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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 Poem & Etc

생각이 있는 풍경, 세 번째

빨간부엉이 2009. 2. 10. 17:47

생각이 있는 풍경, 세 번째

햇살 기울어가는 거리의 전화부스 앞, 사람을 기다리는 외로움들을 바라보며

귓전을 맴도는 환청은 날 거리로 내어몬다. 들리는 음악 소리는 자기 자신에게 노래를 하는 듯 고해성사처럼 들어서는 안되는 두려운 비밀처럼 음습하다. 햇빛이 낭자한 거리는 선혈을 모두 빨아들일듯이 창백해 보이고 들뜬 여인들의 화장처럼 햇빛은 음악을, 소리를, 사람을, 축배의 술잔을 시기하듯 사약을 퍼붓고 창백한 거리는 나무와, 바람과, 거울과 그 안에 비치이는 그대의 모습을 지켜내지 못하고 햇살과의 전쟁에서 주춤 주춤 뒤로 물러서고 종내 그대의 거리는 햇빛 낭자한 내 내면과 그대의 외면세계의 두려운 회색 연기 날리는 화장터가 되어버렸다. 결과야 어떻든 땅에 누웠다. 대지의 숨결은 싸늘하게 식은지 오래됐고 사람들이 이룩해논 산물들의 음기만이 그대 순수성을 굶주린 듯 탐내고 있으니 저 뒷 편에서 웃음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양면 거울의 뒷 편에 서서 자신이 보이지 않음에 대한 득의의 웃음을 퍼붓고 있는 그대의 그림자는 울고 있었다. 한 방울, 다시 한 방울. 무엇도 깨울 수 없는 자아의 눈물을 흡수한 창백한 거리는 신화와 동화와 기약을 오염시키고 있으니 난 휘파람을 불어야했다. 비둘기도 평화의 사도도 하다 못해 비루먹은 강아지 한 마리 나타나지 않으니 햇빛 낭자한 창백한 거리에는 가릴 것 하나 없는 치부를 드러낸 그대 자신만이 홀로 외로울 뿐일 것이다. 일어서면 눕고 누우면 일어서는 분리된 두 개의 인격은 망루에 올라 세상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가만히 두발을 허공에 놓았다. 하지만 일어서 누워도 누워서 일어나도 추락하지는 않았다. 대기안에는 숨을 쉬어야 하는 당연성을 지닌 논리처럼 개울에 허우적대던 그대의 공포와 나의 작은 것들에 대한 도둑질과 우리의 큰 방안에 누워있는 구겨진 허물이 주는 눅눅함이 공존하고 있으니 그대는 내가 떠받들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노란색 사선이 그어져 있는 아스팔트 위에 무릎을 꿇었다. 적어도 햇빛은 30도 각도로 비켜 비치고 남은 공간에는 회색과 파란색이 헝클어진, 그러나 적어도 안식을 주는 촛불 하나가 있으니 나는 보았다. 단아한 자세로 그 밑에 서서 내 모든 것을 사하여 달라고 신께 기도하는 그대의 모습을 난 보고 말았다. 파란 하늘에서 파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하루가 내리고 이틀이 내리고 사흘이 내리고.... 햇빛도 거리도 엉터리 사념의 망루도 노란색 사선과 비껴가는 빛과 어둠 사이에 있는 촛불도 모두 보이지 않고 나는 파란 눈 안에서 행복했다. 진정으로 고독했기에. 정처없이 발걸음을 옮기는 그대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전화를 기다렸다. 적어도 팔년은 기다렸다고 느꼈다. 난 혼자 얘기하는 놀라운 능력을 터득했다. 그 안에서 그를 위해 난 노래했고 울었고 웃었으며 햇빛 낭자한 거릴지라도 그대가 돌아올날을 위해 난 파란 눈을 쓸어 파란 눈사람을 만들었다. 그리고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벨이...

97년 10월 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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