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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8월 7일 시민 여론조사에 '만화의 법적규제는 안된다'라는 지지율이 84%가 나왔다. 그리고.. 짧은 시간 사유하기


무분별한 창작이란 결코 있을수도 있어서도 안된다는 생각이지만 도대체 규제의 선이라는게 너무나 애매모호하지 않은가 말이다. 무조건적인 규제 반대는 더 나쁘다고 생각들지만 창작자는 자신의 입장에서 얘기하고 제도권은 국민의 의식보호라는 가당치 않은 명분을 들고 나오고 있다. 하지만 어디에도 그 선에 대해서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 듯 하다.

예술과 외설의 차이는 우스갯말로 에로물 비디오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보면 예술이고 중요한(?) 부분만 보면 외설이라고 하지만 창작과 검열은 어떤가. 아무도 창작의 매개체가 무엇이 되든 상당히 관대한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가위질을 이해하려는 선에 대해서는 관심들이 없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제도권의 외로운 정의 수호자라서 이런말 하는 건 아니다. 나도 규제와 가위질이라면 너무나도 치가 떨리게 싫은 사람이고 잘리지 않은, 그래 단 한번만이라도 그런 영화를 보고 싶은 사람이다.

문제는 양쪽 모두에게 있다. 새로움이란 것이 많이 고갈된 지금에 더구나 자극적인 요소들이 없이는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기가 힘들다는 거. "그래 단지 그것뿐인가?" 라고 반문하고 싶어진다. 주제도 명제도 의미도 없는 단순히 자극적인 하드코어의 요소들로 채워진 것들에 시선을 주는 우리들도 같은 의미에서 공범자다. 그리고 자신에게서 창작의지가 고갈되었다고 생각된다면 깨끗이 물러나 독자와 청취자의 입장으로 돌아가는 깔끔한 모습도 존재하지 않음은 과거 근대사 우리의 정치판 모습과 똑같다. 집착이란 그렇듯이 항상 문제를 일으키고 만다. 좋은 의미에서의 매달림은 역사를 바꾸기도 하지만 광적이란, 편향됨 그 무언가로 귀착되지 않는가 말이다. 제도권 또는 공권력의 수호란 또한 어떠한가.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근다는 말처럼 일부에게 보여지는 바라봄의 영상화나 활자화를 그토록 가로막기 해야 한다면 진정으로 그 체제에 대해서 의심해 봐야 하는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시대는 변하고 시간은 흘러가기 마련이지만 결코 변하지 않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에 각인된 기억의 흉터일 것이다. 언제라도 역사라는 이름은 그들을 심판할 것이니 지금의 현실에 너무 흥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좀 더 냉철한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신문을 보니 사람들이 그동안의 현상에 많이들 염증이 난 듯 하다. 만화규제에 반대하는 여론이 팔십 몇 퍼센트가 된다니 조금 의외라는 생각도 든다. 어른들은 만화라는 독서수단을 상당히 싫어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말이다. 물론 이 상황에선 단지 만화가 문제가 아님을 알지만 어쨌거나 재밌다고 생각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정치에 관심이 많기로 우리나라 사람들 따라갈 만한 나라가 없다고 들어왔었다. 선거 할 때 한 번 보자. 투표율이 육십 퍼센트 넘기가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매일 거의 매일을 정치와 정치가들의 돌아가는 모습과 행각에 대해서 술안주 삼기를 일삼을 때는 언제고 정작 그들이 매도하던 대상과 우러르던 대상을 가르는 날에 와서는 배낭 꾸려서 산으로 들로 낚시터로 떠나는게 요즘의 모습이 아닌가 말이다. 정말 화가난다. 기본적인 권리행사마저 그런 식으로 쓰레기통도 아닌 길가에 담배꽁초버리듯 버리면서 만화규제하지 말라는데는 쌍수를 들고 응원하니 이건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공륜의 사전심의 위헌판정이 나온지 일년 (작년 10월 4일)도 안됐는데 영화자르기는 여전히 예사이고 그로인한 국제적인 망신은 도대체 누가 감당할 문제인가 말이다. 칸느 50주년 행사에서 우리에게 피해의식을, 문화적인 존경심을 자아내고 있는 (개소리다) 그 문제의 왕가위가 한말 -한국에서 내 영화가 커트마다 재현되고 그 영화가 인기를 누렸다는 말을 듣고 난 새로운 것을 시작해야 함을 느꼈다던가- 로 인해 우리 영화인들은 도대체 어떻게 얼굴을 들고 충무로에서 행세할 수가 있는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니 체했나? 라고 늘상 묻고 다니던 한 아저씨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화제가 빈곤해지만 남의 말을 한다고. 지금 우리의 상황이 그러함인지 의심스럽다. 자연속에서든 사람들속에서든 화제는 얼마든지 있는데도 -물론 찾아내기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왜 우린 지금 남의 말을 입에 올려야 하는가 말이다) 심의는 없어졌다고 하나 등급외 상영관의 불가로 이번 <나쁜영화>는 자체적인 가위질을 하고서 상영에 들어갈 수가 있었고 또 한번의 망신 -뤽베송 내한과 그의 영화 <5원소>의 가위질, 그리고 그의 떠나감- 은 정말로 우리를 영화관으로 이끌고 싶은건지 그 엄청난 금액을 주고 들여온 대자본이라는 매머드에게 묻고싶다. 한국영화의 위상은 땅에 떨어지고 우리 영화의 외국내 배급금액의 미비함을 차치하고서라도 도대체 배급망이나 조직을 하고 싶어하는 건지 정말로 묻고 싶어진다. 헐리우드가 그들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외국내 배급하기 이전의 시험장으로 우리를 생각한다고 한다. 자기들끼리 몰려와서 치고 박고 비싼 금액으로 사가는 우리가 그들에게 얼마나 '봉' 이겠으며 그 좁은 좌석에서 긴 줄을 서고 그 영화를 보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실험실의 모르모트로 생각하는 것도 욕할 수만은 없는 일일 것이다. <잃어버린 세계>가 -다른 곳은 어떤지 모르겠다- 광주에 상륙을 했을 때 휴일은 물론이고 평일까지 극장앞을 가득 메운 관람객들을 바라보며 -물론 보고 싶은 영화를 보는 사람들을 뭐라 할 생각은 없다- 비슷한 시기에 걸린 우리 영화의 썰렁함 앞에 난 감기라도 걸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정말로 책임은 모두에게 있는 것이다. <쇼킹아시아>를 보며 아시아가 정말로 저런 무지막지한 동네인가에 대한 의문보다는 흥미있는 볼거리를 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잘려진 영화에 그 감독이 분개하며 떠났는데도 극장앞은 연일 장사진이다. 우리의 정서와 부합되지 않는다는 이유 -공륜의 시행문을 보면 상영불가 이유가 단 한줄로 나와있다. 우리의 정서와 부합되지 않아서라고- 그 하나만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개봉을 기다린 영화가 일년간의 심의 유예로 들어갔고 지금 그 우리의 정서와 부합되지 않는다는 그 정서는 세계적인 유행이 되버렸고 어느덧 표현 양식에서는 지는 태양이 되어가고 있는데 철지나 상한 과일을 먹듯 일년후에 그 영화가 우리 앞에 왔을 때 무슨 낯으로 -이미 각종 영화 잡지에서는 장면 장면의 스틸 사진과 플롯이 공개된지 오래다- 극장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말이다. 1997년 한국 영화와 개떡같은 공륜은 두 가지의 빚을 마지막 홍콩영화에 지고 말았다. 그 빚은 도대체 언제 갚을 것인가?

우리는 만화의 창작자유를 보장하기 이전에 우리의 의무에 더욱 충실해야 하겠고 망신살 뻗치는 과다한 수입과 이래저래 문제를 일으키는 폭력만화의 수입도 자제, 아니 근절하여야 하겠고 정말로 청소년들은 비록 대다수가 그런 영향권 안에 있지 않다 하더라도 항상 문제는 소수의 숫자들로부터 시작됨을 결코 무시하여서는 안될 것이다. 대중이라는 이름의 보편성은 무감각 해짐과 다름아닌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정말로 무감각해져서 안될 것은 십대의 성윤리 파탄과 기성의 도덕성 말살이 아니라 내부, 우리 안의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무감각 그것일 것이다. 여러가지 산적한 문제들은 외부로부터 치유하기는 힘들다는 게 내 개인적인 견해이고 너무 늦지 않았다면 -정말로 늦지는 않았다- 정말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순수나 미학의 마음을 이 답답한 세태안에서 녹슬어 어떤 열쇠로도 열 수 없는 날이 오기전에 다듬어야 하겠다.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의 조율은 손끝에서 오는 건 정말로 아니다. 시작은 손끝에서 시작하듯 미약하지만 결과가 이끌어내는 그 아름다운 선율을 위하여 오늘도 우리는 과정안에서 구슬땀을 대지에 뿌려야 하지 않을까.

97. 8월 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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