다.

91년 전북대 집회에서 구매했던 정태춘의 '아, 대한민국...' 테이프는 내가 1년간 매일 들었던 음반이다. 테이프는 어디론가 사라졌고 정식으로 나온 CD는 내 손을 떠났었다. 그리고 오늘 그 CD가 다시금 내게 돌아왔다. 웃긴 건 2011년에 소위 말하는 구하기 힘든 명반들 두 장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서 팔았던 "All That Masterpiece" 시리지의 첫 포문을 열었던 것이 정태춘의 <아, 대한민국... + 무진 새 노래> CD였고 구하기 힘든 음반들을 염가에 살 수 있어서 꽤 인기가 있었던 걸로 아는데, 나중에 이 시리즈의 음반들이 말 그대로 불법복제 CD로 알려져서 사람들을 충격에 빠트렸었다. 불법음반을 다시금 불법으로 복제해서 몰래 팔아 치우는 세상. 그것이 대한민국의 현주소는 아닌가 하는 웃기면서 슬픈 상황. 


덧붙임 1 : 구하기 힘든 CD를 선물로 보내주신  Rozenbach님께 감사함을 전합니다.

덧붙임 2 : 본문의 가사 원문에 대한 내용들과 해설에 대한 부분, 그 시대의 이야기에 대한 부분들은 한울 출판사에서 나온 이영미의 저서 「정태춘 노래 시 전집 - 누렁 송아지」 (89)와 「정태춘」(91) , 「정태춘 2」 (94)에서 참조했습니다. 



덧붙임 3 : 그 외 음악들에 대한 이야기는 아래 음반들을 감상하면서 느낀 점을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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