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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데이 (Holiday, 2005)

양윤호 감독은 더 이상 보여줄것이 없는 듯 보인다.
갑작스레 이렇게 도발적인 서두를 꺼내든 것은 그동안 쌓여온 기대치에 대한 불만이 더이상 참을 수 없음으로 인하여 터져버린 탓일지도 모르겠다.
단편 <가변차선>으로 유수의 영화제를 휩쓸고.. 러시아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박신양을 주연으로 하여, 기대를 한몸에 안은채 만든 첫번째 장편 영화 <유리>는 난도질 당하여 망가져버렸었다.
어쩌면 박상륭씨의 원작 [죽음에 관한 한 연구]를 영화화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톨킨의 [반지전쟁]이 영화화하기 불가능했다고 했지만 현대의 컴퓨터 그래픽은 그 불가능함을 가시화시켰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21세기의 일이며 기술적인 진보의 최전선에 있는 곳에서의 일이다. 불가해한 영역에 놓여있는 [죽음에 관한 한 연구]를 영화화했던 시기는 90년대 중반... 장소는 대한민국.
지금 현재에 영화화한다고해도 온전한 모습으로 세상에 공개되기 힘든 작품이 검열이 공공연하게 살아있던 90년대에 제모습, 제 살덩어리로 관객과 조우할 수는 없었던 것일터.
그렇게 최초의 작품 <유리>는 주목받던 작가의 저주받은 작품으로 치부해버리면 그만이었을것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감독 양윤호가 채워나간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라.
<미스터 콘돔>, <짱>, <화이트 발렌타인>, <리베라매>, <바람의 파이터>...
감독으로서 자신이 활동했던 시대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남겨둘 대표적인 작품 하나는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시켜야 할 터인데.. 양윤호 감독에게있어서 그것은 더 이상 불가능해 보인다.
그의 영화에는 시대정신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과거 현재 미래 그 어느 시공간에 대한 은유도 없다. 현재 그의 영화에 남은 것은 성공해야한다는.. 또는 살아남아야한다는 조바심뿐인듯 싶다.
가장 최근작인 <홀리데이>에서도 그의 영화에 대한 근시안적인 시각은 여실히 드러나고있다.
21세기의 대중은 스테레오타입으로 구분되는 그 어떤것에 쉽사리 감정적 동요를 일으키는 존재가 아니다.
양윤호 감독은 그점에서 동시대를 바라보는 작가로서의 시선을 놓쳐버린 것이거나.. 아니면 애초에 그런 시선을 가지고 있지 못했거나.. 둘 중의 하나로 보여진다.
군부독재의 후유증과 있는 이들의 잔치인 88올림픽을 관통하며 철저하게 짓밟힌 서민들의 이야기가 사실은 메인테마가 되었어야 함에도 그것은 곁가지가 되어버리고, 영화 <홀리데이>는 철저하게 국가권력과 기득권층을 악으로 대변시키고, 이유야 어쨌든 범죄인들을 선한 존재로 묘사하는 단순한 이분법적 구도안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한다.
절대악인이 아닌이상 핑계없는 범죄는 없다..
악법도 법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악법을 준수하고 사는 이들은 도대체 무엇인가..
동화되어 그들을 위해 눈물이라도 흘려주어야 함인가..
<홀리데이>는 그 이중의 구조안에서 어느쪽의 손을 들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여진다.
다만 그것이 '스톡홀름 신드롬'의 영향안에서 일방적 방향으로 몰아간다는 것이 문제다.
최소한 <홀리데이>가 번창하는 대한민국의 사회구조안에서 짓밣힌 그 무언가에 대해서 얘기하고자 했다면 허구의 인물과 극단적인 인물대비로 어느한쪽의 감정선이 옳은 것인양 보여주기보다는 좀 더 냉정하게 사실적이고 다큐적인 입장에서 그 시대와 사람들을 조명해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홀리데이>의 지강헌 사건은 <살인의 추억>처럼 실체도 없고 두루뭉실한 한 시대의 추억이 아닌것이기에 좀 더 감춰진 그 무언가를 찾아내주었어야했다고 생각한다.
'만약에 이랬던 것은 아닐까' 식의 추론으로 대중을 교육시키고자함은 지양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보게된다.
<일급살인>에서 게리 올드만의 연기를 끌어오고 싶었던 것일까.. 최민수의 오버연기는 지나치다 못해 너무 연기를 위한 연기..
주제넘은 얘기긴 하지만 양윤호 감독은 영화와 시대정신이라는 것에 대해 좀 더 성장해야 할 듯 싶다.
다음영화에서는 단편에서 주목받던 기대주의 가치에 걸맞는 그런 영화를 보여줬음 좋겠다.

Text by Minerva's Ow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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