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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남중」

빨간부엉이 2025. 12. 28. 11:17

 

「남중」

지은이 : 하응백
펴낸곳 :  Human & Books
분량 : 174쪽
2019년 11월 2일 1판 2쇄 발행본 읽음

 

휴먼&북스의 출판사 사장이자 문학평론가등을 역임해 왔던 작가 하응백님의 자전적 소설 이자 첫 소설집인 「남중」을 읽게 됐다. 

내년에 「사국지」라는 소설을 출간하신다하여 기대 중인데 그 전에 작가의 첫 작품을 읽어봐야지 싶어서 주문해 읽어봤다. 

책의 분량만 보면 평소 같으면 절대 사지 않을 분량의 책인데 페북에서 작가님의 글에 이 책에 대해 댓글을 적어 주신 분들의 글을 보면 굉장히 재밌다는 평들 일색이어서 궁금하던차에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주문을 하게 된 듯 하다.

단편 세 작품을 싣고 있기에 소설집이라고는 했지만 작가 자신의 부모에 대한 일화를 소설의 형태로 꾸며서 보여 준 게 ‘김백선 여사 한평생’ 과 ‘하 영감의 신나는 한평생’ 두 편이며, 작가 자신에 대한 내용은 ‘남중’이라는 표제작으로 실어 두었다. 그렇기에 부모와 나의 이야기이므로 소설집이라고 부르기 보다는 그냥 한 편의 소설로 봐도 무방할 듯 하다. 

낳아주고 길러주신 두 분 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상당히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껄끄럽거나 불편한 느낌은 전혀 없다. 그 시대를 완벽하게 살아온 세대는 아니지만 적어도 내 부모 세대쯤의 이야기이므로 적어도 지금의 젊은 세대에 비해서는 배경에 대한 이해도가 어느 정도는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렇지만 그런것과 무관하게 누가, 어느 세대가 읽어도 이 이야기는 읽을 만하다. 바꿔 말하면 재밌다는 말이다. 

첫 작품에서 모친인 김백선 여사는 80세가 넘었고 법적으로는 미혼이다. 첫 남편은 혼인 사흘만에 6.25 전쟁에 징집되고 전쟁통에 사망하여 혼인신고도 안 된 상황이며, 소설의 시작은 전쟁 중 전사자와의 혼인신고를 할 수 있게 된 법령이 생겨난 것과 그걸 알게된 모친의 부탁으로 작가인 하응백님이 혼인신고를 하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고 서류를 준비하고 법원에 제출하여 승인을 받기까지의 과정을 통해서 김백선 여사의 한 평생을 짧고 굵게 따라간다. 세 개의 작품이 200페이지를 넘지 않는다. ‘짧고 굵게’를 지향하지 않으면 일궈낼 수 없는 압축적 서사다. 그 짧고 굵음 안에 담긴 것들이 어찌 재미뿐이랴. 시대의 슬픔과 아픔이 있고 때론 해학과 즐거움이 있다. 

두 번째 작품은 자신을 낳아 준 생부인 하영감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신의 모친과 무려 30세가 차이 나기에 영감이라 호칭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할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아버지는 아버지. 이북 출신으로 사업에 성공하고 돈 많은 그 시대 남자들이 다수 그러했듯 많은 여성 편력을 지니고 있다. 어머니 김여사는 아버지 이야기므로 다시 등장하게 되며 어린 나 하응백도 당연히 등장한다. 이 기묘한 가족의 어린날 서사는 생각해보면 통탄스러울 시대상의 이면이지만 읽고 있는 내내 드는 느낌은 묘한 즐거움이다. 격랑의 시대를 헤쳐나온 이들의 고단함과 지난함과 살기 위해 해야하는 어떤 선택들을 지금의 내가 어찌 다 이해할까마는, 한번쯤 어린 날과 어린 날 단편적으로 뇌리에 각인되던 그 전 시대에 대한 이야기와 감정들이 소환되는 느낌은 내게도 감정적 파고를 일으킨다. 

세 번째 작품이자 표제작인 ‘남중’은 한자로 남녘 남자에 가운데 중자다. 책에서 남중의 의미에 대한 설명을 읽기 전까지는 남쪽땅의 가운데 지점쯤을 얘기하는 걸까? 남쪽의 가운데 즈음이면 어느 지역일까? 하는 궁금증을 지녔었는데 작가가 얘기하는 남중은 그런건 아니었다. 태양이 머리 위 한가운데 떠서 내 머리와 만나고 대지와 일직선으로 관통하는 어느 한 때. 그 때를 남중이라고 한단다. 남중은 앞의 두 작품에 비해 재미는 없다. 그렇지만 가장 근 시대의 이야기인 문화계 인사들의 블랙리스트 사건을 다루고 있기에 가장 첨예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박근혜 정부때의 블랙리스트 파문과 그 시대 정부의 검열과 문화계에 대한 압박등이 재판과정에 대한 서술을 통해 묘사된다. 이것이 남중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싶었고 작가 자신에 대해 상세히 다루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너무 불친절한 소설이 아닌가 싶었지만 태양이 머리 위에 떠올라 백일하게 모든게 드러 난 그런 시점을 은유적으로 서술하며 블랙리스트 재판을 통해 자신이 세상에서 어떤 지점에 있고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행동하고 살아왔는지를 투명하게 보여주고 있음을 알리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싶으니 이 또한 작가의 글쓰기 역량이 범인인 나같은 이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올라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적은 분량이지만 소설 「남중」은 태산 같은 위용을 자랑한다. 다 읽고서 내 마음에 높은 산이 자리잡았음에 대한 표현이다. 이제 하응백 작가님이 내 마음안에 만들어 낸 커다란 산의 한 자락에 들어섰으니 그 산을 긴 세월에 걸쳐 천천히 올라볼 일이다. 다 오르지 못할 지언정 중턱에서 바라보는 풍경과 바람 한 자락에, 삶이 주는 열기의 땀 한방울을 식힐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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