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통의 치약, 그 끝을 짜내어 거품이 잘게 일도록 구취냄새를 닦아내 본다. 하얗고 파란 그 약품을 한 통 거덜내도록 세상안에 냄새나지 않는 말을 얼마나 내어놓았을까. 믿어 의심치 않는 미백의 언어들이 보이지 않는 악취로 오염이 되있었던건 아닐까? 내일이면 또 한통의 치약을 사러 동네 가게에 들를 것이다. 이제는 제발 더럽지 않은 말들을 세상안에 뱉어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하나의 볼펜, 언제나 그 속에 들어있는 잉크가 다 떨어지기도 전에 볼펜 끝의 볼을 망가뜨려서 못쓰게 되기 일쑤다.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언제나 그러하다. 그 사람에게 해야할 말의 잉크를 다 소진하지도 못한 채 쉽게 식상하고 오해하고 다투고 그래서 관계의 볼을 조급스럽게도 끝장내 버린다. 하나의 볼펜 속에 들어있는 잉크가 종이..
신 권주가 (新 勸酒歌)달빛이 머리위에 따라다녀 긴 마음의 산보에 뽀얀 농무와도 같은 아름다움이여.멀어도 좋고 가까워도 좋은 그대 모든 것에 대한 회상으로 안주삼아 이 길고도 긴 아름다움 속에 내 마음의 벗 그림자 상석에 모셔두고 하석에 걸터앉아 농무주 한 잔을 청해본다.일배 (一杯)사람을 산이라고 생각하게. 얘기하지 않았던가? 자네는 이제 겨우 산 중턱에 와있는 거라구. 벌써 그렇게 지치고 숨차하니 이 산을 어찌 넘겠는가.이배 (二杯)세상시 이치 모두 순리대로 흘러가는 걸세. 남자는 늑대고 여자는 여우라 하지 않던가? 자넨 자네를 순한 양이라 생각하고, 지금 안주가 되고 있는 존재를 토끼라 생각하지? 에이! 여보게, 내 보기엔 둘 다 천하에 없는 늑대와 여울세 그려.삼배 (三杯)눈을 들어 거리를 아주 ..
뉘엿뉘엿 넘어가는 황혼의 어둠에 조그만 초록색 등을 켠다굴레안에 아집으로 가공되었던 지난 시간의 콘크리트 포장길에 작별을 고하고먼지 폴폴 날리는, 키다리 플라타너스가 벗 삼아 주는, 코스모스 하늘거리는 신작로 위에서내일의 씨앗을 호주머니 안에서 만지작 거리는 굼뜬,그러나 소담스러워 보이는 정겨움으로 모두들 그렇게 마음 안에 꺼져 있던그 젊은날의 초록등에 부옇게 쌓여진 세월의 허접쓰레기를 후하고 불어낸다.콜록거리고, 기침으로 인하여 고통스러워도꺼지려 하는 초록색 등의 불빛에 다시금 심지를 돋울 수 있슴에그저 가물거리는 뿌연 시야를 깨우침의 눈물로 씻어내고첫 팽이치기에 성공한 소년마냥 그저 기쁘다.녹슬고 삐걱거리는 관념의 아룸다움과, 체면으로 감싸버렸던 이상의 부끄러움이 놋그릇 닦는 기왓 가루의 정성으로 가..
멀리 보이는 것에 불이 꺼진다멀리 보이는 것에 불이 켜진다. 빨간색 벨벳 커튼 사이로 언뜻 눈이 내리는 것이 바라다 보인다. 스쿠루지 영감이 유령 마레를 만나고 있을까? 성냥팔이 소녀가 지포라이터를 바라보며 상상의 생크림을 먹고 있을까?멀리 보이는 것에 불이 켜진다. 하인리히의 발자국을 따라 브레드가 현재의 티벳에서 과거의 달라이를 만나고 우린 먼지 자욱한 천국안에서 허상을 본다. 그걸 진짜라고 믿듯이 팝콘을 입안 가득 우겨 넣으며.멀리 보이는 것에 불이 켜진다. 혁명의 기치를 내걸고 가난한 영혼들은 불안을 잠식시켰다고 장담했지만 100년을 넘기지는 못했다. 한 세기를 이어가지도 못할 이념에 모든 것을 건 인간의 우매함이 낳을 결과는 전쟁과 죽음과 배고픔. 그것 뿐이었다.멀리 보이는 것에 불이 켜진다. ..
아시아에서 아니,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서 난 어릴적부터 많은 생각들을 하며 지냈다. 내가 자라온 환경은 절대로 권위주의적이며 보수 파시스트 같은 아버지가 지배하는 일당체제의 가족 구성이 아니라 생각을 존중하고 생각을 키우기를 항상 권고하시던 부모님의 영향 아래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모르게 억압받고 고통받는 여성상으로 어머니가 비춰지고 누나들이 비춰져왔다. 비단 그런 것 뿐만이 아니라 내 손에서 떠나지 않았던 수많은 동화책과 외국의 민담을 다룬 소설과 문학전집들 속에서 조명되는 여성상들 조차도 늘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으며 고통에 대한 당연지사라는 논리체계가 지배하고 있는 의식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나이를 먹어가며 그런 여성들의 사고체계가 여성의식의 보수화라는 학문적 용어로 정의가..
내가 찍은 사진도 아니고,내가 쓴 글도 아니고..이미지 끌어다 올리는 글은 카테고리 설정이 애매하다.음악관련 기기니까 music카테고리로 가야하나..컴퓨터 관련 기기니까 computer카테고리로 가야하나..이도저도 아니니까 etc카테고리로 가야하나..우야튼...ㅎㅎ수년째 빈티지 앰프하나 사놓고 염가 오디오 시스템 구성만을 꿈꾸고 있지만 그속에서 턴테이블은 빠질 수 없고, 거기에 더해 PC에서 음원을 녹음해 둘 수 있다면... 이라는 기능을 꿈꾸다 보니 꽤 오래전 USB턴테이블이 처음 나왔을 때 블로그에 소개하기까지 했었던 거 같다.하지만 처음 나온 제품의 디자인은 너무 열악했다.오디오의 디자인적 측면은 소리만큼이나 중요한데 거기서 턴테이블의 디자인적 기능은 더말할 것 없이 중요하다 하겠다.ion 사에서 ..
여기 자만에 가득차고 보지 않고서도 본 듯이 말하는 가식적이고 위선에 가득찬 현행법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얼마전 이란 영화가 만들어 진적이 있었다. 당시 잠깐 인상 찌푸리고 지나쳐 버렸던 것을 이제 다시금 들쳐보아야 할 사건이 생겼다. 故 다우치 여사 -우리 이름 윤학자- 의 기념비가 일본서 제막식이 지난달 31일 일본서 열렸다고 한다. 다우치 여사가 누구인가? 그녀는 먼저 일본인이다. 그 사실만으로도 쳐다보고자 하지 않을 사람도 많을 것이다. 허나 그녀의 행적은 가히 현실안에 멸종되어버린 듯이 여겨질 천사라 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도 돌보지 못한 우리의 고아들을 일제 식민시대에 우리의 남자 -어감이 이상하지만- 와 결혼해서 돌본 부끄러운 말 '한국 고아의 어머니' 인 것이다. 지금에 살면서 내가 어찌..
생각이 있는 풍경, 세 번째햇살 기울어가는 거리의 전화부스 앞, 사람을 기다리는 외로움들을 바라보며귓전을 맴도는 환청은 날 거리로 내어몬다. 들리는 음악 소리는 자기 자신에게 노래를 하는 듯 고해성사처럼 들어서는 안되는 두려운 비밀처럼 음습하다. 햇빛이 낭자한 거리는 선혈을 모두 빨아들일듯이 창백해 보이고 들뜬 여인들의 화장처럼 햇빛은 음악을, 소리를, 사람을, 축배의 술잔을 시기하듯 사약을 퍼붓고 창백한 거리는 나무와, 바람과, 거울과 그 안에 비치이는 그대의 모습을 지켜내지 못하고 햇살과의 전쟁에서 주춤 주춤 뒤로 물러서고 종내 그대의 거리는 햇빛 낭자한 내 내면과 그대의 외면세계의 두려운 회색 연기 날리는 화장터가 되어버렸다. 결과야 어떻든 땅에 누웠다. 대지의 숨결은 싸늘하게 식은지 오래됐고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