뉘엿뉘엿 넘어가는 황혼의 어둠에 조그만 초록색 등을 켠다굴레안에 아집으로 가공되었던 지난 시간의 콘크리트 포장길에 작별을 고하고먼지 폴폴 날리는, 키다리 플라타너스가 벗 삼아 주는, 코스모스 하늘거리는 신작로 위에서내일의 씨앗을 호주머니 안에서 만지작 거리는 굼뜬,그러나 소담스러워 보이는 정겨움으로 모두들 그렇게 마음 안에 꺼져 있던그 젊은날의 초록등에 부옇게 쌓여진 세월의 허접쓰레기를 후하고 불어낸다.콜록거리고, 기침으로 인하여 고통스러워도꺼지려 하는 초록색 등의 불빛에 다시금 심지를 돋울 수 있슴에그저 가물거리는 뿌연 시야를 깨우침의 눈물로 씻어내고첫 팽이치기에 성공한 소년마냥 그저 기쁘다.녹슬고 삐걱거리는 관념의 아룸다움과, 체면으로 감싸버렸던 이상의 부끄러움이 놋그릇 닦는 기왓 가루의 정성으로 가..
멀리 보이는 것에 불이 꺼진다멀리 보이는 것에 불이 켜진다. 빨간색 벨벳 커튼 사이로 언뜻 눈이 내리는 것이 바라다 보인다. 스쿠루지 영감이 유령 마레를 만나고 있을까? 성냥팔이 소녀가 지포라이터를 바라보며 상상의 생크림을 먹고 있을까?멀리 보이는 것에 불이 켜진다. 하인리히의 발자국을 따라 브레드가 현재의 티벳에서 과거의 달라이를 만나고 우린 먼지 자욱한 천국안에서 허상을 본다. 그걸 진짜라고 믿듯이 팝콘을 입안 가득 우겨 넣으며.멀리 보이는 것에 불이 켜진다. 혁명의 기치를 내걸고 가난한 영혼들은 불안을 잠식시켰다고 장담했지만 100년을 넘기지는 못했다. 한 세기를 이어가지도 못할 이념에 모든 것을 건 인간의 우매함이 낳을 결과는 전쟁과 죽음과 배고픔. 그것 뿐이었다.멀리 보이는 것에 불이 켜진다. ..
아시아에서 아니,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서 난 어릴적부터 많은 생각들을 하며 지냈다. 내가 자라온 환경은 절대로 권위주의적이며 보수 파시스트 같은 아버지가 지배하는 일당체제의 가족 구성이 아니라 생각을 존중하고 생각을 키우기를 항상 권고하시던 부모님의 영향 아래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모르게 억압받고 고통받는 여성상으로 어머니가 비춰지고 누나들이 비춰져왔다. 비단 그런 것 뿐만이 아니라 내 손에서 떠나지 않았던 수많은 동화책과 외국의 민담을 다룬 소설과 문학전집들 속에서 조명되는 여성상들 조차도 늘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으며 고통에 대한 당연지사라는 논리체계가 지배하고 있는 의식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나이를 먹어가며 그런 여성들의 사고체계가 여성의식의 보수화라는 학문적 용어로 정의가..
여기 자만에 가득차고 보지 않고서도 본 듯이 말하는 가식적이고 위선에 가득찬 현행법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얼마전 이란 영화가 만들어 진적이 있었다. 당시 잠깐 인상 찌푸리고 지나쳐 버렸던 것을 이제 다시금 들쳐보아야 할 사건이 생겼다. 故 다우치 여사 -우리 이름 윤학자- 의 기념비가 일본서 제막식이 지난달 31일 일본서 열렸다고 한다. 다우치 여사가 누구인가? 그녀는 먼저 일본인이다. 그 사실만으로도 쳐다보고자 하지 않을 사람도 많을 것이다. 허나 그녀의 행적은 가히 현실안에 멸종되어버린 듯이 여겨질 천사라 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도 돌보지 못한 우리의 고아들을 일제 식민시대에 우리의 남자 -어감이 이상하지만- 와 결혼해서 돌본 부끄러운 말 '한국 고아의 어머니' 인 것이다. 지금에 살면서 내가 어찌..
생각이 있는 풍경, 세 번째햇살 기울어가는 거리의 전화부스 앞, 사람을 기다리는 외로움들을 바라보며귓전을 맴도는 환청은 날 거리로 내어몬다. 들리는 음악 소리는 자기 자신에게 노래를 하는 듯 고해성사처럼 들어서는 안되는 두려운 비밀처럼 음습하다. 햇빛이 낭자한 거리는 선혈을 모두 빨아들일듯이 창백해 보이고 들뜬 여인들의 화장처럼 햇빛은 음악을, 소리를, 사람을, 축배의 술잔을 시기하듯 사약을 퍼붓고 창백한 거리는 나무와, 바람과, 거울과 그 안에 비치이는 그대의 모습을 지켜내지 못하고 햇살과의 전쟁에서 주춤 주춤 뒤로 물러서고 종내 그대의 거리는 햇빛 낭자한 내 내면과 그대의 외면세계의 두려운 회색 연기 날리는 화장터가 되어버렸다. 결과야 어떻든 땅에 누웠다. 대지의 숨결은 싸늘하게 식은지 오래됐고 사람..
잃은 너에게거식처럼 세상 모든 것이 거부스럽고가식처럼 만상萬想 하나 하나가 허위의 탈을 내 얼굴에덧씌워 간다시간의 강을 부유하다너를 찾기 위함인지 나를 잃어가기 위함인지별, 그 어둠의 커텐에 뚫린 허물어지지 않은단 하나의 의미가 찾을 수 없는 너처럼시나브로 소멸해 간다일진광풍이 존재함의 그 땅에서 불어올 때그대라는 사멸의 기억들은짧은 한 숨, 그것에도 쉽사리 일어서는 일진의모든 것을 아우른 먼지마냥 세상 구석 구석으로떠올라 간다상념이 가고, 의미가 가고, 기억이 갈 때그 뒤를 조용히 뒤따르는 수의囚衣 를 입은 사람그 사람은 잃은 너를 찾고 있는 내 기억의그림자 였으나인습이 노래하기를 광자狂者 의 갈라진 피울음그것이었다 하더라97. 7. 22
진실에 관하여전선들이 아로 뉘인다.흑기와가 보이고 몇 그루의 소나무가 거기에 있다.소실점 밖으로 아련히 산들이 바라보고붉은 벽돌 양옥이 한 켠에 놓인다.마음이 섞이지 않아 언제나 무채색인 물감통을꺼내놓고 이젤을 펼쳐본다.파레트 안에는 온갖 색들이 날 선택해 주세요 라고아우성 이지만 마음이 고사한 이에게는모든 것이 하얗고 까맣다.큰 맘 먹고 흰 색을 담뿍찍어 풍경의 한 켠에칠하기 시작한다.그것은 먼 산 안에 있는 승가람마의 색조였지만묘하게도 그것은 하늘이었다.시작의 일그러짐이 모든 것의 부조화로 잇닿아 갔고모두가 바라보는 아름답고 일상적인 거리와 하늘과가깝고도 먼 모든 것들이 붉게 충혈된 궁핍한자의동공이 되어 간다.하지만 그에게는 그 모든 것이 극단적 이분법이었다.하얗고 까맣고...그는 만족스러웠다. 세상..
생각이 있는 풍경, 두 번째몇 줄의 세로로 아리워진 세월의 무게와 멸시와 천대의 슬픔어린 시선을 모두 아우른채 녹이 슬고 부식의 과정안에 놓여있는 우리 살아가는 년침과도 같이 침잠하고 잠식하여가는 무감의 쇳덩어리. 눈을 들어 보이는 것은 분명 거무스름한 쇠창살이건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스스로가 만든 감옥안에 갇혀 지내는 수인이고 보면 하루를 가지 못할 아름다움과도 같은 허접한 상념을 이런 시간에 지녀보는 것도 분명 나쁘지는 않겠지. 시선을 In focus 대신 Out focus 로 잡으면 나무들이 보인다. 나무들.. 사람에 의해 심어지고 사람에 의해 가꾸어지고 사람에 의해 소멸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과 동류다. 사람은 분명 사람에 의해 태어나고 가꾸어지지만 사람에 의해 소멸되므로. 비이성적이라고 비..