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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달콤한 나의 도시]

빨간부엉이 2008. 6. 10. 10:04



[달콤한 나의 도시]

Book Info

작가 : 정이현
출판사 : 문학과 지성사 (www.moonji.com)
ISBN :89-320-1715-8

올 초 2~3월경 누님댁에 갔을 때 큰 조카의 책꽂이에 꽂혀있던 책 중에 세 권을 빌려왔는데 그 중의 한권.
엊그제 밤에 텔레비전을 보다가 새로 시작한 드라마가 있어서 잠깐 보기 시작했는데 중간부터 본 터라 제목도 모르고 그냥 흘려 보기 시작했는데 어쩐지 익숙한 듯한 내용. 여주인공이 회사의 이사와 식사를 하는데 맞선을 보라며 상대남자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주는 장면부터였다. 쪽지에는 '김영수'라는 절친한 동생의 이름이 적혀있어서 미소지으며 보기 시작했는데 좀 더 보다보니 [달콤한 나의 도시]가 드라마화 되어서 나온 것이었다.
책을 거의 읽지도 못하고 살거니와 책 소개 같은 거 잘 하지 못하기에 책 코너에는 새글을 거의 올리지 못하지만 괜찮게 읽은 작품이 드라마로 나온 반가움에 몇 자 적어보기로 했다.


플롯 자체는 간결한 작품이다. 다만 그 심플함 안에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가의 문제이고 보면 이 작품은 결코 간결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쌍둥이자리, 혈액형B, 161.5Cm의 키, 120정도의 IQ, 화학과 체육을 지지리 못했던 학창시절, 우울한 날의 단 커피를 좋아하는 서른 한살의 책 출판/편집일을 하는 전문직 여성을 작가는 전면에 내세워 결혼과 일, 또는 자아실현이라는 인생의 터닝 포인트에 서있는 동시대 여성들의 심리를 묵직하면서도 담백하게 조망해 나간다.
남성들에게도 쉬운 것은 아니지만 현대의 여성들에게 있어서 결혼이라는 제도로 뛰어드는 문제는 실로 간단하지 않은 어려움이 아니겠는가. 많이 달라졌다고는 해도 아직은 부계중심사회에서 전대의 가치관과 남성 중심의 가족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남성의 가족' 이라는 울타리 안으로 들어서서 자신의 자리를 쟁취해야만 하는 여성들의 시간은 여전히 버겁고 힘듦이 분명하기에 남성의 재능과 재산능력을 칼날같은 잣대로 그어가며 골라야 하는 현대 여성의 '선택'이라는 부분에 있어서의 문제점을 힐난하거나 마음 안에서 단죄할 수 없슴이기도 하다.
그것은 나 또한 몇 줄 위의 남성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사고방식의 소유자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여주인공 오은수와 그녀의 연하 애인인 태오, 모든게 중간층에서 어느 한켠으로 치우치지 않는 무난함의 표상같은 맞선남 김영수, 그리고 조건만을 쫒아 결혼과 이혼을 경험하는 친구, 잘나가는 직장을 때려치우고 오랜 꿈을 쫒는 친구의 이야기들을 관통하며 작가는 주인공의 의식흐름과 독백을 통해서 서른한살의 고민을, 여자로서의 생각을, 결혼이라는 제도에서의 선택을 통한 사회적 인식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통해서 인간으로서의 자각과 번민과 고통을 이야기한다.
거기에는 묵직함이 있지만 한없이 우울하지 않으며, 가벼운 동시대성을 스케치하고 있지만 먼지처럼 부유하는 가벼움이 아니다.
이야기라고 하는 것이 태생적으로 결말지향의 닫힌 구조를 지닌 비극성을 내포하고 있지만 이 작품은 마침표를 찍는 그 순간부터 새로운 시간과 미래를 지향하고 있기에 좋다. 그 좋음이 한없는 푸르름이 아니라 여전히 한걸음 한걸음 내딛기 힘겨운 살아감과 선택의 이야기가 되겠지만 그래도 하나의 이야기를 오롯이 작가의 결말이 아니라 독자의 의식과 생각으로 새롭게 끌어가기를 희망하는 역량또한 나쁘지 않다. 작가의 첫 번째 장편이지만 단편에서 굵직한 문학상을 수상한 경력또한 무시하지 못할 부분이 책을 덮는 아쉬움으로부터 역시 크게 다가온다.
마음과 생각이 가득한 작가의 내면과 끝없는 선택앞에 놓여있는 현대여성의 마음과 사랑을 보듬는 따뜻함이 때론 힘겹다. 그러함들을 무시할 수 없는 내 마음도 이야기 안에 녹아들고 있기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덧붙임 :


1. 책의 표지와 챕터마다의 일러스트는 아마도 국내에서 가장 유명할 권신아님의 일러스트로 채워져있다.


2. 드라마는 매우 가볍고 경쾌하다. 아직 초입부의 내용뿐이어서 그럴지 모르지만 작품성보다는 드라마가 갖는 시청률의 노예라는 한계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함때문은 아닐까 싶다. 단적으로 주인공 은수와 태오가 보는 첫 번째 영화는 소설에서는 안토니오니의 <정사>지만, 드라마에서는 트뤼포의 <쥴 앤 짐>을 보는 장면이 나온다. 드라마가 지향하는 트랜디함과 경쾌함을 보여주는 장면인 듯 하여 기억에 남았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해 나갈지 지켜볼 예정.


3. 밭 일을 하다가 비가 올듯하여 내려와 오랜만에 꽤 긴 글을 썼는데 분명 글을 마치고 저장을 했건만 저장을 마친 잠시 후에 폭우와 천둥 번개속에서 찰나의 정전사태가 벌어지고 재부팅한 컴퓨터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글. 참 암담하다. 글을 다시 쓴다는 건 새로 쓰는 것 보다 몇곱절 힘든 일이다. 원래 의도된 글과 한참 달라져버리고 짧아져 버렸지만 암튼 좋은 작품임을 강조하기 위해 덧붙임에 남겨둔다.


4. 정치나 사회문제를 애써 외면하며 사는 나지만 요즘의 한국은 참 어지러운 시절임이 분명하다. 쇠고기와 광우병의 진실에 대한 궁금증에 각종 고발프로나 시사프로그램을 챙겨보기 시작했고, 광장으로 쏟아져나온 시민들의 행동과 공권력의 어이없슴등을 모니터하며 황당함을 느끼는 때이다. 소설과는 상관없지만 작금의 도시는 몸살을 앓고있다. 공권력으로 대표되는 정부와 시민(단체)들의 위험한 게임은 먼저 지치는 어느쪽에선가 잘못된 악수를 둔다면 사태는 매우 걷잡을 수 없어질 듯 하다. 한때는 달콤했을 저들의 도시를 지금은 우리의 달콤한 도시로 변모시키기 위한 사람들의 발걸음이 안쓰럽다. 함께할 처지가 아니지만 마음만은 대중과 진실의 편에 서고싶다. 언젠가는 다시 도시로 돌아갔을 때 그 도시가 달콤했으면 하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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