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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농경사회」

빨간부엉이 2026. 6. 4. 14:42

우리들의 농경사회

지은이 : 이소정
펴낸곳 : 민음사
분량 : 361
2026 427 11쇄본 읽음

 

이 소설은 파격적일 정도로 형식을 무너뜨리지는 않지만, 꽤나 낯선 형태를 띈다.

문학조차도 의미보다 구조적인 변화에 더 치중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얼핏 들었다.

기능적인 면, 형식적인 면에서 보자면 그렇다는 얘기지만 소설이 가지는 힘은 상당한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책 뒤에 써있는 많은 문인들의 추천사가 결코 과장되지 않았다는 느낌이다.

소설은 여성으로 추정되는 1, 남성으로 추정되는 2명의 인물이 (소설 속에서 성별이 명시는 안돼고 있지만 느낌상 유추해 보기에 그렇다는 얘기다) 새벽에 언제 퍼져도 이상하지 않을 중고 다마스에 뒷통수를 가격하여 기절시키고 결박한 한 남성을 싣고 산 속 농장을 찾아 헤매는 풍경으로 시작을 한다.

소설은 인물들의 서사와 살아온 시간들을 구체적으로 서술하지는 않는다. 파편화된 기억의 단상들을 조합하여 독자들이 스스로 뇌리에서 퍼즐 맞추듯 구상하여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서 읽어야 한다. 아마도 화자인 주인공을 포함한 등장 인물들은 어려서 버림받거나 고아가 되어 기도원, 또는 보육원으로 흘러든 것으로 보인다. 거기서 어머니라 불리는 원장에 의해 감금과 폭력에 노출되고 남자아이들은 나이든 남자들에게 몸을 팔게 되기도하고. 어느 정도 나이를 먹어서는 사이비 종교화된 시설에서 포교를 위해 활동하게 된다. 그러다 단짝으로 지내던 네 명중 한 명은 차도로 뛰어들어 생을 마감하게 되는 것으로 묘사된다.

기도원이든 사이비 종교 시설이든, 나이를 먹어서 벗어나게 된건지 고발에 의한 압수수색으로 어머니로부터 자유로워진건지는 애매하지만 기도원 소유의 산 속 농장을 찾아 들어간 이들이 험로를 뚫고 마주한 건 한 겨울의 허름한 황톳방 하나와 추위와 배고픔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가족으로부터 버림받고 산으로 들어와 움막을 짓고 농사지으며 살아가는 한 노인을 만난다.

노인과 생활하며 아이들 (또는 갓 성인이 된 등장인물들)은 농사를 짓는 과정에서 노동의 고통과 수확의 기쁨을 알아가지만 시절은 그들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산 속에 로켓 물류센터 (쿠팡 물류인듯) 가 들어서서 농사 대신 기계 부속 같은 로켓 일도 해보게 되고, 구제역 파동 때 토지 사용허가에 섣불리 싸인을 해줬다가 도살 처분된 돼지들에 의한 침출수로 인해 악취와 썩어버린 땅을 마주하며 농사는 종말을 고한다.

서두에 납치했던 남자는 스스로 탈출하여 나중에 이들을 찾아오는데, 신고를 하진 않고 이들에게서 뭔가를 뜯어내려고 하는듯 보이지만 그 또한 명확치는 않다. 나중에 이 남자는 어머니가 버렸던 친자식으로 알려지고 치매가 걸려 요양원에 들어가서야 이 남자는 어머니를 차지하게 된다. ‘어머니에 대한 복수를 꿈꿨던 아이들은 자신들을 알아보지도 못하는 어머니에 대해 복수를 할 수 없다. 대상이 사라져버린 까닭이다.

그러니까 이 소설에서 주요 등장 인물은 아이들 셋과 노인, 납치됐던 남자 정도가 되겠다. 이들의 공통점은 사랑과 관심을 필요로 하는 가엾은 영혼의 소유자들이란 것이 아닐까 싶다.
아이들은 어머니로부터 가스라이팅과 감금과 폭력의 시간을 보내며 살아왔음에도 결국 어머니로부터의 사랑을 갈구한 존재들이었던 것 같다. 노인은 산 속으로 들어온 아이들이 27년간의 산 생활에 던져진 신의 선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는 대목에서 얼마나 사람으로부터의 사랑, 가족에게 버림 받은 가장으로서의 아픔 같은 것을 안고 살아왔을지, 그 외로움이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남자는 또 어떤가. ‘어머니로부터 버림 받고 부정당해왔지만 어머니곁을 맴돌며 성인이 되고, 버려진 기도원 터에서 아이들에게 납치되고 종내는 치매가 걸려 요양원 신세를 지게 된 어머니가 이제야 자기 것이 되었다고 말한다.

모두가 가엾다는 생각이 든다. 구제역으로 인해 강제로 생을 마감해야하는 돼지며 소며, 그 매몰지의 침출수로 인해서 오염되는 땅과, 그 땅에서 생에 처음으로 뭔가를 하고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가던 이들이 좌절하는 모습. 컨베이어 벨트 같은 로켓으로 대변되는 세상에서 탈선할 수 밖에 없는 마음들. 버려진 아이가 사람같지 않은 엄마일지언정 그 사랑을 갈구하며 왜곡된 마음으로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세상. 그 무엇도 정상같지 않은 시간과 시절 위에서 그들의 농경 사회가 어쩌면 유토피아가 아니라 한판 질펀한 꿈이었기를 바라는 내 마음 또한 가엾다는 생각이 든다. 복잡다난한 시간 위에서 가엾지 않은 영혼이 어디 있겠는가. 그들 모두에게 구원과 위로의 따뜻한 한 줌 햇살이 머리 위에 비추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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