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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개는 어떻게 웃는가」

빨간부엉이 2010. 7. 5. 13:22


「개는 어떻게 웃는가」


작가 : 김병용
출판사 : 작가
발행일 : 2009년 5월 12일 초판 1쇄 발행
분량 : 255쪽


녹색의 잎이 무성한 나무에서 녹색의 과실을 찾기 힘들고, 음악 안에서 소리를 찾기 힘든 만큼이나 책 안에서 글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긴 호흡으로 읽어야하고 전체적인 흐름을 놓치지 않고 잘 잡고 있지 않으면 길을 잃기 쉬운 작품들에서 의도하는 글을 찾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감각적이고 가벼운 느낌의 책들만 읽어오다가 오랜만에 좋은 작품을 읽은 듯 하다. 의도를 발견하기 어려운 작품을 읽는 것은 확실히 어려운 일이지만 읽고 난 뒤의 성취감은 큰 편이다. 비록 작가의 의도함을 발견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말이다.

김병용 작가의 단편을 네 편 모아둔 모음집 「개는 어떻게 웃는가」는 글이라는 숲에 떨어진 보이지도 않을 녹색의 솔잎 하나를 찾아오라는 난제의 보물찾기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느낌이라는 것은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던 글의 효용성, 이야기의 생명력, 작가 의도의 조각을 모으는 작업 이라는 책 읽기의 중요성을 망각한 글 읽기를 해온 것에 대한 반성의 느낌과도 어쩌면 흐름을 같이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각각의 글들은 비록 단편이라는 틀에 갇혀 있지만 글의 흐름을 파악하기 힘든 길고 긴 시작과, 어지러울 정도로 긴박하게 돌아가는 중간의 흐름을 가지고 있으며, 이어질 것 같지 않던 문장과 문장을 잇는 말미의 여운은 읽고 난 뒤 묵직한 마음의 열매를 맺게 하며 개운치 않은 과정을 버텨내고 얻어내는 알싸한 청량음료처럼 경쾌하게 다가온다.

작가의 글쓰기는 전업 작가라기 보다는 글쓰기를 가르쳐온 여러 대학의 교수생활을 거쳐 한국어교육센터의 선임연구원이라는 현재의 직함에 어울리게끔 글쓰기란 이런 것이다 라는걸 보여주기라도 하듯 매우고전적인 방식의 글쓰기가 돋보인다.
또한 글쓰기를 위해 직업을 버리고 여러 나라를 거치고 국내의 산과 거리를 답사한 시절의 체험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글의 행간에서 글이란 마음과 머리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님을 몸소 보여주기도 한다. 그 답사의 시절은 「개는 어떻게 웃는가」이전에 발표했던 두 편의 기행산문집 「길은 길을 묻는다」, 「길 위의 풍경」등에서도 발견할 수 있을 듯 하다.

2009년에 발표된 이 소설집 속의 이야기는 비록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이들이 공감하기 힘든 소재를 채택하고 있지만 이야기란 언제나 직설보단 은유와 비유의 이중, 삼중의 덫을 놓는 것과 같음을 생각해 볼 때 조금만 우리 사회와 삶과, 자신의 시간과 역사와의 연결고리를 생각해 본다면 가슴 시리게 다가오지 않을 수 없다. 문장이 구어체일지라도, 이야기들이 전근대적인 사고의 체계에 대한 복기復棋 에 가까운 자기반성적 연민의 시간처럼 보일지라도 참고 읽어낸 이야기의 뒤 끝에 남겨지는 것은 어려운 자기 깨달음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 깨달음이란 것이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숙제이거나, 후회거나, 반성이거나, 다짐이거나, 의미함이거나, 무의미함이거나... 그 무엇이라도 좋다. 고래로 이야기란 것은 어쩌면 사술邪術 과도 같고 그 사악한 술수의 끝에서 보는 것은 항상 그렇듯 모두에게 제각각이다.
각각의 보임이 다름을 무시함에서 오는 독선과 아집에 대한 경고로 작가는 지금은 고색창연한 말처럼 들리는 '운동권' 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어느 하루의 지리멸렬하게만 보이는 영암 월출산의 산행에서 풀어낸다. 「산행」은 운동권이라는 것과 거리가 멀게 살아온 90년대 이후에 대학에 들어간 나같은 사람들에겐 어려운 용어와 낯선 개념과, 의식의 충돌이 지뢰처럼 깔려있지만 그동안 책을 통해 학습해온 7~80년대 독재와의 투쟁과 계급투쟁의 역사와 민중운동의 시대상을 독도讀圖 하여 나아간다면 그 가닥이 조금은 잡힐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단편의 힘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 생각된다.
가장 인상깊게 읽어던 것은 작품집의 첫 번째 수록작품인 「원장의 개」가 아닌가 싶다. 고립된 채 수용되어 기술을 학습하는 기술훈련원생들의 어느 날 없어진 원장의 개 찾기를 통해 드러나는 집단의 반목과 지도원과 원생과, 고참원생과 후배원생 기수간의 계급갈등의 첨예함은 그대로 한국사회의 수직적 관계형성의 순응함에 대한 신랄한 해부처럼 읽혀졌다. 학교도 아닌 사회도 아닌 곳에서의 어정쩡한 신분 안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숨죽이는 사람들과 그들의 목줄을 쥐고 있는 기득권과의 갈등과 예정된 결말은 우리 사회가 가진, 군대가 가진 수직관계의 비인간적 행태들에 대한 증명사진과도 같다.

각각의 단편들이 하나의 책으로 묶일 때.. 그것이 어느 시절의 작품 모음집이 아닌 어느 한 작가의 모음집이라면 그 단편들을 하나로 묶는 어떤 것들이 분명 있기 마련이다. 「개는 어떻게 웃는가」라는 모음집을 하나로 관통하는 것은 '세대, 시대, 사람의 소통' 의 문제로 나는 이 책을 읽었다. 감춰진 보물찾기의 쪽지마냥 발견하지 못하던 그것을 마지막 작품인 「바통」에서 발견했고, 나는 감탄했다. 친구의 죽음을 앞두고 과거를 돌아보며 결국 소통하지 못했던 서로간을 반추하는 화자의 모습에서도 그러하였지만, 「개는 어떻게 웃는가」에서 동네 반미치광이를 통해 바라본 남편과 소통하지 못하는 아내의 문제를 보았고, 「원장의 개」에서 계층간의 단절의 모습을 보았으며, 「산행」에서 함께 궁극의 목표를 향해 움직여야 할 동료간의 소통부재의 날선 위태함을 보았다.
뛰어난 작품들이 의례 그렇듯 -관습의 폐혜로 읽힐지라도- 각각의 작품들은 어떤 희망차거나 뚜렷한 결언을 맺지는 않는다. 그것이 불편하거나 언짢다면 책을 읽을 이유는 없다.

작가의 의도함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서글픈 일이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읽기를 멈춰서는 안 될 것이다. 볼 것을 보는 일을 멈춰서도 안되고, 생각해야 할 것을 생각하는 일을 멈춰서도 안 될 일이다. 모음집 「개는 어떻게 웃는가」을 읽고 내가 발견한 작가의 의도함은 그러함 이었던 거 같다. '멈추지 말고 나아가기' 를 바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어쩌면 그 발견이란 것은 내가 발견하고자 했던 것, 또는 내 맘에 드는 것만을 골라잡은 발견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은 위험한 발견이고 바보같은 일일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나의 한계라면 멈추지 않음을 생각하는 지금 그 자체로 모든 것은 발견을 뛰어넘는 의미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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