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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에서 아니,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서 난 어릴적부터 많은 생각들을 하며 지냈다. 내가 자라온 환경은 절대로 권위주의적이며 보수 파시스트 같은 아버지가 지배하는 일당체제의 가족 구성이 아니라 생각을 존중하고 생각을 키우기를 항상 권고하시던 부모님의 영향 아래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모르게 억압받고 고통받는 여성상으로 어머니가 비춰지고 누나들이 비춰져왔다. 비단 그런 것 뿐만이 아니라 내 손에서 떠나지 않았던 수많은 동화책과 외국의 민담을 다룬 소설과 문학전집들 속에서 조명되는 여성상들 조차도 늘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으며 고통에 대한 당연지사라는 논리체계가 지배하고 있는 의식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나이를 먹어가며 그런 여성들의 사고체계가 여성의식의 보수화라는 학문적 용어로 정의가 되는 것을 알았지만 세상이 바뀌고 여성의 권위가 신장이 되고 남녀 평등을 외치는 그 속에서도 그리고 그 외침의 주체가 깨어나는 의식을 지닌 여성 다수였슴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이고 근원적으로 여성들의 내부 안에는 보호 받기를 원하고 약자이기를 먼저 제시하는 의식의 보수화가 깨뜨려지지 않음에 상당부분 당황하게 되었다.


요즘, 영화를 좋아하다보니 여성들의 자아 찾기라는 주제를 지닌 영화들에 관심이 많이 가게 되는데 그 안에서 조차도 여성들은 남성과 여성의 분리라는 이분법적 구도에 대해서만 얘기할 뿐이며 혁신과 진보라는 이름으로 여성성의 해방에 대해서 투쟁적으로 얘기하고 있고 평등에 대해서 외치는 동질의식에 대해선 거의 언급을 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함이 여성으로서 한국이라는 나라에 적을 두고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분명 왜곡이고 오류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주는 이야기라며 환호하는데는 의식의 보수화에 대한 근원적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한국 영화 안에서는 팜므 파탈(요부) 로서의 여성 주체적 영화는 전무후무한 실정이고 어느 잡지에서 여성들의 대화를 옮긴 부분에 팜므 파탈이 등장하는 영화가 빨리 나왔으면 하고 바라는 말을 읽은 기억이 있다. 이런 생각은 분명 대립구조다. 내가 남성이라서가 아니라 함께 가야함의 의식이 결여되어 있다는 건 분명 피해의식의로부터의 본질적 탈출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하며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여성 내부 의식구조의 변환이 아닌가 싶다. PC통신의 여성해방론자 신정모라의 글들은 여성들이 가부장적인 사회구조로부터 하루빨리 해방되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성이 먼저 개방돼야 한다는 지론을 펴고 있다. 급진? 글쎄... 이런 사고가 환영을 받는 것이 진정한 의식 개선인가 나 자신에게 묻고 싶어졌다. 영화 <안토니아스 라인> 에서의 여성 주체에 의한 모든 사회구조의 개편은 일견 타당하게도 받아들여지지만 영화 안에서의 유일한 생각있는 남성인 철학자조차도 '굽은손' 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지며 여성의 세계안에서 남성이란 별 무의미한 존재로 비춰진다. 고리스 감독은 유명한 페미니스트이고 여성영화제에서 늘 주목을 받아왔다. 난 감히 페미니스트라고 말하지는 못하지만 -그 이유는 내가 여성을 보호받아야 하는 약자로 생각하기에 영원토록 불가능할 것이다- 소위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인물이나 페미니즘에 입각한 작품이나 영화들이 제공하는 투쟁의 언어들에는 쉽게 공감을 할 수가 없다. 차라리 남자 누드를 적나라하게 그려 화재를 모으고 있는 주홍이라는 여성 화가의 사상에, 아니 관조의 자세에 더 박수를 보내고 싶은 심정이다.

여성들의 자아찾기, 고객숙인 남성들. 97년 한해는 이런 주제들로 저물어 갔다. 방송을 장악하는 노래도 개그도 모두 여기에서 유래하였고 끝을 맺었다. 페미니즘 잡지인 {이프}가 창간이 되었고, 이제 제도적으로 여성들은 페미니즘에 대한 남성들의 무지를 신랄하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고마' 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페미니스트 카페가 생겨 그들만의 대화의 장을 형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공격의 대상인 남성의 한사람으로서 난 여성들의 '잠자는 숲속의 공주' 나 '신데렐라' 가 되기를 근원적으로 꿈꾸는 여성들의 그런 신분상승에 대한 콤플렉스로부터의 탈출을 권고하고 싶다. 얼마전부터 우리가 알고 있던 동화들이 대다수 다시금 해석이 되어지고 있다. 독일학자 이랑페체가 찾았다는 '백설공주' 의 원본은 전제군주와 왕비가 백성을 착취하던 봉건시대. 부잣집 딸인 백설공주는 자기의 부귀영화가 백성의 피땀이라고 느꼈다. 한 젊은 청년을 만나면서 반란군에 합세, 왕정을 무너뜨리고 왕비를 처형했다. 라는 내용으로 되어있다. 그런가하면 '신데렐라' 는 원작에서 왕자의 청혼을 물리친 여성 노동운동가로 조명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고전 민담들도 상당부분 다시 쓰여지고 있다. 바로 이 여성 해방 운동가들에 의해서 말이다. 차라리 쓸데없는 이론적 학설에 목메여, 그리고 말장난으로 공격하기 보다 이런 내용들을 통해 자신들의 따뜻한 가슴을 차갑게 바꾸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나 다시금 생각해 본다.


근본적으로 한국에 사는 여성들은 아직 어렵다. 유교사회의 잔재는 너무나 의식의 뿌리속까지 박혀 남성들의 의식은 아직도 스스로 여성의 위에 위치지울려고 한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문제는 여성들 스스로가 자신의 2세를 자신들이 그렇게 살아왔슴에도 또다시 여성천대의 의식속에서 키워가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말이다. 사실 이런 생각하면 너무나 짜증난다. 왜 아직도 그렇게 남아 선호사상에 스스로 붙쟙혀 여성들 스스로 살아가고 있는지 말이다. 명절때의 풍경을 떠올려보자. 명절증후군이라고 까지 부르는 '여성잡기' 의 그날들. 남자들은 뒷짐지고 제사상이나 받으면 그만이지만 그 과정안에서의 여성들의 가사노동이 얼마나 힘든지를 남성들이 느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난 어려서부터 그 모든 과정안에 항상 같이 했기에 아마도 난 여자들이 불쌍한 존재라는 의식이 항상 깔려있는지도 모르지만 남자든 여자든 남아 선호사상의 뿌리를 뽑고자 한다면 서로를 이해해주는 의식의 근간을 위한 작은 노력들이 먼저 필요할 것이다.


편하게 살고자 하는 여성들의 의식이 창녀촌을 만들어냈고 그 안에서 군주전제로 군림할 수 있는 의식을 얻는 남성들이 있는한 이 빈곤의 악순환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현대사 안에서 매춘과 매매춘의 역사는 결코 어느 한 장으로 다룰 수 있는 부분이 아니지만 그리고 그런 과정이 어쩌면 계속 순환될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찾아가는 남성들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여성들. 역사의 비극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남자들은 흔히 말하길 창녀들이 가장 순수한 영혼을 지니고 있다고 하지만 난 절대 그렇게 보지 않는다. 일하지 않고 먹으려는자와 다름 아닌 이름으로 난 그들을 정의한다. 이 시점에서 누가 옳고 그름을 논하자는 것은 아니다. 결국 매춘의 역사안에 있는 그들은 우리의 어쩔 수 없는 이웃이니까 말이다. 몇 년 전에 미군에 의해서 죽은 창녀 '윤금이' 의 이름을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얼마전 인터넷의 웹사이트에 그 사진과 내용들이 실린 모양이었다. 컴맹인 나로서는 볼 길이 없었지만 너무나 씁쓸했다. 외국인에 의해 올려진 그 사진의 처참함 보다도 그 내용과 비평을 쓴 사람의 말들이 이 땅의 매춘역사의 한 장의 치욕을 장식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감히 내가 여성에 대해서 이렇게 나마 생각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부끄러웠다. 핼드먼이라는 미국인이 비난하는 것은 주한 미군이었지만 그 내용을 읽는 우린 무엇으로 그 뒤에 숨은 비난의 화살촉을 막을 것인가 두려웠다. 내가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중요한 사실 하나는 남성이나 여성이나로 가름하기 보다 사람으로, 하나의 그저 세상 살아가는 생명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였음 좋겠다. 시간이 없어서 체계적이지도 못하고 너무 어벙벙한 얘기만 잠깐 늘어놓았는데 지금은 적어도 남보다는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시대다. 그런 시대안에서 먼저 날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할 듯 하다. 이말을 하고 싶었나 보다. 남에 대해 얘기하기보다 먼저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기를...


97년 1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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