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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마음에 없는 소리」, 「선릉 산책」

빨간부엉이 2022. 4. 30. 18:06

「마음에 없는 소리」

지은이 : 김지연
펴낸곳 : 문학동네
분량 : 316쪽
2022년  3월  23일  1판 2쇄본 읽음

단편 소설은 원래 취향이 아니다. 하나의 서사가 너무 짧고 함축적이서, 무엇이든 장황하게 풀어내고 모든것을 서술해주는 장편의 완결성을 좋아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나에 익숙해질까 싶은 즈음에 끝을 내버리고 다시 새로운 세상에 발을 디뎌야 한다는 것이 갖는 어려움이란게 분명 있기 마련이니까.
예전엔 분명 단편 소설은 책 제목에 무슨 무슨 소설집이라고 되어있고, 장편 소설은 소설이라고 명시되어 있었는데 이제 그 나눔의 경계가 없어졌나보다.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들어갔다가 혹시 읽을지 몰라서 한 권 골라든 소설이 와서 읽다보니 단편 소설집이었어서 실망하며 읽을까 말까 고민을 했는데, 왠걸 읽다보니 쑥쑥 잘만 읽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 소설집 「마음에 없는 소리」 는 레즈비언, 또는 퀴어에 대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물론 그것은 소설 속 표피일뿐이지만 표피도 무언가를 형성하는 주체의 하나이므로 꼭 내피에 대해서만 알아야 하는건 아니기에 중요함일 수도 있다. 
책이 술술 잘 읽힌것은 일단 재밌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재미란게 마블이나 디씨 영화같은 재미는 역시나 아닌데, 플롯을 따라가고 상상하게 되고 끊임없이 나열되는 작중 화자의 생각들에 빠져들게 되다보면 일견 재미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는 단편들에 몰입하게 된다. 재미란 모름지기 그런 것이다. 대놓고 재밌어봐라 하고 하는건 원래 금방 잊혀지지만 그냥 서술하는 이야기 안에서 독자가 발견해 내는 재미란건 그것이 사회적 통념의 재미가 아닐지라도 오래 가기 마련이다. 
황정은 작가의 작품을 보는 듯한 문체의 글도 보이긴 하지만 어떤 상황 속에서 짧은 서사를 끌어가는 변칙과 행간을 나누는 묘의 의미가 있는 작품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의 말미에 서평을 한 다른 작가분의 글을 보면 내가 느낀 감정들을 소설 속에서 작가가 마련해둔 ‘농담’으로 정의하는 듯하다. 뻔할 것 같은 인물의 사념에 대한 묘사들이 대부분 일 것 같은 글들 안에서 그것이 농담이든 변칙이든... 생명의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그리고 심각할 것 같은 내용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재미가 있다. 
아무 정보도 없이 그냥 붙잡은 책이 주는 만족도가 굉장히 커서 즐거운 독서로 기억될 거 같고,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어봐야지 싶어진다.

 


「선릉 산책」

지은이 : 정용준
펴낸곳 : 문학동네
분량 : 269쪽
2021년 11월 15일 1판 2쇄본 읽음

「마음에 없는 소리」만 대출해서 나오려다 뭔가 아쉬워서 한 권 더 골랐다. 표지가 예뻐서. 책 뒷편의 소개글이 뭔가 마음을 끌어서. 
이 책도 소설이라고 표기되어있지만 역시나 단편집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묘하게도 술술 읽혔다. 마음의 상처로 세상을 회색빛으로 물들일 것 같은 인물들이 등장함에도 서사는 뭔가 종결을 맺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다. ‘산책’ 이라는 키워드로 단편들이 묶여있지만 다 읽을 때까지 그렇게 묶인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독해 능력이 형편없음을 증명함이리라. ㅎㅎ
가상이지만, 마지막 종묘의 정전이 불타버린 상황에서 해설사와 경비가 처한 상황의 산책? 같은 시간을 읽다보니 문득 ‘아! 이 책들 내용이 모두 걷는 것에 바탕을 두고 있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다. 「마음에 없는 소리」도 그렇고 「선릉 산책」도 그렇고 순수문학의 단편들이란게 원래 자기성찰이라던지 현실에 없을 것 같은 심리의 묘사에 치중하는 편이라 읽기가 불편한 (마음이 편치않은?) 구석이 있는 편인데 위의 두 작품 모두 그러함에 가까운 인물들과 상황들과 묘사들이 가득함에도 그 불편함을 성실하게 해소해 나가는 새로움이 있다는 기분을 받았다. 시대가 변하고 작가도 변하고 독자도 변하고 생각도 변하는 것이기에, 그 변화의 시간에 잘 적응한 작가들의 작품을 본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고 나도 조금은 변했구나 싶어서 다행이다라는 기분을 갖게 되었다. 
단편은 원래 열린 결말인 경우가 많다. 그게 미덕이고 단점이다. 「선릉 산책」의 작품들도 독자에게 해답 없는 해답을 미뤄 버리는 뻔뻔함이 분명 있기도 하고, “이번에는 내가 답을 주지” 하는 작가의 선심도 있지 않은가 싶다. 
중요한건 언제나 책을 잡은 독자의 마음을 마지막 페이지까지 사로잡는 힘이 있어야 하는 것인데, 그러함을 잘 획득한 거 같고, 똑똑해진 작가들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누릴 수 있음이 좋지 않은가. 그래서 이 작품도 그렇고 「마음에 없는 소리」도 그렇고 짧게 짧게 한편씩 단편으로라도 책을 읽고 싶은 독자분들이 선택해서 읽기 좋은 작품으로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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