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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섬」
지은이 : 신도 준조
옮긴이 : 이규원
펴낸곳 : 양철북
분량 : 597쪽
2020년 7월 29일 1판 1쇄본 읽음
이 책의 부제는 <영웅들의 섬> 이다. 책은 과거의 영웅에 대한 신화적인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결국 이야기의 핵심은 시대를 관통하며 살아온 ‘지금’의 주인공들이겠기에 영웅’들’의 섬이라는 부제가 붙지 않았을까 싶다.
오키나와라는 땅에 대해 아는건 사실 미군기지가 있고, 미군들에 의한 원주민 성폭행문제와 각종 어두운 사회문제, 기지로 인한 환경오염이 핵심인 땅, 또는 정말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가진 땅... 정도로만 인식되어있었다. 그나마도 성인이 되어서야 알게 된 단편적인 정보들일테고.
딱 생각나는 건 「반항하지마」 라는 「상남2인조」의 주인공이 선생이 되서 펼쳐지는 버라이어티한 만화 속에서 오키나와로 수학여행 가는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아마 어디선가 오키나와에 대해 접한 것이거나 뇌리에 남아있는 건 그게 최초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나서는 응한님이 보내줬던 책 「슈리성으로 가는 언덕길」을 2018년도에 읽었던 것 정도가 오키나와에 대한 지식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한때는 류큐왕국이었던 독립국가인 오키나와는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다가 메이지 유신 후 얼마 안있어 결국 일본의 한 현으로 편입되고 말면서 역사를 마감한다. 오키나와 사람들이 부르는 일본 사람들은 야마토 사람들이고, 미국의 극동 정세와 맞물려 오키나와 사람들은 태평양전쟁 시절에 말 그대로 융단폭격을 맞고 섬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죽어 나가는 참극 속에 놓였다 알고 있는데, 그 뒤로 미군 기지가 들어서면서 1972년까지 미국의 신탁통치를 받게 되고 오키나와인들은 미국으로 인해 발생되는 문제들보다 야마토인들로 인해 받는 정신적 피해가 더 큰 시절을 보낸것으로 보인다.
소설 속에서도 묘사 되지만 태평양 전쟁이 끝나고 60년대에도 오키나와에서 학생들에게 일본말을 가르칠 것인지, 영어를 가르칠 것인지 갈팡질팡하는 내용도 등장한다. 최소한 일본에 흡수된 나라의 사람들이지만 적어도 20세기 중반까지는 오키나와 사람들은 스스로를 일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책 「보물섬」은 분량이 꽤 되지만 한 번 잡으면 손을 놓을 수 없는 굉장한 흡인력을 가진 작품이다. 전쟁이 끝나고 황폐화 된 오키나와 땅에서 미군의 기지를 털어내어 그 물자를 나눠가며 살아가는 인물들이 굉장히 많았던 모양인데 그 중에서도 모든 섬 사람들의 영웅으로 칭송받는 인물이 있다. 이 인물은 책의 초반에 잠깐 등장하지만 미군 기지를 털기 위한 집단 행동의 어느 밤에 행적이 묘연하게 사라지고 만다. 그 뒤에 남은 영웅의 뒤를 따르던 그 친구와 친동생, 그리고 영웅의 연인. 이 세 명이 이 장대하고 활어처럼 펄떡펄떡 뛰는 문장들로 묘사된 작품의 주인공이며 진정한 소설 속 영웅들인 셈이다.
「보물섬」은 번역이 정말 잘 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원작의 문장이 어떤지 알 길이 없으나 번역가의 번역 속에서 책의 문장과 표현들은 마치 밤 하늘 별빛처럼, 반짝이는 보석처럼 빛난다고 생각된다. 마치 세상에 없던 신인류를 탄생시키기 위한 탄생설화의 위대함처럼 문장들은 비약적으로 아름답다. 이런 빛의 글들은 영웅으로 섬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온짱’이 사라지면서부터 평이한 소설 속 문체로 돌아선다는 느낌을 받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책을 덮는 그 순간까지 글이 가진 어떻게 정의할 수 없는 생동감은 굉장한 감동을 내게 주었던 것 같다.
온짱이 사라지고 남은 세 사람은 영웅의 뒤를 이어 영웅이 되고 싶어하거나, 영웅을 찾다 포기하고 오키나와라는 세상 속 사람들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활동가로 변신하거나, 변해가는 시절속에 휩쓸리면서 처세하는 삶을 살거나하며 시절을 엮어나간다. 그 이야기의 재미속에 수많은 오키나와 속 미군들에 의한 병폐들, 야마토인들에 의한 차별과 실망감의 이야기들이 겹쳐진다. 소설 속 미군기의 초등학교 추락사건이나 독가스 사건등은 모두 실제 벌어졌던 사건들로 알고 있다. 그러니까 태평양 전쟁 후 오키나와가 일본 본토로 반환되는 시기까지의 20여년 세월 속에 벌어졌던 슬픈 역사를 가진 그 땅의 사람들에게 벌어진 실제의 이야기에 작가는 가상의 인물들을 배치하여 이야기와 역사를 병치하며 힘있는 서사를 끌어가고 있는 셈이다.
가본적도 없고, 살면서 갈일이 있을 것 같지도 않지만 오키나와 사람들은 사진만 봐도 전혀 일본 사람들의 모습은 아니다. 어쩌면 그 다름에서 내지의 차별은 여전히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사라진 영웅 ‘온짱’이 없는 20여 년이 흘러 그는 나타나는 걸까? 이 미스테리하면서 폭발할 것 같은 끈적임의 문체 안에서 그 최종 결말을 확인해 보시길 바란다.
이 책 진심 재밌다. 그리고 꼭 읽어볼만하지 않나 싶다.
덧 : 도서관 신간 코너에 꽂혀있는데, 얼핏 오키나와와 관련된 내용인 듯 해서 대출했는데 이미 나온지 2년이나 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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