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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홈피 잡문들을 모아서 2부


5.고독, 행복함의 다른 이름

Writeday :1997. 6.26.

여름이 거기에 서있다. 바람처럼 사람들은 거리로 내 몰리고
휘영청 달밝은 밤은 거기에 없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그대가
있는 공간은 눅눅한 습기의 실팍한 곰팡내음으로 시나브로 발효되어가는데
그대는 전혀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 발효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무언가로
되어 갈 수 있을 거라 한다. 아무도 그의 쉰듯한 부패의 사고를 믿지 않았고
어쩌면 그대 자신도 믿지 않았을지도. 하루처럼 그는 고독하다 노래를 했고
너무 많이 부른 노래로 인해 목이 쉬고 결국은 태형처럼 말을 잃었다.
사람들은 늘상 분주했다. 말을 잃은 그대가 유일한 위안인 고독의 노래를 부르지
못함으로 인해 앙상한 뼈마디를 드러내 갈때도 사람들은 분주했다.
여름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을, 말을 잃고 뒤안길의
휘황함만을 미소짓는 그대에게 여름은 안기웠다.
골목길 날벌레의 어지러움 그 가로등의 세상 마지막 어둠 속 빛 한가운데서
그대는 말을 찾았다고 했다. 그가 세상과의 단절에 성공한 그 여름의 한 밤에
그는 이렇게 사람들이 기억하는 마지막 말을 했다고 했다.
나 아직도 여름 안에 있는가?


6. 행복에 대한 사흘간의 세가지 짧은 생각에 관하여.
Writeday :1997. 9. 3~5

밤이 깊어간다는 건 달이 점점 더 밝아 진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루가 무의미하다고 느끼는 것은 그만큼의 기대치가 더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무언가를 좋아하게 된다는 것은 그만큼 주변에 소홀해지는 것이겠지. 어제가 오늘같다고 생각한다면 내일이 무지개와 같을 거라는 기대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에게서 멀어지면 사람이 그립다라고 말하는 것은 사람안에 있고픈 치열한 욕망 때문일 것이며, 소유에 대한 강한 욕구는 자기 불만으로부터의 귀착일 것이다. 희망이 별을 타고 창밖에 서서 우리가 새 옷 단장하고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건 아닌지. 허나 옷장안에는 새로움은 없고 관습과 타인의 시선에 얽메인 칙칙한 과거가 있을 뿐이다. 희망은 무한정 우릴 기다려 주지는 못하겠지. 안절부절하고 있어? 그렇다면 시간과 악수를 해봐. 시간은 말이지 단지 죽음으로 이르는 긴 길을 걷는동안 망각이라는 샘물을 마시게 해주는 우물가의 악마일 뿐이야. 그래 파우스트가 되보는 것도 유쾌할 거야. 메피스토펠레스는 우리에게 이 밤에 희망과의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새 옷 한 벌을 우리에게 줄 수 있을테니까. 희망과 악마, 절망과 천사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거야. 결코 한쪽을 응시하며 다른 한쪽에 시선을 둘 수는 없는거라구. 알겠어? 두가지의 마음에 패를 건다면 그대의 세기말은 옷장안의 칙칙한 과거로 사라지는 유물이 되는 거라구. 모든 걸 가지려는 어리석음을 범하지는 말아줘. 희망이 다른 사람에게 가면 어때. 평온하다는 것 그걸로도 충분하게 행복할 수 있는 거라구. 시간과의 악수도 메피스토와의 계약도 지금의 우리에겐 불필요할거야. 왜냐하면 이 밤은 평온하고 우린 행복하니까
구칠년 구월 삼일

너무나 좋은 영화를 보고 문득 TV를 보니 이철수라는 판화화가 (이 말 맞아?) 의 판화그림들을 본다. 고행에 가까운 판각과 이미지 창출이 주는 그 땀흘림이 너무 좋다. 더욱 좋은 것은 작품이 주는 숨겨진 생각들이 닿아오는 느낌들이 좋구. 아주 낯선 이름은 아닌 듯도해. 얼마전 시내 충장서림에서 이 아저씨 판화집을 본 기억이 나더라구. 그 때 이름은 몰랐고 단지 좀 거친듯한 이미지와 암시의 진실성이 좋다고 느꼈었는데 이제는 이름도 알게 됐다. 어디에나 널려 있는 것들을 잡아낼 수 있는 작은 노력과 순간의 행운을 잡을 수 있는 안목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겠지. 그래 그건 누구에게나 중요한거야 그렇지? 훗날 일상에 지쳐서 회상이 필요하거나 돌아볼 여력을 위해서 한걸음 이라도 더 나아가 지금을 보내고 싶어. 어쩌면 그러고 있다고도 생각해. 상당히 많은 양의 영화를 최근에 보아왔지만 오늘 두 번째 본 영화가 주는 작은 감동들이 나에겐 어려운 무게로 다가옴이 즐겁다. 이런 기분 이해 할 수 있겠니? 영화가 주는 행복한 결말을 위한 갈등과 미래 시간에 대한 묵시록적 암시가 보여지는 그 행복을.
구칠년 구월 사일

상념의 무지개

빨래줄에 널린 빨래를 걷다가 바라본 하늘에
주홍빛 노을이 물들어 가고 있다
노을을 바라보며 생각하는 빛바래가는 추억들
초겨울에 고구마를 구워 먹으며 함께 즐거워하던 친구들은
파란빛 도시를 꿈꾸고 잿빛 도시들로 떠나갔다
남기워진 나는 개울에 멱감으며 빨래하며 고구마를 구워놓고
보이지 않는 꿈을 쫓는 그들이 내 곁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91. 10. 1 구일년 가을에 친구를 생각하며

주제가 정해지면 이상하게도 막연해져. 엉킨 실타래처럼 끝과 끝이 어딘지 분간키 어렵게 되고 말이지. 행복이 뭐냐 물으니까 한 사람은 HOT의 행복이란 노랠 부르고 한 사람은 모르고 지내는게 행복이래. 행복이란 테마 공원을 지어보면 어떨까? 아님 한 도시를 행복시로 만드는거야. 행복시 행운구 사랑동 기쁨아파트도 만들어 보는 거야. 현주야 방금 한 사람이 떠났어. 군인의 탈을 벗고 땀을 훔치며 원무 밖으로 나간거야. 그에게도 늘상 발에 채이는 돌과 마시는 공기처럼 행복이 따라다니기를 소망해본다. 다시금 이 원무안으로 돌아오지 말기를 또한 바래본다. 그건 바로 전쟁과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한 명씩 한 명씩 정든 이들을 떠나 보낸다는 것은 나에게는 큰 불행이 된다. 더 많이 얘기하고 더 많이 사랑해주고 더 많이 노력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또한 나의 불행에 눈물 한 방울 더한다. 더불어 지금 내 삶과 내 기억의 반경안에 있는 것들에 대한 생각을 한다. 지금은 소원하고 겸연쩍을지라도 아님 너무 친할지라도 더 많이 생각해주고 더 많이 아껴주고 더 많이 그리워해 주리라. 라고 다짐해 본다. 떠나가 슬퍼하기 전에 후회치 않도록 지금의 테두리를 더욱 견고히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도 해본다. 아마도 그게 내 행복일 것이다. 바람이 소스라치게 내 안에 일렁인다. 빈 말이 바람을 타고 날아가 버리고 납덩이 같은 상념이 호수 안에 가라앉아 넘치는 물 한 잔을 컵에 담아 그대에게 보낸다. 그대도 행복하기를 소망하며. 구칠년 구월 오일


7. 무제
Writeday :1997. 06. 26

서릿발과 같은 우리 사는 싸늘한 모습들이 이제는 두려움으로 앞선다. 언제부터인지 시간은 창밖 빛나는 햇살처럼 쉽게 사위어가고 떠나려는 기차를 그 마지막 열차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지금 삶이 무엇인지 죽음이 무엇인지 외로움이 무엇인지에 대한 끝없는 고찰로 도시의 차가운 단칸방 그 속에 들어있는 나의 모습과 미쳐가는 -조금씩 여위어가는 의식속에- 기억의 자각속에 지금 난 한없는 편안한 자유를 위한 죽음을 꿈꾼다. 현실은 살아가야 하고 살아 남아야 함이지만 내 퇴폐적인 모든 것은 이제 악착같은 삶에의 집착을 영위한다. 비록 스스로 목을 졸라멜수도 독배를 들 수도 없지만 -왜 냐구? -이 바보같은 현실과 어리석은 내 모습들 그 사이에서 내 어찌 꿈이라도 꾸지 않을수가 있겠는가. 지금 나는 외로움 그것 뿐이지만 내일은 무엇이 내 의식의 고통을 위해서 날 기다리고 있을까. 두려웁다. 비유하지 못하고 비꼬는 사람들과 사유하지 못하고 토로하는 사람들 그 속에서 황사의 껄끄러움만이 남아 있는 이 도시에서 내가 그들과 함께 숨을 쉬어야 한다는 그 사실이 또한 두려웁다. 하지만 난 무언가? 내가 툭툭 던지는 말들 사이에서 가슴 아파했을 영혼이 있을지도 모르면서 난 무엇이든 알고 있고 깊은 사유 속의 대화를 한다는 그런 자아도취적 발상에 사로잡혀 사는 것은 아닌지 생각조차 하지 않았지 않은가. 저녁 집앞 골목의 가로등 그 불빛 밑에서 보이는 모든 것만이 세상의 전부라고 난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그 영역을 벗어난 내가 상상하지 못하는 세계가 아름다운 어둠속에서 펼쳐지는 것을 이제는 알아야 함이 아닐런지.
바람이 분다. 모스크바에 몰아쳤던 개혁의 바람도 아니고 진보를 꿈꾸는 변혁의 바람도 아니다. 숲은 고요하다. 하지만 나무는 심한 바람에 몸서리를 치고 있다. 어쩌면 흔들리는 것은 나무가 아니라 숲인지도 모른다. 내 작은 가슴으로 그 모든 것을 어찌 알 수가 있겠는가? 현실은 최루 알갱이가 부유하는 붉은 이미지 그것 하나 뿐인 것일까?
끝없는 질문을 던진다. 죽음과 삶과 -순서에 유의하자 죽음을 서두에 제시하는 사람은 ...-외로움과 회한. 하지만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는다. 나도 그들도 미완의 존재 이기에.


8. 아무것도 아니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닌 것들
Writeday :2001년 12월 18일

거기 내가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이름이 있으니..
사람들은 그것을 행복이라 불렀다 하더라..
불행한 시간에 찾아오는 잠깐의 여유라고도 혹자는 그랬다던데..
그것이 무엇이관데 우린 그 두 글자에 목메여 사는걸까..
내일은 내일의 행복이 내일은 내일의 불행이..
어느 것이 우리 사는 내일의 이름이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거늘..
꿈은 바람처럼 우리가 잡으려하면 우리가 만든 그물 사이로 빠져나가고..
시간은 멈춰 세우려 하면 세 걸음은 멀리 도망쳐 버리고..
사람은 내 곁에 있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바람이 되고 시간이 되어 버리는 것인가..
유한한 것은 유한한 것이고 무한한 것마저도 생각 안에서 유한한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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