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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홈피 잡문들을 모아서 1부


1.즉흥에서 기인하여 전화도, 채팅도, 팩스도 인스턴트적이다. 그런 것들을 통해 어떻게 Aura (분위기)를 획득할 수 있는 것인지를 나는 잘 모르겠다

Writeday :1997. 6.17.

『즉흥에서 기인하여 전화도, 채팅도, 팩스도 인스턴트적이다. 그런 것들을 통해 어떻게 아우라 (분위기)를 획득할 수 있는 것인지를 나는 잘 모르겠다.』

오늘 밤 난 ‘영원’에 대해서 생각해. 요즘은 그렇지 경향이라는 것은 어쨌거나 주류를 대변하는 말이고 유행이나 경향이라는 것을 전면 부인하고서 살 수는 없는 거잖아. 우리가 로빈슨크루소우가 아닌 이상 -로빈슨크루소우도 친구(또는 노예)가 있었지. Friday라는- 말이야. 이런 생각이 든 것은 Forever란 단어 때문이야. 일회성이라는 말속에 쓰레기가 쌓여가고 만남이 아무 느낌없이 종결되고 없는 것,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끝없는 동경의 반영처럼 어쩜 요즘 사람들은 신화처럼 영원을 꿈꾸는게 아닐는지. 미노스왕의 미궁에 빠진 존재들처럼 출구 없는 공간에 갇혀 사람들은 불안해하고 그래서 빠져나갈 구멍으로써 영원을 택한 것은 아닐까. 아주 흔하게 노래 속에서 요즘 등장하는 영원은 지금 퇴폐적으로 대두되는 감각주의와 어우러져 아주 자연스럽게 다가오고 있잖아. 스트라토바리우스의 Forever나, 듀스의 Forever, 안재욱의 Forever, N.EX.T의 Here I Stand For You 속의 Forever등. 약간의 지난시간으로부터 지금까지의 방송을 장악한 Foreve 열풍. 글쎄, 열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진지하게 영원에 대해서 생각할까. 사랑의 영원성만을 추종하기에 그토록 대책없이 교육은 폭행을 묵인하고 10대의 사랑은 유아를 살해하는 자행을 저지를 수 있는 것일까. 죽음만이 영원불변임을 믿기에 약간의 질타에도 투신자살하고 고운말 아름다운 말은 커다란 관속에 못박아 묻어버리고 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험한 말과 ‘주먹으로 하지 왜 말로 해?’의 시쳇말의 인용의 신봉자처럼 쉽게 싸움을 벌인다. 물론 모든 것은 필연에서 연유하지만 요즘 사람들 -물론 나도 요즘 사람이지- 영원을 쉽게 노래하며 행동은 일회적으로 끝나게 만들고 있어. 간헐적으로 보도되는 미담은 희소의 가치 때문인지 과장되고 크게 보도되고 우린 우리 사는 세상이 이처럼 아름다운 곳이구나 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무덤과 같은 자기만의 공간에서 밖으로 나가기를 두려워 하고 있음인지. 과연 꿈은 어디에 있을까. 자연의 수많은 종(種)의 소멸처럼 꿈도 사라진 걸까. 하지만 그 누구도 꿈을 천연기념물이나 국보로 지정하기를 제안하지는 않는다. 숨쉬고 마시는 공기와 물이 사라져가고 썩어감을 크게 피부로 못 느끼듯 꿈의 소멸을 우린 지금 느끼지 못하고 있음일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물을 돈 주고 슈퍼에서 사 먹는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지만 지금은 누구나 생수를 자연스럽게 사먹잖아. 이제 몇 년 후면 우린 아름다운 꿈들을 돈을 지불하고 머릿속에 집어넣는 세상에 봉착할런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지금의 우리가 영원이라는 것에 대한 일회성짙은 사유를 계속하는 한은 말이야.


2. 그저 그대를
Writeday :97. 6. 3

아무도 모르는 것-아주 개인사적 사유- 그것에 무언가 희망의 이름을 붙여두고 이렇게 부른다.
그리움 이라고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냥 가깝고 싶은 무엇인가. 거기에서 소유욕을 증류시키고 이렇게 부른다.
그리움 이라고
조금은 알 것 같았지만 종내 몰랐기에 늘 생각의 주체는 홀로 선 외로움의 자아고 종내 몰랐던 대상에 대한 과도한 상념을 그렇게 호명한다.
그리움 이라고
오선지에서 차가운 세상으로 튀어오르는 열정과 강렬함이 여백으로 가득찬 화폭에서 사람의 마음, 그 속으로 채워져가는 이끌림과 존재함의 의심이
한 줄 싯귀에 오늘도 눈물 몇 방울 떨구어 주는
너의 가을아침 이슬같은 겨울을 준비하는 을씨년스러움이 이제 모두 하나가 되어 푸른기와 그 서러움의 끝으로 고드름되어 잉태하니 우린 이 모든 것을 이렇게 부른다.
그리움 이라고


3. 행복에 대하여
Writeday :1997. 10. 7

많은 것들은 그릇 안에 있다. 마음이 가난하면 한 숟갈의 밥을 떠도 바닥난 밑바닥을 보게 되듯 허기지고 공허해지겠지. 마음이 풍요로운 이는 한 숟갈의 밥을 뜨면 세 숟갈의 밥이 더 채워지니 한 숟갈은 아름다움에 대한 진정한 찬사요, 한 숟갈은 공유하는 시간에 대한 즐거움이요, 한 숟갈은 추억이라는 과거에 대한 즐거운 회상 이리라. 친구, 마음이 풍요로운 자여. 그대의 그릇이 언제나 넘쳐남을 바라보며 나 또한 행복함을 부인치 않는다. 흩어져가는 기억과 상념들을 부여잡기 위해 악몽을 꾸고 구차스런 변명을 일삼고 뒤돌아서서 욕지거리를 내뱉던 그 어느 시간에라도 난 그걸로 족했다. 친구라 부르는 이, 그대가 행복해 보이기에.
바람은 차갑고 마음은 얼어붙었다. 겨울은 멀리에 있는 듯 가까이에 있고 바람코지에는 공허함만이 휘돌아 모이고 그리고 종내 떠나지를 못한다. 채울 것이 없는 것들이 모여 일진광풍의 허무를 선사하니 우린 비틀거리고 위태로워 보인다. 쓰러지지 않기 위해 잡아야 하는 것은 바로 행복이라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다고 생각되던 두 글자 인가. 친구, 그대가 그 이상향의 이름을 붙잡고 있다고 생각된다면 영원히 놓지 않기를 그대들의 행복을 위해 빈 바람 밭에 내일의 씨앗을 뿌리는 형벌이 부여된다 하더라도 언제라도 달갑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그대의 친구인 내가 영원토록 축수하리니, 친구여 행복하게나.


4. 혹시라도 무언가를 지금 선택해야 한다면...선택앞에 선 사람에게 던지는 몇가지 질문(들)
Writeday :1997. 10. 9

마음 편하게 전화로 목소리를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는가?
자기의 얘기를 편안하게 적어 엽서라도 띄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는가?
“저녁이나 먹자” 하고서 동네 어귀 분식집에서 맛없는 칼국수라도 한 그릇 나눌 수 있는 사람을 그대는 몇이나 헤아릴 수 있나?
가져야 하는 것을 얼마나 가지고 있으며 가지고 싶은 것을 얼마나 가져 보았나?
조급하지 않았으면 하는 상황과 만남 앞에서 안절부절 했던 가슴 저리는 시간들을 얼마나 저축하여 두었나?
내일은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에 다음날 만남이나 외출 때문에 속상했다가 일기예보가 틀린날 아침 창을 열고 기쁨의 탄성을 외쳤던 시간을 얼마나 맞이하여 보았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몇 시간이고 발에 물집이 잡히도록 작은 선물을 고르기 위해 돌아다녀도 전혀 피곤하지 않은 그런 하루를 몇 번이나 간직하고 있을까?
내키지 않더라도 남을 위하여 자기 마음을 한 수 접어둔 일이 얼마나 되며 한 수 접지 않아야 할 상황에서 자신을 위했던 기억이 얼마나 남아있는가?
고민과 갈등과 선택 앞에서서 먼 훗날이라도 “그래 최선을 다한거야” 라고 말할 수 있는 그때의 생각을 얼마나 소유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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